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하고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친구들 얼굴 한 번 보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친구놈 결혼식이나, 친구 부모님 장례식장이나 가서야 얼굴을 보고 술을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그런 세월이 되어 있다. 그도 그럴것이 30대 초반, 한참 생활적으로나 일적으로나 바쁠 때이기도 하거니와 부산에서 공부하고 있는 내게 있어서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풍운의 꿈을 안고 상경을 택하였기 때문에 그러했으리라. 조정래의 장편소설 '비탈진 음지'는 과거, 피할 수 없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삶의 벼랑으로 내몰린 채 '무작정 상경'을 해야만 했던 가난한 서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지금의 내 친구들이 수도권으로 모두 떠나버린 이유가 단지 회사가 거기 있기 때문이고, 어쩔 수 없이 생활반경을 옮겨야만 하는 그들의 안타까움도 존재하는 덕에 이 책이 40년전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세대의 애환을 담은 내용이라기에는 너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조정래식의 감칠맛 나는 어휘가 특히 매력적이다. 서술자의 서술을 제외한 모든 글이 대화체 혹은 생각의 흐름 그대로를 글로 담고 있어서 마치 내가 그 상황에 들어 있는 마냥 푹 빠져서 읽게 된 것 같다. 부디 나의 친구들은 몰인정하고 매정한 그 곳에서 칼갈이 복천영감 같은 아픔 보다는 즐겁고 풍요로운 인생을 영위하기를 또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