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분 씨네 채소 가게 - 채소 장수 일과 사람 13
정지혜 지음 / 사계절 / 201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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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대형마트보다 시장을 자주 가는 편이다. 가전제품이나 생필품은 마트에서 사지만 채소, 과일, 고기 같은 먹거리들은 주로 시장에서 사다 먹는다. 가까운 마트가 아닌 멀리 시장으로 차를 타고 장을 보러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가계비 절약일 것이다. (마트로 장을 보고 온 날과 시장으로 장을 보고 온 날의 장바구니를 살펴보면 같은 돈을 쓰고 와도 항상 후자가 더 빵빵하다.) 하지만 우리가족의 살림살이가 나아졌음에도 10년을 넘게 한결같이 시장으로 장을 보러 가는 것이 단순히 가계비 절약 하나 때문만은 아니다. 시장에 가기 위해 차를 타고 가면서 바람도 쐬고 주차장에서 시장까지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는 그 즐거운 시간과, 장 보다가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호떡이나 도너츠를 사 먹곤 하는 소소한 재미들도 분명 시장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하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장 하면 어릴 적에 했던 ‘시장에 가면’ 놀이가 생각난다. 시장에 가면 사과도 있고 오이도 있고 만두도 있고 신발도 있고~♪ 로 끝이 없이 이어지는 노래처럼, 시장에 가면 확성기를 들고 ‘골라 골라’를 외치는 신발 가게 아저씨도 있고 노릇노릇 먹음직스러운 튀김과 고로케로 지나가는 손님들을 유혹하는 튀김 가게도 있고 매끈한 자태로 생선이 주루룩 줄지어 놓인 생선 가게도 있고 알록달록 제철과일들을 바구니에 담아 늘어놓은 과일 가게도 있다. 정말이지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게 바로 시장이다. 시장에서는 북적북적 사람구경 음식구경 옷구경, 아무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장보러 가기 위해 장바구니와 지갑을 챙기면서 장 보러 가자는 말 대신 항상 이렇게 말을 한다. “시장 구경이나 갈까?”

 

> 새벽 도매시장에서 채소를 구입하는 동이네 부모님

 

순분 씨네 채소 가게는 바로 이런 시장의 모습을 이루고 있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햇빛시장에서 채소 가게를 하는 동이네 부모님은 날마다 새벽 같이 일어나 도매시장으로 향한다. 저렴하고 질 좋은 채소를 사다가 그날그날 팔기 위해서이다. 아직 새벽빛이 가시지 않은 시각 도매시장은 남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내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아직 쿨쿨 잠들어 있을 시간에 시장 상인들은 물건을 고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부지런하고 깐깐하게 고른 채소를 싣고 가게로 돌아오면 본격적으로 순분 씨네 채소 가게의 하루가 시작된다.

 

> 장사하기 전에 꼼꼼하게 챙겨야 할 것들!! 

 

장사를 시작하기 전 동이네 가족은 분주하게 준비물을 챙긴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생각하기엔 그냥 채소바구니와 채소, 그리고 돈주머니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은근히 준비물도 많고 할 것도 많다. 무게를 달 저울, 손님들에게 담아줄 비닐봉지, 접시, 손질을 위한 칼, 장갑... 이렇게 준비물을 챙기고 채소를 다듬고 채소들이 하루종일 싱싱하게 팔릴 수 있도록 물도 뿌려 내놓으면 이제야 준비가 완료된다. 엄마는 싱싱한 채소를 가장 앞줄에 내놓고 장사를 시작하고 아빠는 차를 타고 단골 식당과 골목을 누비면서 배달과 장사를 겸한다. 이런 과정들을 읽으면서 장사라는 게 부지런해야 하고 손이 빨라야 하는, 참 쉽지 않은 일이구나 라는 걸 느꼈다. 또 그냥 사다 먹기만 하는 손님 입장에선 때로 가격이 비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채소의 원가와 채소를 사오기 위한 기름값, 가겟세, 손질하고 준비하는 비용까지가 포함된 금액으로 적절히 각각의 채소 가격을 매겨야 하는 상인들도 적정가격을 정하기가 참 어렵겠구나 싶기도 했다.

