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지와 광기
야콥 하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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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살스럽다는 추천사가 정말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채식주의가 당연한 세상에서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살아가는 기분이 딱 이럴까. 소설은 한 사건에 연루된 피의자가 형사에게 진술하는 조서를 독백 형식으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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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사고 싶다면,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할복할 것이냐 아니면 실제로 할복할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는 거였죠. 그렇게 멀리 와 있더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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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아주 좋은 생각이라며 채식주의자가 되는 걸 자기도 돕겠다더군요.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을요. 나는 절대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아, 저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저 몇 년 고기를 먹지 않으려는 것뿐이라고. 그걸로 뭔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단 말이야. 제가 이 년 동안 티라나에서 일한다고 알바니아 사람이 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제가 앞으로 여기, 이 취조실에서 이십 년을 보낸다고 형사가 되겠느냐고요. 제 말뜻이 뭔지 아시겠어요. 형사님? 그건 제 결정이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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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는 피조물에 대한 연민에서 육식 향유를 포기하지만, 저는 스스로에 대한 연민 때문에 채식을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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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접시 가득한 채소는 주례 앞에 신랑 혼자 달랑 서 있는 결혼식 같은 그런 모자라는 음식이란 말입니다. 간단한 진리입니다, 형사님. 채소는 그냥 맛이 없어요. 배추, 양파, 콩을 먹으면 배에 가스가 차고, 가지와 호박은 익으면 질척거리고, 파프리카를 생각하면 트림이 납니다. 그럭저럭 괜찮은 건 감자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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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채식주의를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일어난 사건의 발단과 결말을 재미있게 풀어낸다. 주인공은 동료들과의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육식 메뉴를 주문했다가 비난을 받고 타의적이면서 충동적으로 채식을 결심한다. 채식을 하게 되며 일어나는 부작용과 상황에 대해 진솔하고, 또 통찰력 있게 진술하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하면서 웃고, 또 경악하며 읽었다.
가볍게 읽기에도 그저 재밌긴 하지만,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확실하다고 느낀다. 채식의 유행, 그리고 그에 반하는 육식에 대한 사회 전반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반응이 획일화되고, 이러한 것들이 이데올로기화 되는 것을 경계해야함을 꼬집는다. 실제 옮긴이의 말을 보면, 작가인 야콥 하인은 [〈도이칠란트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그 스스로 사프란 포어의 책을 읽은 다음 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지만, 스스로를 '채식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거부한다고 밝혔다. 유행처럼 번져가는 독일 내의 채식주의에 뭔가 불편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채식주의자'이기 때문에 너희보다 나은 사람이다. 그렇게 믿는 순간, 채식주의는 이데올로기화된다. 참여하지 않으면 나만 도태될 듯한.] 이라고 쓰여있다. 재미로 읽어도 좋고, 가볍게, 또는 무겁게 읽어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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