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나로 살 결심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두번째 선택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학동네 #도서제공

항상 마음 한 켠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으로 신작 책 소개가 눈길을 끌었다. 판사의 법복을 벗고 드라마 작가로 전업한 뒤 그의 두 번째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저자는 판사에서 전업 작가가 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보지는 않았어도, <미스 함무라비>라는 드라마에 대해 들어본 적 있다. 어쩌다가 글을 쓰고, 또 그걸 드라마로 만들 수 있었을까. 그 속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 장에서는 법원에서 법관으로 지내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자칫 정치적 색을 띠는 책인가 싶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런 책을 지양하는 편이라서. 하지만 읽다 보니 알 수 있었다. 그저 솔직한 글이었다. 두 번째 짱에서는 작가의 삶을 시작하며 겪게 된 좌절, 권태로움, 경제적 상황까지 여과 없이 보여준다. 당신이 개인주의자라고 재차 강조하는 거 치곤, 세상에 귀 기울이고, 또 정의로운 모습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더하여 요즘 사회,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인사이트가 내가 생각하는 바와 많이 닿아있어서 여러 번 공감했다.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도 깊은 통찰을 글로 풀어내는 걸 보고, 이런 사람이 글을 쓰는구나, 생각하게 했다.
꼭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안정된 직장에서 새로운 직업, 꿈에 대해 도전하고 싶은 사람들 모두가 읽어볼 만한 이야기다. 추천!


——————————————————————

나는 말이 무섭다. 말은 퇴고 과정이 없다. 글과 달라서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 부담이 가슴 한구석에서 나를 짓누른다.

——————————————————————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일이다. 나는 누구에게 말을 걸고 싶은 것인가. 왜.

——————————————————————

'대중'이란 사실 실체가 없는 무수히 다양한 개개인의 집합체일 뿐이다. 그리고 다수는 대체로 말이 없다.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적극적이고 반복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소수가 과대 대표되어 착시현상이 생길 때가 많다. 작가 역시 어리석은 한 명의 인간인 건 마찬가지기에 결코 오만과 독선에 빠져서는 안되고 세상을 향해 안테나를 바짝 세우고 들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지금 세상에는 너무나 신호가 많아서 신호와 소음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이것이 창작자를 더 힘들게 만든다. 어떻 게 보면 대중문화 콘텐츠 창작자가 겪는 고민은 대중 정치인이 겪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문화 역시 일종의 정치인 것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래도 춤을 추세요
이서수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눈에 익은 이름의 작가님인데, 이번 소설집을 통해 처음 접해봤다. 직장 생활과 가족, 친구 등 우리의 일상과 아주 밀접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더욱 공감하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총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고, 특이하게 소설집의 제목인 < 그래도 춤을 추세요 >는 < 춤음 영원하다 >에서 나오는 대사 중 하나다. 춤으로 묶을 수 있는 8편인가, 생각해보면 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
작가님 성별 특성상 여성의 서사를 다양하게 풀어내는데, 그 중 < 이어 달리기 >와 <AKA 신숙자 >, < 춤은 영원하다 >까지 딸과 엄마라는 공통된 등장인물이 나온다. 물론 각각 다른 인물이긴 하나, 모녀라는 중복된 인간 관계를 가지고 이렇게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꽤 인상 깊었다. 보통 그 결이 비슷해지거나, 어떤 포인트에서 기시감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서 좋았다.


[책 속에서]

—————————————————————

엄마는 그럴 때 없었어? 일하다 도망치고 싶었을 때.
있었지.
그럴 때 어떻게 했어?
…네 생각 하면서 참았어.

—————————————————————

아저씨는 어떤 춤을 추나요. 아저씨가 몸을 흔들 때 세상도 같이 움직인다는 거 아세요. 모르세요. 나는 열일곱 살에 이미 알았는데, 그걸 알아도 인생이 바뀌지는 않더라고요. 그래도 춤을 추세요. 그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

설날부터 시작된 피로감이 아직도 안 사라졌어. 인간은 달걀을 찜이나 프라이로 만들어 먹는 데서 만족하지 못하고,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고심하는 존재라는 게 슬퍼.
미리야, 책 쓰는 게 많이 힘드니?
가난이 너무 무거워. 이젠 예전처럼 그걸로 농담도 못하겠어.

—————————————————————

어떤 사랑은 너무 커서 무섭고, 어떤 사랑은 작아서 무겁지.

