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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과 모네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스페셜 ㅣ 열두 개의 달 시화집
백석 지음, 클로드 모네 그림 / 저녁달 / 2024년 9월
평점 :
백석과 모네 . 책 제목을 처음 보고 들었던 생각은 어떤 공통점으로 엮은 조합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호기심을 가지고 백석의 시와 모네의 그림을 열심히 읽고 유심히 보아도 알듯 말듯 아리송하다.
남향 - 물닭의 소리 4
푸른 바닷가의 하이얀 하이얀 길이다
아이들은 늘늘히 청대나무말을 몰고
대모풍잠한 늙은이 또요 한 마리를 드리우고 갔다
이 길이다
얼마가서 감로같은 물이 솟는 마을 하이얀 회담벽에
옛적본의 장반시계를 걸어놓은 집 홀어미와 사는 물새 같은
외딸의 혼삿말이 아즈랑이같이 낀 곳은
백석과 모네 p36
단순히 비슷한 풍경을 나열 한 것 같기도 하고 ...
청시
별 많은 밤
하누바람이 불어서
푸른 감이 떨어진다. 개가 즞는다
백석과 모네 p96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나열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
하지만 천천히 책장을 넘기다 보면 동서양의 전혀 다른 듯 하면서도 묘하게 닮은 느낌을 받게 된다.
작가 백석은 월북 시인이라 하여 출판이 금지되었다가 1987년 월북 및 재북작가에 대해 해금조치되면서 대중에게도 알려지기 시작되었다고 한다.
월북이 아니라 재북이 맞다고 하는데 그조차 정보가 거의 없어 마치 재북과 월북의 차이 자체를 무시하려는 행보일까 싶어 떨떠름할 뿐이다.
한반도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는데, 한편에서는 되려 북한을 찬양하며 편들기에 여념이 없고, 일반 시민들은 무관심속에서 언론에서 떠드는 말만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이대로 계속되면 어떤 미래가 펼치지게 되는걸까.
어쨌든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군인 그의 작품은 평북 지역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방언과 사라져가는 옛것을 소재로 삼은 향토주의와 뚜렷한 자기관조를 가진 한국 모더니즘을 함께 가지고 있다.
때문에 북한 정권 수립 이후 반체제자로 낙인 찍혀 안좋은 말년을 보냈고, 작품활동 역시 길지 못했다.
클로드 모네는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며 '유일한 인상주의자' 라고 한다. 인상파의 창시자이기도 하고 짧은 인상주의 시기를 거쳐 다른 양식을 추구한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 달리, 모네만 인상주의 최후의 생존자로 남았기 때문이다.
'인상주의'란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거부하고 색체·색조·질감 자체에 관심을 두는 미술 사조로, 빛과 함께 시시각각 움직이는 색체의 변화 속에서 자연을 묘사하고, 색채나 색조의 순간적인 효과를 이용해 눈에 보이는 세계를 객관적으로 기록하려고 하였다.
사실 이런 부분을 몰라도 모네의 그림을 보면 참 따뜻한 그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따뜻한 색감의 풍경 그림이기에 백석의 시와 잘 어울리는것 같다.
Rain in Belle-Ile 1886
산비
산뽕닙에 빗방울이 친다
멧비들기가 닌다
나무둥걸에서 자벌기가 고개를 들었다 멧비들기켠을 본다
백석과 모네 p82
간간이 있는 한자는 제외하고, 사투리도 따로 풀이하진 않았다.
낯설지만 알것 같은 단어도 있고 검색하지 않고는 짐작하기 어려운 단어도 있어서 빠르게 읽어내기는 쉽지 않은 시다.
일제 강점기 시절 나라잃은 설움과 전쟁, 분단의 아픔 그리고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한반도의 비극을 살아낸
사실은 그렇게 머나먼 과거가 아닌 우리의 조부모, 부모님을 생각하며 천천히 음미하며 읽기 좋은 책이랄까.
산문이라 오히려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그래서 와닿는다고 생각되는진 모르겠지만 정월대보름 타향에서 쓴 것으로 보이는 인상 깊은 시 『두보나 이백 같이』 이다.
두보나 이백 같이
오늘은 정월보름이다
대보름 명절인데
나는 멀리 고향을 나서 남의 나라 쓸쓸한 객고에 있는 신세로다
녯날 두보나 이백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먼 타관에 나서 이날을 맞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 고향의 내 집에 있는다면
새 옷을 입고 새 신도 신고 고기도 억병 먹고
일가친척들과 서로 모여 즐거이 웃음으로 지날 것이연만
나는 오늘 때묻은 입든 옷에 마른물고기 한 토막으로
혼자 외로이 앉어 이것저것 쓸쓸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녯날 그 두보나 이백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날 이렇게 마른물고기 한 토막으로 외로이 쓸쓸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어늬 먼 외진 거리에 한고향 사람의 조고마한 가업집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이 집에 가서 그 맛스러운 떡국이라도 한 그릇 사 먹으리라 한다
우리네 조상들이 먼먼 녯날로부터 대대로 이날엔 으레히 그러하며 오듯이
먼 타관에 난 그 두보나 이백같은 이나라의 시인도
이날은 그 어느 한고향 사람의 주막이나 반관을 찾어가서
그 조상들이 대대로 하든 본대로 원소라는 떡을 입에 대며
스스로 마음을 느꾸어 위안하지 않었을 것인가
그러면서 이 마음이 맑은 녯 시인들은
먼 훗날 그들의 먼 훗자손들도
그들의 본을 따서 이 날에는 원소를 먹을 것을
외로이 타관에 나서도 이 원소를 먹을 것을 새각하며
그들이 아득하니 슬펐을 듯이
나도 떡국을 놓고 아득하니 슬플 것이로다
아, 이 정월 대보름 명절인데
거리에는 오독독이 탕탕 터지고 호궁소리 삘뺄 높아서
내 쓸쓸한 마음엔 자꼬 이 나라의 녯 시인들이 그들의 쓸쓸한 마음들이 생각난다
내 쓸쓸한 마음은 아마 두보나 이백 같은 사람들의 마음인지도 모를 것이다
아모려나 이것은 녯투의 쓸쓸한 마음이다
백석과 모네 p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