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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혀 -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권정현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0월
평점 :
"사랑에도 최적의 온도가 있다."
요즘 월요일 화요일에 달달한 로맨스로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는 드라마가 있다. <사랑의 온도> 멋진 두 남자주인공들과 그 옆에도 멋진 요리하는 남자들이 나와 특히 여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요리라는 장르가 그냥 사사로운 밥상차림과 같다고 생각되지만 드라마나 많은 매체에 소재로 많이 등장한다. 요리의 결과물만 보는 사람들은 오감이 만족하는 아름다움만 보게된다. 사진에 담고 싶을정도로 아름다운 시각, 음식이 나오자마자 내는 지글지글 보글보글의 청각, 맛을 보기도 전에 벌써 군침을 흘리게 만드는 후각, 그리고 한입 먹었을 때의 미각,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마음으로 느끼는 행복감까지 복합적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요리된 음식이다. 하지만 주방으로 들어가면 그 안은 전쟁터가 따로 없다. 위계질서가 명확한 군대같은 요리사들의 사회와, 재료를 칼로 다듬고 불로 지지고 볶는 모습이 무서울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는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치정이 달콤 살벌하다.
드라마 <사랑의 온도>를 재밌게 보고 있는 시청자라면 재미있게 볼 책 한권이 있다. 권정현 작가의 <칼과 혀>이다. 1945년 일본 패망 직전의 만주에서의 이야기이다. 이 때의 전쟁의 온도를 상상해본다면 위축되어 있지만,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극에 달았을 것이다. 최적의 온도보다 더 물자를 많이 투자하고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불안함으로 일본은 중국과 조선인을 쥐잡듯 잡았을 것이다. <칼과 혀>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조선인 길순, 중국인 첸, 일본인 모리가 돌아가면서 자신의 시각으로 이야기한다.
일본인 모리는 관동군 사령관으로 정식 이름은 야마다 오토조이다. 한창 전쟁을 승리기를 잡은 성주이지만, 그는 전쟁을 좋아한다기 보다는 두려움이 많고 미륵불의 아름다움과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야마다 오토조는 칼을 사용해 누군가의 혀를 자르기도 하는 잔인함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혀의 만족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전쟁의 장수가 전쟁이 얼른 끝나길 바라는 솔직하면서도 겁쟁이같은 이 캐릭터는 역사적 실존인물라는 작가의 말에 더 눈길이 갔다.
중국인 첸은 천재 요리사이자 광동군 사령관 야마다 오토조를 죽이기 위해 붙잡혀 들어간다. 그리고 목숨을 건 내기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사령관을 죽이기 위해 몇 가지 시도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야마다 오토조의 목숨보다는 혀의 만족을 위해 열심히 요리했다. 혀의 3/2가 없어졌지만, 그의 후각에 의존해 장인정신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조선인 길순은 아름다운 얼굴과 미소를 가졌지만 힘든 과거를 가졌다. 위안부 생활을 하다가 첸을 만나 목숨을 건지며 그의 아내로 살게 된다. 그리고 길순은 야마다 오토조에게 불려 들어간다. 길순은 타인의 도움과 자신의 미모로 척박한 만주에서의 삶을 이어가는 것 같지만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하여 그녀의 목표를 달성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일까? 조선인 길순의 비중이 조금 작았던 것이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도마에 놓인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의 생명이야. 칼은 그들의 생명을 끊는 도구가 아니라 그들을 굴복시키는 도구야. 칼을 다룰 때 조금이라도 허점이 보이면 재료들은 접시에 오르는 순간까지 말썽을 부리잖아. 칼은 등을 보여서도 안돼. 칼날로 재료를 지그시 눌러가면서 놈들의 눈을 제압해. 숨통을 단박에 끊어놓을 듯 위협하면서 동시에 재료 고유의 빛깔과 싱싱함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해." (p98)
일본인 모리, 중국인 첸, 조선인 길순은 서로에게 칼을 들이민다. 그들에게는 서로가 서로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목숨을 완전히 끊지 않고 서로가 소중한 것을 지키며 굴복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굴복은 물리적인 것일 뿐 진짜 그들을 소통하게 만든 것은 '음식'이었다. '혀'를 통해 음식의 맛으로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전쟁이든 요리든 그렇다. 날카로운 무언가로 상대를 제압하기 보다는 부드러운 소통으로 상대를 끌어안아주는 것이 함께 사는 방법인 것같다.
현대는 1945년 총과 칼이 난무하는 전쟁통은 아니다. 하지만 자본과 언변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고 한다. 한, 중, 일은 자국의 이익을 지키며 상대방을 억압하려는 모습을 종종 본다. 사드로 인한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보복. 아직 풀리지 않은 위안부 문제 등 우리는 아직 외교라는 전쟁중이다. <칼과 혀>에서 보았듯이 상대를 누르면 언젠가는 혀를 자르는 고통을 받기 마련이다. 소울푸드와 같은 음식을 함께 하며 서로의 아픔을 보다듬는 것이 이 지구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우리는 외로운 존재들이니깐 말이다.
"썩어가는 것들일수록 더 깊은 맛을 풍기지. 인생도 그렇다. 너의 무엇이 너를 간절하게 하느냐? 그것이 없다면 요리는 겉치레일 뿐이다."(p304)
마지막 쯤에 이 책을 쉽게 못 덮은 대목이다. 나를 간절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겉치레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