—————————————————————

식사는 잘 챙겨 드시는지, 하루에 한 번은 집을 나서는지, 안부를 주고받는 사람이 그곳에 있는지. 없다면 꼭 만들어야 해요. 선생님. 사람은 혼자 있으면 안 돼요. 생각이 한군데로 고이거든요. 흐름이 없는 물웅덩이처럼, 그것도 작디 작은 물웅덩이처럼 고인 채로 가만히 썩게 돼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5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에 순간 당황했으나, 첫장을 펼치자 마자 보인 이시봉의 발자국 사인을 보자마자 느꼈다. 이거 재밌겠다…
주인공인 이시습은 알콜 중독인 20살 남자이다. 키우던 강아지 이시봉 때문에 '앙시앙 하우스'라는 비숑 전문 업체?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시습과 이시봉의 이야기, 그리고 이시봉의 조상인 베로와 베로를 키우던 고도이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전개된다. 처음엔 이 전개가 낯설었는데 읽을 수록 빠져들었고, 되레 이야기에 풍성함이 더해졌다. 특히 180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베로의 이야기가 꽤나 촘촘한 서사로 흡입력있다. 줄거리에 대해 더 이야기를 하고싶지만 뭘 이야기해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참는다.
더하여 이 책에 대한 박정민님의 추천사 중 하나가 정말 공감되어 함께 적어본다. «그리고 전국의 반려인들이여, 이 책을 절대 보지 마시오. 아니 보시오. 아니 보지 마시오. 아니. 몰라 시봉. 그냥 보시오!» 반려인들은 이 책을 삽니다. 울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어요.

사실 귀여운 표지와 제목만 보고 신청했던 서평단인데.. 웬 벽돌책..? 이렇게 두꺼운 지 몰랐는데요, 하면서 빨리 시작해야겠다 하고 읽은지 며칠 걸리지 않아 금방 끝났다. 벽돌책에 겁내지 말자. 이기호 작가님 소설은 처음인데 또 읽고 싶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그의 별명에 납득했다.


< 책 속에서 >
————————————————————————

나는 그때 왜 미안해하지 않고 억울해했을까? 아빠는 살면서 그 말을 자주 떠올렸다고 한다. 미안한 것과 억울한 것을 뒤섞지 말 것. 나와 시현을 키울 때도, 공장에서 동료들과 일하고 투쟁할 때도, 아빠는 자주 그 말을 생각했고, 또 주문처럼 입안에서 중얼거리기도 했다. 아빠에겐 그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했다.

————————————————————————

나는 잠깐 이시봉과 시현이 동시에 위기에 빠졌을 때 누구를 먼저 구할지 상상해보았다. 아마도 나는……시현을 먼저 구하려 들 것이다. 몇 번을 상상해봐도 답은 같았다. 그러니 이시봉을 데리고 나갈 수가 없었다. 그게 이시봉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나의 한계였다.

————————————————————————

"예술이라는 게 결국 다 자기가 싼 똥 냄새 맡는 거거든. 동물들은 다 자기 똥 냄새를 맡아보는데, 인간만 아닌 척하는 거지."

————————————————————————

"원래 종이라는 게 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거잖아요."
김태형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사랑인 줄 알고……"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웃기려고 한 과학 아닙니다 - 아주 사소한 질문에서 출발한 세상을 바꿀 실험들
이창욱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실들. 이를테면 유변학적 관점에서 고양이는 액체로 정의된다던지, 최근 더 관심을 갖게된 주식시장이 복잡계라는 것, 내게 너무나 생소한 황색망사점균이라는 그들이(?) 지하철 노선도를 만들 정도의 지능을 가졌다는 사실 등등… 웃긴 과학 연구에 주는 노벨상의 패러디 이그노벨상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감자칩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나, 실제로 욕설을 하는 게 통증을 줄이는 데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와 같이 다소 엉뚱하고 웃긴 과학이 잔뜩 있다. 이 모든 것이 실제 과학적으로 입증되었거나 오랜 시간에 걸쳐 관찰 또는 실험되었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느껴졌고,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나로서 책을 읽는 내내 유익한 시간이었다. 책에서 다뤄진 '이그노벨상'이 단지 웃긴 과학이 아니라 과학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저변을 넓혀준다는 점에서 괄목할만 하다.

