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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ㅣ 메이트북스 클래식 10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이현우.이현준 편역 / 메이트북스 / 2020년 8월
평점 :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저자의 신분 때문이다. 로마의 황제. 위대한 고대 국가 권력의 정점에서 오랜 기간 선정을 베푼 이가 이야기하는 명상과 철학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이 책이 손꼽히는 고전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이 마흔, 사회생활의 이런저런 다양한 맛을 십년 정도 맛본 나는 너무나 궁금했다.
메이트북스에서 나온 이 책은, 순서에 대한 논리적 의도없이 12가지의 테마에 대해 자유롭게 씌어진 아우렐리우스의 글을 편역자들이 6가지 테마로 추리고 이에 관한 인상 깊은 글들을 모아서 약 170여 페이지의 가벼운 분량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아우렐리우스의 모든 것이 그대로 담긴 읽기 힘든 분량의 철학서적이라기 보다는,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라는 위대한 고전으로 초대하는 정성스런 초대장으로 이해되면 좋을 듯하다.
명상에 뛰어났던 로마 황제의 마음이 평화로울 수 있었던 비밀은 '죽음에 대한 인식과 초연한 태도'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죽음에 대한 그의 글을 한편 읽어보자.
죽는다고 해서 내 생명이 완전히 끝나는 게 아니다
죽는다고 해서 우주 밖으로 떨어져 나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이 세상에 머물면서 변화를 거치고, 많은 분자들로 해체될 뿐이다. 그래서 다시 우주와 당신을 형성하는 구성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요소들은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지만 결코 불평하는 법이 없다.
이제 곧 당신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당신의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들도 현재 생존해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만물은 이렇게 변화하고 사라지고 소멸되기 위해 태어나고, 그들의 빈자리를 또 다른 것들이 채워가게 될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모든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든지, 아니면 새로운 감각을 갖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든지 둘 중 하나이다. 실제로 당신의 모든 감각이 사라져 아무 것도 느낄 수 없게 된다 해도, 당신에게 해로울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렇지만 만약 죽음이 새로운 감각을 갖게 하는 것이라면, 당신은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고, 따라서 당신의 생명도 끝나는 것이 아니다.
황제도 인간도 하나의 생명 존재이므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은 근원적인 것이다. 그런데 아우렐리우스는 그 근원적 두려움을 위와 같이 철학 사상적으로 넘어서려 한다. 성찰해보면, 죽음이란 본디 그러하게 되어있는 것이 그러하게 되는 것일 뿐이니, 겁을 내거나 호들갑 떨 일이 아니라는 거다. 말의 내용은 이해가 되지만 어디 사람의 감정이란 게 그런가. 그래서 그는 사람의 감정을 이성과 비교하여 하찮은 것이라 여긴다.
인간의 육체와 생기와 정신은 무엇인가? 육체는 감각을 위한 것이고, 생기는 행동의 원천이며, 정신은 원칙을 위한 것이다. 감각의 능력은 마구간의 소에게도 있고, 충동에 이끌려 살아가는 모습은 야수에게서나 독재자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52p)
책에 실린 부록에 따르면 아우렐리우스의 사상적 배경은 스토아주의에 있다. 스토아주의의 특징은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고, 이 신성의 특징을 로고스 즉 이성의 원리로 가득차 있는 것이라 보았다. 스토아학파는 우주는 하나의 법칙을 따르고 있고 인간은 우주라는 전체의 일부분으로서 위치함을 '인식'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이성의 능력이라 보았다.
우주의 질서를 이해하고, 만물은 본디 그러하게 되어있는 방향으로 흘러갈 뿐이며, 인간도 만물의 하나이므로 뭔가가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안달복달하여 마음을 썩히는 것은 아무 의미없는 일이다. 이러한 스토아주의의 가르침은 현대에서 유행하고 있는 마음챙김 명상의 핵심 가르침과 같다. 그러니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으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요가, 명상, 글쓰기, 독서 등은 모두 '명상 효과에 의한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행위들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넷 중 독서가 제일 우선적인 고려 대상일 텐데, 이 책이 위대한 고전으로 손꼽히는 까닭은 바로 그 마음의 안정 효과가 많은 사람들에게 탁월했기 때문이리라.
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기 때문에, 충동, 열망, 정열, 격정과 같은 인간의 문화적 동인(감정)들을 배척하는 점은 스토아주의의 부족함으로 오랜 철학사 동안 반복해서 지적되었다. 덕분에 현대의 우리는 '이성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특성 중에서 가장 위대하다'와 같은 철 지난 고집을 부리지 않고서도, 이성을 활용해서 인간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고 그러므로 이성은 참으로 감사한 인간의 특성임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다. 고대와 현대 철학이 만들어 낸 넓은 지평은, 사람들의 마음 쉴 곳을 보다 넓게 만들어주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이 책을 읽는 것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독서로 명상을 대신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다. 마음 평화의 세계로 한발 내딛고 싶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p.s
책을 다 읽고 나는 메이트북스 시리즈 중 스토아철학의 다른 유명 인사인 세네카의 '인생론'과 '행복론'도 읽기로 마음 먹었다.
"우연하게 지혜로워지는 사람은 없다" 세네카의 말이다. 메이트북스에서 출간했다면 세네카에 관한 책도 틀림없이 훌륭하리라. 믿을 수 있는 출판사를 알게 되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