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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만지다 - 삶이 물리학을 만나는 순간들
권재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9월
평점 :
이 책은 평생을 물리 교육에 투신한 물리학자의 감성 에세이다. 제목이 참 아름답다. '우주를 만지다'
우주를 향해 손을 뻗는 사람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아마도 예비 독자들은 유사한 심상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기대했던 바로 그 감성을 만날 수 있다.
기대 수명 100세 시대. 더 나아가 '노화라는 질병'을 정복해서 곧 인간이 죽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리라는 전망도 있다. 인간의 수명이 크게 연장되면 인간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쉬운데, 이 책은 그러한 인간의 착각이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알려준다. 책의 내용을 옮겨 보자.
밤하늘에 보이는 무수한 별들은 대부분 은하수 은하라고 하는 우리 은하에 속해 있다. 이 은하는 지름이 약 10만 광년이나 되고 그 안에 별이 약 1,000억 개가 있다. 우리가 별을 보는 것은 별에서 나온 빛이 우리 눈에 들어오기 때문인데, 어떤 별빛은 10년, 어떤 별빛은 1만 년, 어떤 것은 10만 년 전에 출발한 것이다. 10만 년 전의 별? 10만 년 전이라면 인류는 짐승들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구석기 시절이다. 그때 출발한 빛을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
그런데 밤하늘의 별이 모두 이 은하수 은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별까지 거리를 측정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우주에는 우리 은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멀리 다른 은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망원경에 찍힌 희미한 점 하나를 분석해보았더니 별이 아니고 무수히 많은 별로 이루어진 은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희미한 점 하나가 별이 1,000억 개나 있는 거대한 은하라니! 그것을 발견한 놀라움이 어떠했을까? 지금 과학자들은 우리 은하에 별이 약 1,000억 개 있고, 이러한 은하도 우주에 약 1,000억 개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1p)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빛으로 8분 걸리는 거리라고 한다. 우리가 수금지화목토천해명으로 예전에 배웠던 태양계는 지금은 명왕성이 행성에서 제외되었지만 크기는 오히려 예전보다 늘었다. 태양계의 크기는 오르트 성운을 기준으로 약 1광년으로 본다. 태양계만 해도 지구와 태양의 거리보다 65,700배의 크기다. 그런데 우리 태양계가 속한 우리 은하의 크기는 그보다도 훨씬 큰 10만 광년이라 한다. 하루는 24시간 * 60분으로 총 1,440분이며 이는 8분의 180배에 해당한다. 그러니 우리 은하의 지름 크기는,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보다 무려 180 * 365 * 100,000배가 더 크다. 그런데 이 우주에는 이런 은하가 약 1,000억개가 더 있다고 한다. 즉,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에 180 * 365 * 100,000 * 100,000,000,000배를 해야 우주의 크기가 되는 것인데, 놀랍게도 지금도 우주는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다...
그 거대한 우주 속, 지구의, 인간의 수명이 지금보다 한 100,000,000,000배 늘어난다고 한들, 그게 우주적 관점에서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인간만이 인간의 수명 연장이 우주적 사건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미시 세계로 넘어가면 더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책의 내용을 다시 옮겨 본다.
이제 생물에서 무생물로 넘어가보자. 무생물이 무슨 수명이 있느냐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무생물도 수명이 있다.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에 대해서 들어봤을 것이다. 원자탄이 무서운 것은 폭발력 때문만은 아니다. 폭발로 발생하는 방사능이 더 무섭기 때문이다. 방사성 물질은 수명이 있다. 이것을 과학에서는 반감기라고 한다. 반감기란 그 물질이 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반감기가 왜 수명이냐고? 그것은 다음 기회에 설명하기로 하고 반감기를 그냥 수명이라고 생각하자. (...)
(...) 소립자들의 수명은 대부분 매우 짧지만(10초) 우주의 나이(138억 년)보다 긴 것도 있다. 원자의 핵을 만드는 입자인 양성자의 수명은 무려 10년이나 된다. 우주의 나이가 약 10년인데 양성자의 수명은 이것의 1조의 1조 배나 더 길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은 바로 이 양성자의 수명이 이렇게 길기 때문이다. 양성자가 붕괴하여 없어진다면 우리가 보는 물건은 물론 내 몸도 사라지고 없어진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우주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겠지만 말이다. (110-111p)
문맥상 '우주의 나이가 약 10년'이라는 표현은 우주의 수명을 말하는 듯하다. 우주에도 수명이 있다는 게 놀라운데, 양성자의 수명은 그 우주의 수명보다도 훨씬 더 큰 10년이라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처럼 물리학은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를 다루는데, 거시 세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이론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다 줄여서 '상대론'이라 부른다. 그리고 미시세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이론은 양자 역학으로 줄여서 '양자론'으로 부른다. 저자는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두 물질(원자)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상대론과 양자론으로 우주의 모든 것은 설명될 수 있다고 보지만, 예외적으로 '진화론'만큼은 상대론이나 양자론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본다. 생명으로서의 물질의 존재 형태, 그리고 그 변화 방향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무생물의 존재 형태, 변화 방향도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 가능하다고 저자는 보았다)
여행을 떠나면 우리는 상쾌한 기분이 된다. 일상보다 넓은 세계를 체험하며, 그 커다란 관점에서 보면 나의 고민, 나의 안달복달은 참 별일 아니라는 걸 알게된다. 만약 그 넓은 세계가 우주라면 어떨까. 이 책은 우리에게 우주를 여행하는 기분이란 무엇인지 살짝 알려준다. 이 여행은 인간이 물리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여행 중에서 가장 큰 여행이다. 여행을 다 마친 뒤 독자는 조금은 겸허해진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왜 마음이 겸허해지면 삶은 더 자유로워지는 것일까. 원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면 조금은 자유로워진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