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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수업 - 상실과 함께 살아가는 법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데이비드 케슬러 지음, 김소향 옮김 / 인빅투스 / 2014년 5월
평점 :
2014년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아니 영원히 끝날 수 없는 4월 16일 세월호의 아픔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아파했던 한 해였습니다.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고 유족들이 조금은 위로받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벌써 잊어버린 것 같아요 ㅜㅜ)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물론 그대로인 것도 많습니다만..) 주변의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먼지가 뽀얗게 앉은 안전 매뉴얼을 꺼내어 살펴보고, 가상 위기 상황 훈련을 실시했지요. 너나 할 것 없이 '안전한 나라'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그에 더해서 사람들의 의식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했고, 아이들의 사교육을 끊고 마음껏 놀게 하는 '나쁜엄마 신드롬'이 일기도 했지요. (사실 이게 정말 좋은 엄마 아닙니까?)너무도 안타깝고 허망한 죽음들 앞에서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 것이지요.
어떤 글을 보니, 안산에서는 지금도 밤중에 통곡하는 소리들이 곳곳에서 들려온다고 하더군요. 아.. 마음이 짠했습니다. ㅜㅜ 가족을 잃어버린 아픔을 만분의 일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잃어버리게 되면 우리는 어떤 마음을 겪게 될까요? 어떻게 그 아픔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옆에서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이 책은 그런 여러 가지 물음에 대해 자상하게 대답해 줍니다. 물론 정답을 알려 주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런 질문 앞에 정형화된 답이 존재하겠습니까?) 대신 정말 다양한 사례들을 이야기하면서 우리 스스로 답을 준비하도록, 그래서 상처를 치유하고 그 상실의 아픔과 함께 살아가도록 도와 줍니다.
저자는 죽어가는 사람들 옆에서 그들의 마음속 말을 들어주며 그들의 마지막을 돕는 호스피스 운동을 시작한 사람입니다. 30년간 호스피스 운동을 하면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과 대화하며 연구를 하다 보니 '죽음의 여의사'라는 좀 무시무시한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죽음의 여의사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내 연구의 가장 본질적이며 중요한 핵심은 삶의 의미를 밝히는 데 있다."
그녀는 또한 생의 마지막 9년을 중풍으로 마비되어 침대에 누워 있다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 책은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구요. 책의 원고를 완성한 후 제자에게 '이제 내가 할 일은 다했다.'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저자의 연구에 의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5가지의 상태를 겪게 됩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5가지를 다 경험하게 되는 것은 아니며, 순서대로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체로 비슷한 패턴을 보이게 되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치유된다고 하더군요.
첫번째 단계는 부정입니다. 그 사람이 떠났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지요. 믿지 않는 것입니다. 사고의 소식을 들어도 시신을 볼 때까지는 부정하고, 시신을 확인한 다음에도 그가 금방이라도 살아날 것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부정의 마음은 상실의 충격을 더디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더군요. 그 충격이 가감없이 전해지면 우리의 마음이 감당할 수 없으니까요.
두번째 단계는 분노입니다. 먼저 간 그 사람에게 분노하고, 그것을 막지 못한 자신에게 분노하고, 주변 상황에 분노하고, 그리고... 하나님께 분노하지요. 아니, 사실 누구에게 화가 났는지도 모르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됩니다.
세번째 단계는 타협입니다. 처음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타협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만 살 수 있다면 평생 이런이런 것을 하겠다고 타협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를 잃고 난 후에는 천국에서 다시 보게 해 달라고 타협합니다. 남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해 달라고 타협합니다. (이 타협은 아마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경험할 것 같습니다.)
네번째 단계는 절망입니다. 하루하루가 공허해집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습니다. 세상이 무너졌습니다.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삶이 영원히 계속될까봐 불안해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수용입니다. 괜찮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꼭 마음의 평화를 얻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한 이가 실제로 떠나버린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현실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충분히 슬퍼하라'는 것입니다. '30분동안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만에 그치지 말라'고 표현했더군요. 그 죽음에 대해 자책하지도 말고, 빨리 절망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압박도 거부하며 충분히 슬퍼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새로운 삶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슬픔은 평생 함께 있겠지만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에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런 슬픔의 감정이 충분히 표현되지 못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어떤 방식으로라도 나타나서 우리를 더욱 어렵게 한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옆에서 그 사람을 도와주는 방법은 그 사람이 충분히 슬픔을 표현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섣불리 잊어버리라고 말하거나 (선의로라도) 슬픔을 참으라고 하지 않고 지혜롭게 도와주는 것이지요.
저자는 이 책에서 상실과 관련해서 정말 다양한 경우의 예를 보여줍니다. 자녀의 죽음을 맞이한 경우, 여러명의 죽음을 경험한 경우, 가족이 자살한 경우, 병으로 인해 서서히 죽어간 경우, 심지어는 치매로 인해 정신이 먼저 죽어간 경우 등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죽음의 형태를 보여주기도 하고, 상실 이후에 경험하는 죄책감, 의외의 후련함, 고립감 등의 감정적인 문제를 다루기도 하며, 천사와 도플갱어, 사후 세계 등에 대해 영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상실 이후 명절 보내기, 죽은 사람의 유품 정리와 같은 사소하지만 피해갈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심지어는 죽은 사람의 비밀이 드러난 경우, 상실 이후에 경험하는 섹스에 대한 욕구까지 미처 생각해보지도 않은 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아... 죽음이란 정말 이렇게 엄청난 상황을 동반하는군요. (이렇게 다양한 사례들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책이 전혀 딱딱하지 않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생각보다 죽음이 우리 가까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쉽게 평균수명 운운하면서 7-80까지는 살 것이라고, 손자 손녀까지 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이라도 부르시면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날마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겠지요. 그리고 사실, 그런 사람들이 오늘 하루의 삶을 더욱 의미있게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랑받고 사랑하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