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군주 - 근대일본의 권력과 국가의례 이산의 책 26
다카시 후지타니 지음, 한석정 옮김 / 이산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지배층은 정치적 행위자이자 신성한 국가를 상징하는 두 개의 신체를 가진 천황의 이미지를 만들어냄으로써 근대 국가를 완성하려 하였다. 본래 지역에 기반하여 제각각 살아가던 인민을 국민으로 전화시키기 위해서 두 개의 신체를 가진 천황이 요구되었거니와 이를 수용시키기 위해서 지배층은 온갖 전략을 고안하였다. 그 결과 서구로부터 유입된 최신 장치들을 동원하여 만들어진 화려한 군주(천황)’는 일본 국민의 심성에 만세일계의 신성한 전통으로서 각인되었다.


에도 막부 시기 일본 열도에 거주하는 인민은 신분적, 지역적으로 나뉘어 있었다. 천황을 중심으로 메이지 유신을 단행한 지배층은 서구의 위협에 맞서 근대 국가를 만들어내려 했는데, 무엇으로써 네 섬-규슈, 혼슈, 시코쿠, 훗카이도-의 인민을 하나로 묶어야 했을까? 이 지점에서 권력은 없고 주술적 권위만 가진 천황이 불려나와 정치적 행위자로 옷 입혀진다. 이로써 교토의 구름 위어딘가에 살고 있던천황은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후손으로서 전 일본을 통합하는 상징이 되는 동시에 근대 국가를 통치하는 정치적 행위자의 이미지를 얻게 된다.


주술적 권위만 가진 천황이 민중에 단번에 받아들여질 수 없었기 때문에, 메이지 정부의 지배층은 권력까지도 가진 군주의 이미지를 수용시키기 위해 여러 전략을 동원하였다. 그 전략은 천황의 순행, 새 수도 건설, 그리고 황실의례 꾸며내기 이 세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천황은 교토의 옥렴을 걷고 나와서전국을 순행하였다. 천황은 아버지로서 일본 열도의 네 섬을 돌아다니며 백성들을 굽어살폈다. 백성들은 보일 듯 가려진 천황을 섬기면서 국민으로서의 정체성과 규율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도쿄가 수도로 결정된 것도 이 시기였다. 천황의 두 신체처럼 기존의 수도였던 교토는 천황의 만세일계를 상징하는 전통적인 도시로 남게 되고, 도쿄는 번영하는 국가를 상징하는 제국의 수도로 변모하였다. 황실의례는 주로 교토와 도쿄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역시 교토에서는 만세일계의 천황을, 도쿄에서는 정치적 주권자로서의 천황의 면모를 돋보이게 하는 데 집중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서 천황과 무관하게 살고 있던 민중은 점차 국가의 일원, 즉 '국민'이 되어갔다. 일본 내부에서 이루어진 작업과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은 대외 침략전쟁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는 천황의 개선순례가 이어졌고, 이때 민중은 천황 폐하 만세! 제국 만세! 의 함성으로 뒤덮으며환호했다. 전사자들은 신사에 묻혀 신격화되었는데 대부분의 신사는 이 시기에 지어진 것이었다. 청일·러일전쟁 시 야스쿠니 신사의 새전(賽錢)과 전쟁박물관 입장객수의 증가는 외부의 위협에 대응하여 형성되어지는 국민적 일체감을 상징한다.


근대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메이지 정부는 두 개의 신체를 지닌 천황()이라는 이념을 고안하였고 이 새로운 이념을 민중의 심성에 스며들도록 하기 위해 여러 전략을 동원하였다. 저자도 강조하고 있듯이 메이지유신 시기를 일본사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근대국가건설이라는 범주에서 바라볼 때, 새로운 체제를 건설·유지하기 위해서 이념이 요구된다는 점, 그 이념을 사람들의 심성에 각인시키기 위해서 어떤 전략이 동원되는지 일본의 사례를 통해서 배울 수 있다이념의 관철을 위해 동원되는 전략에 대해서는 살펴봤으니 남은 문제는 천황제의 원리적 측면이다. 다음 독서는 후지타 쇼조의 <천황제 국가의 지배원리>로 이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