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22가지 재판 이야기
도진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4년 1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았으나, 본 서평은 제 주관적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법관 출신 변호사인 지은이를 처음 본 것은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였습니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특히 재판에 관해, 법률 자문하는 모습을 몇 번 봤습니다. 지은이의 이름이 흔한 편이 아니라 처음 봤을 때부터 뇌리에 박혔습니다. 본 책의 소개에서 그 이름을 보고 혹시나 했는데, 정말 같은 분이었습니다. 10년 전 처음 출간된 본 책의 존재를 이번에 알게 됐는데, 알고 보니 지은이는 무려 14년 전에 이미 소설가로서 신인상을 받기까지 했더군요.
지난 500년 동안 지옥계를 다스리던 '염라' 왕이 연옥계의 재판관으로 임명되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연옥계'는 천국계, 지옥계와 함께 하늘나라(천계)를 이루는 세계 중 하나로, 천국과 지옥으로 가기 전 재판을 받는 곳입니다. 지난 500년 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지옥계 생활이 너무 힘들었던 염라는 연옥계로 가게 된 것이 정말 기뻤습니다. 하지만 재판 결과에 따라 지옥으로 떨어진 사람들을 가두고 감시하는 일이 전부인 지옥계에 있던 그였기에, 법에 관해서는 사실 문외한에 가까웠습니다. 그렇다고 지옥계에 남고 싶지 않았던 염라는 연옥계에서 판사로서 판결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남긴 '소크라테스'가 두 번째 피고인으로 등장합니다. 판결을 위해 그와 이야기를 나눈 염라는, 총명할 뿐만 아니라 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자신이 한 말도 잘 지키는 그에게 연옥에서 일해볼 것을 권합니다. 바로 연옥 재판 피고인들의 변호사로서 말이죠.
지은이는 이렇게 연옥계 판사로 부임한 염라의 재판 이야기를 통해, 복잡하고 어려운 법적 개념과 재판의 원칙을 보다 쉽게 설명하고자 시도합니다. 법과 비법조인 시민 간의 장벽을 허물기 위한 지은이의 노력이 엿보입니다. 이는 곧 법조인이자 소설가로서 지은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을까요?
지은이는 '양치기 소년, 성냥팔이 소녀' 등 동화와 '고흐' 등 역사 속 인물들을 등장시켜 법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어렵고 딱딱하게 다가오는 법을 일상적이고 친숙한 이야기에 녹여 낸 것이 아주 기발하면서도 효과적인 시도로 다가왔습니다. '이태원 살인사건, O. J. 심슨 사건' 등과 같이 우리 사회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도 다룹니다. 해당 사건들의 법적 쟁점을 다루면서, 법은 결코 감정적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명확히 제시합니다.
법치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법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과 이해'는 필수라 생각합니다. '법의 범위', '형사 및 민사 재판의 원칙과 두 재판 간 차이' 등 법과 재판에 대한 기본 개념을 탄탄히 다질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