————————————————————————

실험 결과, 욕을 한 사람들이 탁자를 설명하는 단어를 사용한 사람들보다 통증을 더 잘 참았다. 남성의 경우 욕을 한 사람이 (190.63초) 욕을 하지 않은 사람(146.71초)보다 찬물에서 43.92초나 오래 버텼다. 여성도 욕을 한 경우에 37.01초를 더 참았다. 실험 후 통증 척도 검사에서도 욕설을 한 참가자들이 느낀 통증의 강도가 덜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그렇다. 여러분, 삶이 힘들면 욕을 좀 해도 된다! 과학이 여러분께 드리는 삶의 꿀팁이다.

————————————————————————

"모든 과학 연구는 사실 다 이런 호기심에서 시작됩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무엇이 좋은 과학인지 너무 빨리 정하는 것 같아요." 모든 것이 경제적 논리 아래서 숫자로 치환되는 지금의 세계에서 이상한 호기심은 아마도 가장 변호하기 힘든 가치일지도 모른다.

————————————————————————

최근에 읽었던 과학 도서 <찬란한 멸종>처럼 구어체로 서술되어 있어서 읽기 쉽기도 했고, 과학동아 부편집장이자 과학칼럼리스트인 저자 이창욱님이 괄호 안에 쓴 문장들은 친한 친구, 또는 선배로부터 직접 듣는 이야기 같아서 더욱 재미있게 읽었다. 웃기려고 한 과학 아니라고 했지만 웃겼다. 쉽고 재밌게 읽을만한 과학서를 찾는다면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시지와 광기
야콥 하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익살스럽다는 추천사가 정말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채식주의가 당연한 세상에서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살아가는 기분이 딱 이럴까. 소설은 한 사건에 연루된 피의자가 형사에게 진술하는 조서를 독백 형식으로 전개된다.

———————————————————————————

고기를 사고 싶다면,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할복할 것이냐 아니면 실제로 할복할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는 거였죠. 그렇게 멀리 와 있더란 말입니다.

———————————————————————————

아내는 아주 좋은 생각이라며 채식주의자가 되는 걸 자기도 돕겠다더군요.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을요. 나는 절대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아, 저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저 몇 년 고기를 먹지 않으려는 것뿐이라고. 그걸로 뭔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단 말이야. 제가 이 년 동안 티라나에서 일한다고 알바니아 사람이 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제가 앞으로 여기, 이 취조실에서 이십 년을 보낸다고 형사가 되겠느냐고요. 제 말뜻이 뭔지 아시겠어요. 형사님? 그건 제 결정이었을 뿐입니다.

———————————————————————————

채식주의자는 피조물에 대한 연민에서 육식 향유를 포기하지만, 저는 스스로에 대한 연민 때문에 채식을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했습니다.

———————————————————————————

한 접시 가득한 채소는 주례 앞에 신랑 혼자 달랑 서 있는 결혼식 같은 그런 모자라는 음식이란 말입니다. 간단한 진리입니다, 형사님. 채소는 그냥 맛이 없어요. 배추, 양파, 콩을 먹으면 배에 가스가 차고, 가지와 호박은 익으면 질척거리고, 파프리카를 생각하면 트림이 납니다. 그럭저럭 괜찮은 건 감자뿐이에요.

———————————————————————————


자신이 채식주의를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일어난 사건의 발단과 결말을 재미있게 풀어낸다. 주인공은 동료들과의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육식 메뉴를 주문했다가 비난을 받고 타의적이면서 충동적으로 채식을 결심한다. 채식을 하게 되며 일어나는 부작용과 상황에 대해 진솔하고, 또 통찰력 있게 진술하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하면서 웃고, 또 경악하며 읽었다.
가볍게 읽기에도 그저 재밌긴 하지만,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확실하다고 느낀다. 채식의 유행, 그리고 그에 반하는 육식에 대한 사회 전반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반응이 획일화되고, 이러한 것들이 이데올로기화 되는 것을 경계해야함을 꼬집는다. 실제 옮긴이의 말을 보면, 작가인 야콥 하인은 [〈도이칠란트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그 스스로 사프란 포어의 책을 읽은 다음 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지만, 스스로를 '채식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거부한다고 밝혔다. 유행처럼 번져가는 독일 내의 채식주의에 뭔가 불편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채식주의자'이기 때문에 너희보다 나은 사람이다. 그렇게 믿는 순간, 채식주의는 이데올로기화된다. 참여하지 않으면 나만 도태될 듯한.] 이라고 쓰여있다. 재미로 읽어도 좋고, 가볍게, 또는 무겁게 읽어도 좋을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