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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19세기 영국에서 보낸 편지 - 로맨스 여제의 삶과 사랑, 매혹의 삽화들 ㅣ 일러스트 레터 2
퍼넬러피 휴스핼릿 지음, 공민희 옮김 / 허밍버드 / 2022년 12월
평점 :
이 책은 제인 오스틴의 편지 엮음이자 제인과 그 가족들의 그림, 시대상을 반영한 다양한 작가들의 그림을 담아낸 '일러스트 레터'다. 남의 편지를 보는 일은 항상 재미있다. 편지글로 구성된 소설들이 재미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인 오스틴은 우리가 익히 들어 아는 '오만과 편견'의 저자로서, 그 작품을 그렇게 재미있게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인 그녀의 위트, 그 시대의 생활, 따뜻한 마음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작가들은 대부분 자신의 삶을 스토리나 주인공에게 투영하기 마련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배려하고 응원, 걱정, 격려의 말을 빼먹지 않으면서 진지할 땐 진지하고 굉장히 상식적으로 살아가는 그녀만의 성격이 편지에 묻어난다. 편지를 읽다 보면 오만과 편견의 장면에 대입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고, 이 책의 작가는 그런 점을 잘 캐치해서 삽화와 함께 제공하여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19세기를 우리가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친절하게 작가는 제인의 남자 형제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제인이 언급하는 단어는 무슨 의미이며 왜 썼는지 그 이유를 소상히 설명해준다. 19세기 편지는 지금의 이메일과 전혀 다른 만큼 그런 부분을 짚어주지 않으면 이해를 못한 채로 넘어갈 수 있다는 걸 작가는 잘 알고 있다. 또 하나 좋았던 점은 당시의 군인, 교사, 하녀, 일반 시민 등 제인 오스틴의 주변에 있을 법한 다양한 복장과 소품을 그림 자료를 통해 계속 제공한다는 점이다. 서양화에서나 볼 수 있던 따뜻한 색감의 마을, 풍성한 치마를 입은 여인들, 한껏 뾰족하게 깃을 세운 남성들, 귀족들의 파티와 소소한 티타임 등 그 시대에 내가 들어가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전시회에 가서 보는 그림들은 때론 심각하게까지 느껴지는데, 모든 챕터에서 등장하는 클래식한 풍경화와 밝은 미소를 머금은 빈티지한 초상화들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위트있는 표현, 즐겨하는 농담 등 웃음이 나오는 부분은 참 많았지만, 사실 마음이 울리고 진심을 담아 위로해주고 싶게 만든 문구는 다른 편지에 있다. 제인이 오빠에게 아버지의 부고를 알리는 편지에서, 자신도 충격받았을 그 상황을 꾹꾹 누르고 보듬고 달래며 갑작스럽게 부고 소식을 들을 오빠를 최대한 안정시키고 충격을 줄이기 위해 애쓴 흔적이 묻어나는 문장들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워낙 주관이 뚜렷하고 열정적으로 글을 쓰며, 애정 없는 결혼보다 비혼이 낫다고 하던 제인이 죽고 제인의 언니가 조카에게 부고를 알리는 편지는 이 책을 통틀어서 가장 슬펐다.
제인과 언니 커샌드라는 서로의 인생을 비추는 빛 같은 존재였다. 그 빛이 사라졌다는 것을 실감하며 자신의 마음을 편지에 써내려가는 커샌드라의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한 작가의 가족사와 인생의 이야기를 편지를 통해 볼 수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덕분에 그녀가 화목한 집안에서 밝은 기운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고, 그 인생이 그리 불행하지 않았을 것임에 안도하며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