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호모 루덴스. 인간을 정의하는 개념의 하나. 유희인.
놀이하는 인간......글쎄, 난 여지껏 호모하면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사람이란 뜻...)와 동성애를 하는 사람을 호모 정도로만 알고 지내 왔다. 뒤늦게 알고자 함의 즐거움에 빠진 난, <호모 루덴스>란 책 제목에서 제일 먼저 끌렸고, 놀이 하는 인간이라는 문구에 또 한 번 끌렸다.
언젠가 인터넷 신문에서 스치듯 읽었던 기사중에 어떤 유명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말이 "잘 놀다 간다."였다. 그때 그 기사를 읽으면서 느꼈 던 것은 한 번 사는 인생 끝자락에서 이렇게 멋지고, 간단하게 그리고 많은 의미를 담고, 담담하게 가벼운 듯 하면서 결코 가볍지 않은 말을 남길 수 있었던 그 분이 너무도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거북하거나 무겁지 않게 인생을 정의 내리신 분이 누구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이 너무도 한심하고 부끄럽기까지 하다. 나도 이렇게 멋지게 인생의 끝자락에서 굿바이를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면서, 나도 멋지게 가고 싶다는 각오를 하게 된다. 그러려면 잘 놀자. 정말 잘 놀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놀이 하는 인간....진지....결국은 놀이....이 책 만큼이나 어렵다.
읽어도 읽어도 어렵다. 끊임 없이 물음을 주고 역사적 배경으로 답을 주고 돌고 도는 듯한 <호모 루덴스>는 작정을 하고 공부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듯하다. 화장실 변기 위까지 끌고 다니게 되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나도 기특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 책인 것은 확실하다. 읽으면서 내가 좀 더 쉽게 이 책에 다가서서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보니 (평소의 나를 볼 땐 이정도의 진도 나가기 힘든 책은 포기하고 덮어 버리는 편이다.) 요즘 대 유행처럼 주장하고 강조하는 리얼(real)을 생각해 봤다. tv를 켜면 모든 방송사에서 간판으로 내세우는 "리얼 생 버라이어티"가 대세다. 모방송사 주말 대표 프로그램은 리얼을 표방한 각본의 존재로 한바탕 입방아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고 이후 시청자들은 등을 돌리고 시청률 싸움에서 진 그 프로그램은 일단은 막을 내린 듯 하다. 나도 즐겨보는 프로그램이지만, 우린 무얼 바랐나 하고 생각 해 보게 된다.
10~20년 전만해도 제안된 단어들 금기어도 많았고, 틀로 반듯하게 짜듯이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여 줘야 했던 오락프로그램들...지금은 입에서 나오는 거친 욕설을 제외 하고는 거의가 다 허용이 되는 틀이 없는 즉흥적(ad lib)애드립을 잘 해야만이 주목을 받는 상황이 된 것 같다. 대스타가 나오려면 연예인으로 비춰지는 그대로의 모습 보다는 연예인 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속을 들여다 보는 듯 해야 만들어지는 때이기도 하고. 그래서 만들어진, 카메라가 한 유명인의 24시간을 담아내는 프로그램도 있는 것 같다. 카메라를 앞에 두고 아니 의식한 상태에서 절대로 사적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임에도 우린 리얼이라 믿고 또 속아 넘어가 주는 것도 하나의 룰이 된 놀이인 것인가 싶다.
나 혼자만의 자유로운 시간 일때, 생각 중 일때 비로소 진지해 질 수 있는 것. 이 책의 저자인 요한 하위징아가 말한 인생에서 놀이를 구분 짓는 잣대가 바로 진지함이 아닌가 싶다. 곳곳에 진지함이 없다면 결코 놀이도 놀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놀이 그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했다. 건강한 웃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페어플레이를 잊지 말아야 겠다.
(p.295 내용중) 기억하고 싶은, 그래서 입에서 맴돌게 되는 재미있는 내용이 있다.
"저술이란 무엇인가?"
"지식의 보관자."
"말은 무엇인가?"
"생각의 배신자."
"혀란 무엇인가?"
"공기의 회초리."
"공기란 무엇인가?"
"생명의 보호자."
"생명이란 무엇인가?"
"죽음의 노예, 한 장소의 손님, 지나가는 여행자."
다섯살이 사용하기엔 제법 어려운 단어도 거침없이 내밷는 딸아이랑 할 수 있는 수수께끼 같은 말놀이가 지금은 매우 흥미롭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애르립이 아닌가 싶다. 답이 딱 맞아 떨어지는 연산게임이 아니어서 더 무제한 적인 이 놀이가 한 동안은 나와 딸을 웃게 해 줄 것 같다.
그러면 나와 딸아이는 진지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놀이를 하고 있으므로......
인생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호모 루덴스>를 스치는 것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