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에서 리틀비 검색이 안되서 여기에 올립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모습이 하나 하나 모두 같을 수 없듯 , 각 개인이 느끼는
삶의 무게 또한 같을 수 없다. 그 삶의 무게의 편차를 찾아 서로의 기준을 알게되고
알아야하는 것이 우리가 우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밑거름이 아닐까?
나이지리아의 석유전쟁으로 인해 부모가 살해되고 그 장면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인해
추격자들을 피해 도망을 치는 리틀비라는 어린 소녀와 영국에서 유명한 남편과 커리어
우먼으로서 멋지게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새라의 삶의 무게는 너무나 다르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워 보인다. 죽음의 문턱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지만 영국에서 불법체류가가 되고 언제 추방당할지 모르는 처지에 놓이게 된 리틀비에
게 삶은 과연무엇일까? 더 이상 잃을것이 없기에 언제든지 추격자들이 들어닥치면 죽
을 수 있는 각오가 되어있는 그녀에게 삶의 무게는 더이상 의미가 없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공한 여성 새라에게는 그녀 인생에서 살인에 의한 죽음이나 굶주림 같은 단
어 자체를 생각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그네에게 가장 힘들 일들은 평범한 것들이었다.
이토록 우리네 삶은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로 너무나 다른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이 우연한 사건으로 얽히게 되고 결국 서로의 가장 아프고 힘든 부분이 목숨을 잃
는것과 가진것을 잃는 것이라는 비교도 안되는 부분이지만 결국 그 둘다 인간이 인간과
의 관계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고 찾아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절대로 도움이 될 수 없고 도움을 줄 수 없을것 같은 관계지만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것으로 생각하고 세상에 대해서 저항하고 극복하려 한다.
아직도 아프리카 어딘가에서는 기아에 허덕이고 하루에도 수천명이 죽어가고 있지만
또 선진국 어딘가에서는 최고의 자리와 부를 얻지 못함에 스스로 비관하고 죽음을 택
하는 이들이 있다. 이 모든 문제들은 결국 인간이 과거부터 우리가 아닌 나를 선택하
고 더 많이 가지고자 하는 문제들로 출발한것은 아닐까?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가 더욱
윤택할 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옥죄는 함정으로 빠져들고 있다. 우리가 눈을 돌려야 하
는것은 발전과 개발이 아니라 타인, 즉 우리라는 공동체다.
새라는 어린 리틀비를 추격자들로 부터 살리기 위해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절단했다.
그녀는 그렇게 하지않고 그 자리를 벗어날 수 도 있었으나 영국에 있는 자신과 나이지
리아에 있는 리틀비가 인간이라는 고리에 의해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의무이기도 하며 유대감이기도 하며 인간이 인간을 돕고 살리는
것은 선택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은 새라의 남편 앤드루의 대사가 생각난다. " 행복은 선반에서 꺼낼 수 있는 게
아니야. 노력해서 도달해야 하는 거라고." . 우리는 너무나 나약한 존재다. 힘에 부치
면 극복하기 보다는 외면하려 하고 핑계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앤드루의 말처럼 노력
해서 도달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깨질 수 있고 없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인
간에게 하는 노력만큼 값지고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지금
사는 이유와 앞으로 우리 인간이 해야 할 방향을 찾은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