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참 마음이 따뜻해 - 가장 행복한 사람은 늘 명상하며 산다
배영대 지음 / 메이트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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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신비스럽다. 뇌과학에 의해 그 효과가 입증된 것은 1970년대인데도, 아직 우리에게는 명상이 과학적인 무엇이라기보다는 신비스러운 무엇으로 느껴진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과학자나 교수, 신문 기자와 같은 '이성'을 중시하는 직업인이 보내오는 '명상 초대장'은 더 특별하다. 이 책은 신문 기자로 30년 가까이 활동해 온 저자에 의해 씌어졌다.

직업적 특성 때문일까. 명상에 대한 저자의 서술은 체험기보다는 관찰기의 성격이 강하다. 그는 명상의 대가들인 '카밧진, 숭산, 틱낫한'과 장현갑, 이시형 박사 같은 저명한 교수들, 그리고 BTS, 김하온 같은 젊은 세대의 문화 아이콘과 일반인인 응암초등학교 교사 원의범까지 다양한 사례들을 덤덤하게 풀어낸다. 이 책의 큰 미덕은, 자신이 감명받은 명상을 감정적으로 반복 서술하는 자기 복제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다양한 이들의 매력적인 사례를 독자들에게 전달해준다는 점이다. 이중 몇 가지 사례를 적어본다.

은퇴 이후 투머치 토커라는 다소 희극적인 이미지로 널리 알려진 박찬호의 이야기에서는 그간 알려지지 않은 그의 진중한 면을 볼 수 있다.
"제가 상당히 힘든 적이 있었어요. 너무 아프니까. 여기저기 매일 파스를 붙여야 하고. 내 몸한테 미안하다고 그랬어요. '미안해' 한 번 하고 호흡을 길게 하고.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는 고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고마워' 하고 호흡 한 번 하고 그럽니다. 지금까지 내 생각을 100퍼센트 따라준 것은 내 몸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니까 내 몸이 정말 고맙고 사랑스러웠어요. 그래서 '사랑해' 하고 호흡 한 번 하고 그러지요." (박찬호식 명상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中, 211p)

2018년 방영된 고등래퍼2 우승자이자 명상 래퍼로 유명세를 탄 김하온의 이야기에서는, 나이를 뛰어넘는 스승이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다.
"공부 아닌 공부를 하면서 'No pain,  no gain'이라는 말이 하나의 프레임이란 걸 깨달았지. 고통 없이는 얻는 게 없다는 말이 너무 잔인하지 않니? 그래서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려고 했어. 최대한 즐긴 것 같아. 그게 제일 노력한 것이야. 웃으면서, 즐기면서, 긍정적으로." (215p)

원의범 교사의 사례는 특히 울림이 크다. 자신의 고통이 아닌 타인의 고통을 계기로 삼아 자아를 깨고서 사랑으로 나아가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명상은 중요한 교육 방법이다
서울 응암초등학교 원의범 교사의 학급에는 매일 오전 9시 특별한 노래가 약 10분간 울려 퍼진다. "영희가 행복하고 평안하고 건강하기를···." "철수가 행복하고 평안하고 건강하기를···." 이 교실에서 '행복송'으로 불리는 노래다. 행복송과 함께 그날 수업을 시작한다.
영희와 철수의 이름 자리에는 23명 학생의 이름이 각각 돌아가며 들어간다. 친구들의 이름을 함께 부르며 서로의 행복과 평안과 건강을 기원해주는 것이다. 담임선생님을 위한 행복송도 빼놓지 않는다.
"서로 이름을 돌아가며 부르다 보면 아이들 표정이 달라지는 게 보여요. 자기 이름이 불릴 차례가 왔을 때 행복해하는 느낌이 표정에서 드러나죠."
원 교사의 교사 경력은 약 20년 되었다. 교사 생활을 시작하던 때와 비교하면 학생 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지만 그래서 편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학생들을 지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던 차에 학생들과 행복송 부르기를 시작한 뒤 그 효과에 스스로 놀라고 있다.
어쩌다 바쁜 일이 있어 행복송을 빠뜨리는 날에는 아이들 사이에 다툼도 잦아지고 학급 분위기가 거칠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행복송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들려줄 다양한 이야기, 특히 자기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는 것이 이제는 별도 일과가 되었다.
원 교사는 2018년 초 한 학생이 너무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학생은 수업 중 뛰쳐나가기도 하고 심지어 '죽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학생들을 한 명씩 만나 개별상담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이번에는 친하게 지내는 다른 선생님들과 상의를 거쳐 학급 전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행복송이다. (...)