 

> 봄, 여름, 가을, 겨울 영양이 풍부한 제철 채소들

 

책을 읽다 보면 이렇게 중간에 제철 채소들을 두 페이지에 걸쳐 알려주는 부분이 있다. 시장이 좋은 것은 바로 이런 것 때문이다. 싱싱하고 영양도 많은 제철채소들이 무엇인지 시장을 한바퀴 둘러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는 것. 마트에는 어느 계절에나 대부분의 채소들을 팔지만 시장에서는 갈 때마다 채소의 트렌드(?)가 바뀐다. 어느 때는 냉이와 쑥갓이, 어느 때는 감자와 애호박, 오이가, 또 어느 때는 무와 배추가 여러 가게에서 저렴한 가격표를 달고 얼굴을 보인다. 보통 한 시장에 채소 가게가 여러 군데이니 한 바퀴를 빙 돌고 나면 꼭 살림의 달인이 아니더라도 그 철에 맞는 채소가 무엇인지 알 수 있고 가격비교도 쉽게 할 수 있어 좋다.

 

> 북적북적 시끌시끌 시장 한 바퀴~

 

밥상에 채소밖에 없다고 입을 삐죽이는 동이의 모습을 보며 웃음 짓고 중국집 아저씨가 들러 갖다 준 짜장 양념으로 밥 두 그릇을 먹겠다며 신나 하는 것에 또 한 번 웃다 보면 어느새 미로 같기도 하고 정신없이 북적대는 시장 풍경이 나온다. 책 속의 동이와 순분 할머니와 함께 멋쟁이 안경도 써 보고 예쁜 머리띠도 해 보고 각양각색의 그릇 가게도 구경해 보고 커다란 대야에 담긴 미끌미끌한 미꾸라지 구경도 하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삽화에 푹 빠지게 된다. 그리고 시장마다 꼭 하나씩은 있는 ‘VJ 특공대 출연’ (혹은 TV에 출연한 집)이라는 팻말이나 ‘원조’를 단 간판도 우리네 시장 풍경을 그대로 재현해내고 있어 웃음을 더한다.

 

>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모여든 손님들과 열심히 일하는 동이네 엄마 

 

그렇게 한참 시장 구경을 마친 동이와 할머니는 시장 활성화를 위해 열린 노래자랑에서 채소 가게 주인답게 배추를 머리와 몸에 두르고 노래를 부른다. 일등 상품에 욕심내지 않고 삼등인 자전거를 타기 위해 실룩실룩 춤도 추고 노래를 해 결국 인기상을 받고 두 사람이 돌아오면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시장은 더 북적이고 엄마는 목청을 높이고 다른 가게들도 더욱 장사에 활기를 띈다. 이 책에서는 동이네 엄마가 장사하는 모습을 일반적인 손님의 시선으로도 보여주고 장사꾼의 시선으로도 보여주는데 이 두 장면 때문에 새삼 나는 시장 상인들의 노고를 느낄 수가 있었다. 위 삽화에서처럼 동이네 엄마 입장이 되어 손님이 붐비는 장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 바글바글 모여든 손님으로 정신이 없을텐데 ‘이거 얼마예요?’하는 손님 말에 채소를 확인하고 대답도 해 주고 쌈, 무침 해먹는다는 손님에게는 덤도 넣어주고 달라는 채소를 집어 딱딱 원하는 손님에게 건네주고 계산까지 하려면 얼마나 정신이 없을까. 물론 모든 시간 손님이 이렇게 붐비는 것은 아니지만 장사를 하다 보면 이상하게 손님이 몰리는 시간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원하는 것을 봉지에 담아 덜렁덜렁 들고 오면 그만이지만 이럴 때 채소가게 주인은 정말 손발이 열 개라도 모자라겠구나 싶었다.

