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 : 0629 에디션 - 생텍쥐페리 탄생 120주년 기념판
생 텍쥐페리 지음, 전성자 옮김 / 문예출판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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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탄생 120주년을 기념하며 (생택쥐페리는 1900년도에 태어났다!) 문예출판사에서 새로 나온 책이다. 책과 완전히 담 쌓고 산 사람이 아니라면 '어린 왕자'를 한 번도 안 읽어 본 사람이 있을까. 어른과 어린아이들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아름답고, 신비롭고, 지혜로운 동화 이야기. 내가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은 게 대략 25년 전쯤일 거다. 올해 열 한살이 된 첫째 딸 아이의 정신연령이(내 열 다섯과 엇비슷하리라) 이제 이 책을 읽을 수 있겠다 싶어 함께 읽으려고 독서를 시작했다.

같은 책이라도 읽는 때가 달라지면 마음에 남는 내용도 달라지기마련. 이번 회차에서 가장 깊이 가슴을 파고든 문장은 어린왕자와 여우의 대화 편에 있었다.

"우리가 길들이는 것만을 알 수 있는 거란다."

결혼 11년차. 아내와 나는 아직도 때때로 서로의 정체를 새롭게 발견하면서, '당신 이런 사람이었어?'라며 놀라곤 한다. 길들여질 듯 길들여지지 않아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쌓여있는 아내를 생각하며, 이 문장을 곱씹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에는 그 사람의 매력을 착각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만, 누군가를 아는 데에는 오랜 세월 동안 서로 길들여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 그건 아마도 모든 유부남녀가 수긍하는 바가 아닐까.

공교롭게도 1995년에 방영된 드라마 모래시계에 - 이 드라마 또한 내가 열 다섯일 때 방영되었다 - 이와 맥락이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프로포즈는 이 드라마의 강우석 검사의 프로포즈다. 대사를 옮겨본다.

"사랑은 노력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난 노력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평생 노력할 생각입니다. 이런 말로 안되겠습니까?"

가장 완벽한 프로포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서로의 매력에 끌려 사랑을 시작하더라도, 이러저러한 많은 이유로 도중에 중단되는 관계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므로 두 사람의 사랑이 삶의 끝까지 다다르기 위해서는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다. 그 조건은 바로 두 사람의 노력이다. (우리의 관계를 위해) 평생 노력할 생각이라는 이 프로포즈는 비록 겉으로는 덤덤하게 보일지라도 그 안에 얼마나 큰 정열을 품고 있는가!

간만에 흥분했다. 11년차 유부남이 '사랑과 프로포즈'라는 주제로 이처럼 흥분하는 일은 대단히 드물다. 그러므로 '어린 왕자'라는 이 작품이 얼마나 굉장한지 알 수 있으리라.

작가인 생텍쥐페리의 연보를 보면 작가는 나이 4세에 아버지의 사망, 나이 17세에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던 남동생의 사망을 겪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과 이별, 그리움에 대해서 남다른 마음을 갖게 되었을 삶의 궤적이다. 어린왕자는 작가가 작고하기 1년 전 그의 나이 43세에 출간된 작품이다. 나이 35세에 장거리 비행 중 실제로 이집트의 사막에 추락, 닷새 동안 사경을 헤매며 사막을 걸어 극적으로 구출되었던 경험을 모티브로 삼았다.

이 책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문장을 꼽으라면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알려 준 아래 문장일 것이다.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가끔이지만 아내도 나에 대해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걸로 되었다. 가끔을 매일로 만들겠다는 너무 큰 야망 같은 건 갖지 말도록 하자. 완전에 대한 욕구를 낮추면, 사랑은 지치지 않고 오래 갈 수 있으리라.

현명하게 사랑하고픈 어른이, 어린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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