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가토 요코 지음, 윤현명 외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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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국가를 수립한 일본은 청일전쟁에서부터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50여 년간 전쟁에 몰두하였다. 일본은 조선을 거쳐 만주로, 만주를 거쳐 중국으로, 중국을 거쳐 동아시아 전체로 점점 더 큰 전쟁으로 나아갔다. 이 전쟁은 일련의 과정에서 주된 행위자로 등장한 군부, 군부를 제어하지 못한 천황과 내각, 군부를 지지한 국민이 선택한 것이었다.


  전쟁으로 나아갈 때 일본은 어떤 생각을 했던 것일까?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주권국가로 도약하고 싶어 했다. 정부에 반대해온 민권론자와 반정부파조차도 불평등조약을 폐지하고 국권을 확립해야한다는 데 동의하며 전쟁에 찬성하였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인의 심성구조에 각인된 ‘20억 엔의 자재와 20만 명의 영령이라는 구호는 이후 중국에 대한 분노를 가중시켰다. 만주사변 이후 중일전쟁 시기까지 군부는 주된 행위자로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정부로부터 외면 받아온 농산어촌 국민들의 지지가 있었다.


  각각의 전쟁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자. 청일전쟁은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여 일본이 이익선으로서의 조선을 확보하고자 일으킨 전쟁이었다. 전쟁 이전에 일본은 영국과 조약을 체결하여 영국의 지지도 받은 상황이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러시아와 직접적으로 대립하게 되었다. 일본의 제1 목표는 조선이었음에도 일본은 열강의 도움을 얻어내고자 의도적으로 만주를 앞에 내걸며 영국과 미국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서구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조선을 식민지배하였다. 1차세계대전 때에는 중국의 산둥반도를 점령하여 바다와 육지 양쪽에서 중국을 공격할 수 있는 거점을 확보하게 된다. 여기서 나타나는 일본의 침략 행위의 특징은 전략적 이익에 따라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만주사변 이후로는 사태가 변화한다. 만주사변은 이시와라를 중심으로 하는 관동군이 독자적으로 일으킨 전쟁이다. 당시 와카쓰키 내각은 관동군의 독자 행위에 대해 유효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사태는 악화되어 일본은 국제연맹을 탈퇴해버린다. 중일전쟁을 개진할 때 군부는 염려하는 쇼와 천황에게 3개월 만에 전쟁을 끝낼 것을 장담하였다. 태평양전쟁을 개진할 때에는 희망적인 관측으로 일관하였다. 미즈노 히로노리는 일본은 군수 원료의 대부분을 외국에 의지하는 나라로서 지구전에는 이길 수 없는, 그러므로 전쟁할 자격이 없는 나라라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묵살되었다.


  청일전쟁에서부터 태평양전쟁까지 50여 년간 제국주의의 길을 걸은 일본은 결국 파멸적인 결과를 맞이하였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일본인들 사이에서 '왜 일본은 전쟁(아시아-태평양전쟁)을 선택했을까'하는 물음이 제기되어왔다고 한다. 나는 그보다도 근대 일본의 '무엇' 때문에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하는 지경에 이르렀는가? 묻게 된다. 이 물음은 당시 일본의 '체제', 그 체제 속에서 일본 국민의 심성구조에 대한 물음이다. 이 주제를 붙잡고 전쟁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 근대 일본의 '천황제'에 대한 탐구로 독서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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