자기감정을 조절하는 방법
원 교사는 행복송을 시작하면서 그날그날 학생들에게 해줄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는 일이 늘어났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다고 한다. 일과가 늘었어도 전보다 힘들지 않은 이유는 즐거워졌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기쁘다. 행복송은 아이들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행복송을 리드하는 원 교사 자신이 먼저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원 교사는 "학급과 학생들의 문제를 풀기 위해 시작한 행복송이 나 자신부터 살려내는 듯하다. 일이 좀 늘었어도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부모에게 꾸중을 듣고 온 아이들도 행복송을 부르며 화를 누그러뜨리는 것 같다. 아이들이 자존감을 갖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좀더 연구해서 체계적으로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
(182-186p)

이 책에서 짤막하게 소개 된 장현갑 교수의 이야기는 잊지 않고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그의 마지막 저서 『심리학자의 인생실험실』을 읽고서 나는 명상이라는 행위를 온 마음과 머리를 활짝 열어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장현갑 교수는 1942년생으로 스물 일곱살에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뇌과학 전공)가 되었고, 발표한 논문 여러 편이 심리학과 의학을 연계하는 세계적인 연구로 인정되어 마르퀴즈 후즈후를 비롯한 세계 3대 인명사전에 모두 등재된 지식인이다. 그는 1997년 안식년을 맞아 아내, 아들, 딸과 함께 미국 자동차 여행을 떠나는데, 이때 교통사고가 일어난다. 그는 두 다리가 으스러지는 중상을 입게 되는데, 구조대에 의해 구조되기까지 약 한 시간 반 동안 두 다리가 으스러진 상태로 아내와 딸이 사망한 자동차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다만 이 책에서는 그의 이야기가 자세하게 소개되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숭산'이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명상에 관한 저명한 책을 읽다 보면 꼭 마주치게 되는 이름이다. 주식 투자 책을 읽다보면 어디서든 '워런 버핏'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숭산은 1927년생으로 1949년 22살 약관의 나이에 득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대의 고승이었던 춘성, 금봉, 금오, 고봉선사들에게 인가(득도를 검증받아 인정되는 것)를 받았다.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1972년 46살에 미국으로 설법을 전파하러 떠난 데서 비롯되었다. 그를 스승으로 삼았던 이는 존 카밧진 교수(MBSR의 창시자), 트루디 굿맨 박사,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 현각(원명 폴 뮌젠) 등 기라성 같은 인물이 많다. 숭산이 활동하던 당시 "달라이 라마, 마하 고사난다, 틱낫한" 그리고 '숭산'이 세계 4대 생불로 불렸다.
숭산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서술 중 하나는 도올 김용옥이 쓴 글이다. 이 책에 소개된 글은 아니지만 여기에 옮겨 본다.

그의 달마톡이 다 끝나갈 즈음, 옆에 있던 금발의 여자가 스님에게 물었다. 내 기억으로 그 여자는 하버드 대학 박사반에 재학 중인 30 전후의 학생이었다.
"홭 이스 러브? (What is love? / '사랑'이란 뭔가요?)"
숭산은 내쳐 그 여학생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 것이었다.
"아이 아스크 유, 홭 이즈 라부? (I ask you, what is love? / 제가 물어볼게요. 사랑이란 뭘까요?)"
그러니까 그 학생은 대답을 잃어버리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숭산은 말하는 것이었다.
"디스 이스 라부. (This is love. / 이게 사랑이에요.)"
그래도 그 여학생은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학생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동안의 숭산은 다음과 같이 말을 잇는 것이었다.
"유 아스크 미, 아이 아스크 유. 디스 이스 라부. (You ask me, I ask you. This is love. / 당신이 저에게 물어봐서, 저도 당신에게 물어봤어요. 사랑은 이런 거에요.)"
인간에게 있어서 과연 이 이상의 언어가 있을 수 있는가? (...)

- 도올 김용옥,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 中

명상의 세계는 가치 투자의 세계와 꽤나 비슷하다. 능력이 출중한 자가 아무리 자신의 모든 능력을 쏟아 붓는다 해도, 이 세계가 좁다는 느낌은 받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세계는 무한하고 나라는 것은 무한한 세계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뿐이다. 나의 그릇이 작음을 깨닫는 것은 커다란 자유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된다. 이 그릇을 채우는 데에도 그리고 이 그릇을 버리는 데에도 특별한 성취가 필요하지 않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대한 인물의 그것에 비하면 대단히 작은 채움 또는 대단히 작은 비움에 불과하다. 그릇을 늘리느라 애쓰지 말고 그릇만큼만 하면 된다. 

이 책은 명상으로 초대하는 정성 어린 초대장이자, 흥미로운 초대장이고, 초대하는 이를 내세우지 않고 초대받는 이를 존중하는 초대장이며, 더 큰 (인물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현명한 안내장이다. 메이트북스 정영훈 대표의 제안으로 배영대 저자가 책을 내게 된 것인데, 제안도 수락도 그리고 마침내 출간된 책을 읽는 것도 모두 멋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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