 

> 날이 저문 뒤 한산해진 시장의 풍경

 

아무튼 그렇게 정신없이 붐비는 시간도 지나고 어둑어둑한 시장에 손님의 발걸음이 뜸해지기 시작하면 시장 상인들은 그제야 장을 보고 서로 물물교환을 하기도 한다. 문을 닫기 전 찾아온 마지막 손님에게 할머니는 따로 좋아하는 걸 챙겨주기도 하면서 단골과 정을 나눈다. 시장에서 장을 보는 사람들이 편리한 마트를 놔두고 아직까지 시장을 찾고 단골가게를 찾는 것은 아마도 채소와 과일을 사며 덤으로 딸려오는 이런 정(情)과 구수한 대화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손님도 가고 하루 일과를 마친 동이네 가족은 채소를 잘 챙겨두고 문단속을 한 뒤 집에 돌아와 하루의 고단함을 털어버리듯 달콤한 잠에 빠져든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엔 시장 상인라는 직업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의사, 간호사, 변호사, 선생님, 경찰... 이런 것들은 직업 하면 딱 떠오르는 것들인데 이러한 직업의 범주에 ‘상인’을 넣어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사실 어디에 가나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직업이 바로 상인과 직장인인데 말이다. 의사, 변호사처럼 ‘사’짜 들어가는 번듯한 직업만 직업인으로 여긴 것 같아 새삼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또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지금에나마 접한 것이 다행이기도 했고. ‘커서 뭐가 되고 싶어?’라는 물음에 과학자요, 선생님이요, 의사요, 경찰이요 대답하는 우리 아이들도 어쩌면 은연중에 나 같이 생각할지도 모른다. ‘채소가게 아줌마도 직업이예요?’하고 말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면서 직업의 다양성과 중요성에 대해 설명해주면 아이가 건강한 직업관을 가지는 데에 더욱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나라는 대학 나온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젊은 나이부터 장사를 하려는 사람보다는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에 입사하거나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이 훨씬 많다. 경기불황의 여파로 보다 탄탄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자 하는 경향이 늘면서, 희망하는 진로가 점점 더 획일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건강하게 굴러가기 위해서는 이런 직업도 저런 직업도 다 필요하다. 의사와 선생님도 꼭 필요한 직업이고 아주 훌륭한 직업이지만, 우리가 매일 먹는 쌀을 만드는 농부나 아침 밥상에 올라오는 채소와 고기를 파는 상인들도 절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직업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우리나라는 일본의 장인문화로부터 배울 점이 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든다. 일본에는 몇 대째에 걸쳐 두부만 만드는 집도 있고 라면만을 만드는 집도 있다고 들었다. 마치 3대가 함께 서로 도와가며 채소 가게를 하는 동이네처럼 말이다. 이야기가 조금 다른 곳으로 흐른 것 같지만,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 남들이 보는 시선에 맞추어 또 단순히 안정성만을 생각하고 직업을 정하기 보다는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장래를 만들어가는 것과 또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임하는 것이 가장 건강한 직업인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마 이번 주에도 우리 집은 장을 보기 위해 시장에 갈 것이다. 이번에 시장에 가면 평소 구경했던 과일, 채소, 맛있는 먹거리 대신 ‘사람’을 보고 오고 싶다. 모양은 좀 못나도 맛은 꿀처럼 단 과일들을 콕콕 짚어 우리집에 권하는 단골 과일가게 아저씨부터 항상 웃는 얼굴로 손님들을 대하며 ‘감사합니다’ 인사를 빼놓지 않는 채소가게 아저씨까지, 하루를 알차게 열고 정을 나누며 보람을 느끼는 그 사람 냄새 나는 모습들을 보며 나도 앞으로를 더 알차게 살아가고 싶다.

 

(그림 : 모두 본문 삽화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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