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웃는 얼굴로 구워삶는 기술
로버트 치알디니.노아 골드스타인.스티브 마틴 지음, 박여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0월
평점 :
판매중지


좀 가벼운 책이 읽고 싶었다. 그런 날 있지 않은가. 후루룩 편하게 읽고 싶은 날. 그래서 큰 고민 없이 샀다. 제목도 표지도 편하게 읽어요~하며 유혹하기에, 그럴까~ 하고 응답한 것이다. 책 소개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샀기에 제목과 표지만 보고 소소한 하지만 통쾌한 경험담을 기록한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펴보니 전혀 달랐다. 저자는 이미 '설득의 심리학 (Influence: The Psychology of Persuasion)'이라는 유명저서를 출판한 심리학자였으며, 책은 설득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기술들을 유명 심리학 실험에 근거하여 활용법과 함께 소개하고 있었다. 심리학에 기반한 실용서였고, 짧지만 쓸모 있는 내용들이 알차게 정리되어 있었다. 직관적으로 책의 제목을 붙이자면 '설득의 기술' 정도가 맞았을 것 같다. 물론 흥행을 고려한다면 제목은 아니다.


그래도 '웃는 얼굴로 구워삶는 기술'은 너무 심했다. 일단 '설득하다'와 '구워삶다'는 전혀 다른 말이다. '설득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상대편이 이쪽 편의 이야기를 따르도록 여러 가지로 깨우쳐서 말하다.'이고, '구워삶다'의 사전적 정의가 '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써서 상대편이 자기의 생각대로 움직이도록 만들다.'이다. 언뜻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일상에서 쓰임새는 전혀 다르다. 사전에서도 '설득하다'를 활용한 예문은 '경찰이 가출한 아이를 설득하여 집으로 돌려보내다'이자만 '구워삶다'를 활용한 예문은 '반대하는 사람을 돈으로 구워삶다'이다. '구워삶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며, 또 동시에 상대의 생각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상대의 생각이 어떻든간에 내가 원하는대로 행동하게 만든다는 뜻을 함유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의 원제는 'Little Book of Yes'이다. 의역하자면 'Yes를 이끌어내는 소소한 기술들' 정도일까. 재미없는 제목이지만 적어도 제목과 내용을 간극 때문에 황당하게 하지는 않을 제목이 될 것이다. 좀 더 흥행성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이 책의 서문의 제목인 '지금 당장 예스가 필요하다면'으로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랬다면 이 책을 좀 더 필요로 하는 독자들에게 연결시켜주지 않을까?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번역이다. 단언컨데 'Little Book of Yes'를 '웃으면서 구워삶는 기술'로 바꿔버린 대담함은 적어도 번역자의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본문의 번역은 뭐랄까 원서를 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원서의 문장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한 성실하지만, 지루한 번역이기 때문이다. 그거야 보기에 따라서는 미덕일 수도 있는데 문제는 한 사람의 번역 같지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장의 내용을 정리한 소제목과 책 사이사이 일러스트레이션에 덧붙인 글들이 보여주는 간결함, 명쾌함과 본문의 글들의 만연함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 그리고 본문 역시 한 사람이 쭉 번역하고 글을 다듬었다고 하기에는 어색하다. 결이 다른 글들이 군데군데 섞여있다고 해야 하나. 잘 읽히는 글과 그렇지 않은 글들이 각 장마다 다른 비율로 혼재한다. 안그래도 제목에 낚시질을 당한터라 심리학 책을 읽을 상태가 아닌데, 집중마저 쉽지 않다. 상상컨데 성실하지만 덜 흥미롭게 번역된 글을 편집팀에서 일부 수정한 것이 아닐까?

여러모로 아쉬운 책이다. 여력만 있다면 원서를 한 번 다시 보고 싶은 기분이다.


https://blog.naver.com/islandtea/222022218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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