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대해서 소개했었지요? (혹시 아직 안보셨다면 일단 보시기를...^^)
저는 그 책을 읽고 나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과장입니다^^) 그책이 고참악마가 신참악마에게 사람을 유혹하는 기술을 알려주는 편지인데 반해서, 이 책은 영적 선배인 친구가 이제 막 기독교로 돌아온 친구에게 참된 영성에 대해서 알려주는 편지이기 때문이지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의 서문에서 C.S.루이스는 수호천사가 후배천사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어야 균형이 맞겠지만, 그런 편지를 누가 쓸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내용뿐 아니라 문체에서도 천국의 향기가 묻어나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저는 감히 유진 피터슨은 그런 책을 쓸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라고 추천하는 것이구요.(물론 과장입니다^^)
유진 피터슨은 우리 교회에서 '성경 옆의 성경'으로 사용하고 있는 '메시지성경'을 쓴 바로 그사람입니다. 메시지성경을 처음 읽으면서 받았던 감동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구요. 역시 시인은 세상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표현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앞에서 말했듯이 친구가 친구에게 쓰는 편지입니다. 목사인 저자가 교회를 떠났다가 40년만에 다시 교회로 돌아온 친구에게 보내는 친절한 상담편지이지요.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우리 모두 설교나 가르침 이외에도 이런 사적인 대화와 상담을 통해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마땅히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우리들도 목사님의 거룩한 설교보다는 밥을 같이 먹으면서 나누는 김집사님 혹은 이권사님의 충고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우리 삶에는 큰 재난이나 환희의 순간도 있지만, 사실 평상시의 삶, 즉 '일상'이 훨씬 길지 않습니까? 그리고 우리 삶에서 생기는 대부분의 고민은 그 일상의 순간순간에 부딪히는 그런 사소한 것들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주례사에 대한 유명한 유머가 하나 있습니다. "신랑은 큰 일에만 신경쓰고, 작은 일은 신부의 결정에 다 따르세요. 여기서 작은 일이란,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지, 무엇을 먹고 살 것인지, 어떤 일을 하고 어디서 살 것인지 하는 것입니다." 놀란 신랑이 목사님께 묻지요. "목사님 그럼 큰 일은 대체 무엇입니까?" "주님이 언제 오실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작은 일로 고민하고 기도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혹시 지금 주님이 언제 오실까 하는 것만 생각하며 사는 분이 계시다면 그 분은 예외입니다^^)
저자는 '일상의 영성'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그가 생각하기에 '영적상담'은 '성령님이 잡초투성이인 나의 인생으로부터 어떻게 열매라고 불릴 만한 것들을 만들어 내실지 기대하는 가운데, 내 주변의 환경과 사람들을 통해 속삭이시는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매일의 삶에서 한걸음 한걸음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 관한 것'이고,'영성'이란 '우리가 사랑과 긍휼을 베풀도록 격려하시고 우리를 축복하시며 회개의 무릎을 끓게 하시고 경이감에 넘쳐 그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하나님은 '종종 하찮은 수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시고', '서투른 사람들 가운데서 거룩한 삶을 만들어 내시며', 무엇보다도 '우리가 생각하기도 전에 우리 삶에서 영적인 삶을 시작하신 분'입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화려하지도 못하고 자꾸 같은 죄를 짓고 실패하며 특별한 영적 체험을 잘 하지도 못해서 '영적 열등감'에 빠져 있는 우리들은 위로를 받게 됩니다. 심지어는 '그냥 이렇게 해도 정말 되는걸까?'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우리는 사실 신앙의 성장도 숫자로 표현하거나 (성경을 몇독했다, 금식기도를 며칠했다는 식으로) 프로그램으로 생각하는 (제자훈련을 사역자반까지 마쳤다는 식으로)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영적성장은 우리 삶에서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며, 기도하면서 끈질기게 순종하는가로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영적 성장은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도록 자리를 내어드리는 삶입니다. 그러니까 영성은 모호합니다. 신비합니다. 그게 맞는 것입니다. 어떻게 유한한 우리가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다 이해할 수 있으며, 심지어 콘트롤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교회를 개척한다고 하니까 저에게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냐고, 프로그램은 어떻게 할 꺼냐고, 제자훈련은 어떤 과정을 할 꺼냐고 묻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저는 계획이 없습니다!! 제가 게을러서 그렇다고 말하는 분도 계시지만, 제가 평소에 무지 열심히 사는 것으로 볼 때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제 성향이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계획적이기 보다는 좀 즉흥적이거든요. 그래서 계획서 같은 거 잘 못 만듭니다.) 물론 저와는 달리 계획을 잘 짜는 성향인 분들이 계십니다. 어떤 목사님은 심지어 연초에 기도원에 가셔서 1년치 설교 주제를 다 정해서 내려오신다고 하더라구요!! 역시 하나님은 우리를 다양하게 만드셔서 합력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런 성향에 더해서 저는 개인적으로 교회라는 곳이 계획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냥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말씀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며,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를 고민하고 나누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곳, 그리고 그 사랑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는 곳이 교회가 아닐까요? (물론 아무 생각도 없이 지내자는 것은 아니지요. 제 뜻을 아시리라 믿습니다.)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순종하고, 서투르지만 사랑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그 분의 사랑에 푹 잠기는 삶이지요. 저자는 그런 삶으로 친구를, 아니 우리 모두를 안내합니다.
참 다행입니다. 이런 따뜻한 안내자를 만날 수 있어서. 그리고 여러분께 소개할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