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삼가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 미시마야 시리즈 8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8월
평점 :
판매중지


오두막집만 한 크기의 커다란 눈알이 타앙, 타앙 하고 가볍게 튀어오르면서 계단 끝의 복도를 나아간다.
눈알은 하나인데 눈동자는 잔뜩 있다. 갓 찐 경단에 깨를 뿌린 것처럼 커다란 눈알은 눈동자투성이다.
그 눈동자들이 깜박깜박 깜박인다. 저쪽을 보았다 이쪽을 보았다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하다. 작은 새의 지저귐처럼.

“오늘 아침에는 눈의 신이 특히 목욕을 오래 하셨어요. 그 신은 어쨌거나 만사에 느긋한 분이시라 나도 가끔 당황할 때가 있지만……. 모치타로 씨도 마주치고 말았나요.”
/눈의 신


“이번에는 어떤 모습의 신을 보셨나요?”
“새까맣고 커다란 지네였어…….”
“그런 얼굴 하지 마세요. 커다란 지네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상인의 수호신이에요. 외상값을 받을 때 미처 받지 못하는 돈이 없도록 지켜 주시지요.”
/상인의 수호신


“나이 든 스님의 모습인데 머리만 빙글 뒤를 향하고 있었어!”
“후난後難을 막아 주는 신이에요. 뒤에서 닥쳐오는 모든 재난을 막아 주시지요.”
/후난을 막아 주는 신


“귀여운 목소리로 ‘금실 은실 주렁주렁 옥이 달린 보물상자’라고 지저귀는 작은 새를 봤는데…….”
“날개는 무슨 색이었나요?”
“눈부신 금색! 큰방의 교창 맞은편에 쌍으로 앉아 있었어. 내 기를 느끼고 날아가 버렸지만.”
“그건 복권의 신이에요.
/복권의 신


여관 복도 안쪽에서 먼지 냄새 나는 바람이 부웅~ 하고 불어왔다.

“빗자루의 신이에요. 까다롭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신이라 모치타로 씨의 재채기가 거슬리신 게지요.”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의 목소리였던 걸까.”
“모치타로 씨, 이 세상에 대체 얼마나 많은 수의 빗자루가 있을 것 같나요?”
“아, 그런가.”
/빗자루의 신


포창신은 약간 몸을 굽혀 거대한 머리와 어깨를 마을에 가까이 했다.
“그러자 제게도 보였습니다.”
최강이며 가장 흉악한 신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망자였습니다. 야윈 알몸의 망자 떼가 서로 얽히고 겹쳐 거인의 모습을 이루고 있더군요.”
그리고 지옥불에 휩싸여 있다. 저녁 하늘 전체도 떨리게 하는 구웅구웅 하는 소리는 포창신의 몸을 태우는 불꽃의 소리만이 아니었다. 망자 떼가 저마다 울부짖는 소리도 섞여 있었다.
“거인의 얼굴에는 눈과 코가 없고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그러니까 해골이지요. 텅 빈 구멍이란 구멍에서는 모두 불꽃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포창신


매번 놀라고 무서운 일이 더 많지만 가끔은 기쁘고 즐거운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모습이 공포스럽긴 하지만 실은 고마운 수호신이나 복의 신인 경우도 적지 않다. 사람을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처럼, 신 또한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다.


주사위와 등에
삼가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
미야베 미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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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워하는 사람이
입을 안 여는 건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거짓말이 아닌 말을
찾아내려고 싸우고 있는 거니까요.

4 야경신문

밤을 걷는 고양이 6
후카야 카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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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지마 가문의 사람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으면서,
자기와 다른 걸 보는 사람이 무서운 거야.

다들 자기가 제일 약한 존재고,
제일 많이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해.

나도 마찬가지야.
나랑 다른 걸 보는 즈카사 누나가 무서워.

내가 보고 있는 것에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되니까.
하지만 그건 일종의 개성 같은 걸거야.
62

백귀야행22
이마 이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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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다 본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 눈의 한계를 보고 있는 셈이에요. 책을 편집하다보면 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책의 모든 문장은 저자의 생각이 뻗어나갈 수 있는 한계의 안쪽에서만 나오죠. 그래서 모든 책은 저자 자신이에요. 그러니 책 속의 문장이 바뀌려면 저자가 달라져야만 해요.
27.

ㅡ은 티스푼으로 커피를 저었다. 이미 충분히 섞었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건 옆에서 보면 두꺼운 알이 하얗게 보이는 안경을 쓴 ㅡ이, 아직은 사십대였던 ㅡ이, 평생 책만 읽은 가난뱅이 책벌레 ㅡ이, 꼼꼼한 교열자로 유명했으나 인터넷과 검색기가 교열을 대체하면서 20세기와 함께 쓸모가 사라진 ㅡ이 자기 머릿속을 뒤지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14.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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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숲으로 가서 천천히 나무 밑동과 고사리 옆으로 기어 들어갔고, 피곤해지면 땅에 몸을 눕히고 회색 이끼와 가지로 만들어진 그물 사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할머니에게 어디 다녀오셨느냐고 물었고, 할머니는 잠깐 눈을 붙이고 왔다고 대답했다.
19 유령의 숲

여름의 책
토베 얀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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