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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룟 유다 딜레마 - 가룟 유다에 비추어 본 진짜 기독교
김기현 지음 / IVP / 2008년 4월
평점 :
'Jesus Christ Superstar' 라는 뮤지컬을 보셨나요? 예수님의 최후의 7일에 대한 내용이고, 뮤지컬의 황제인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작품이지요. 40여년 간 1억 5000만명이 보았다고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르는 'I don`t know how to Love him'이라는 곡이 매우 유명하구요. 저는 20여년 전에 보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이 밤을 다시 한번'을 부른 조하문이었고 가룟유다는 '라구요'의 강산에였습니다. 정말 옛날이군요.. 얼마전에는 윤도현이 가룟유다를 맡아서 열연했습니다. 솔직히 내용이 성경적이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췄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공연당시, 독실한 보수주의 크리스천들이 반대시위도 하고 그랬어요.
그 뮤지컬에서 가룟유다가 꽤 멋지게 그려집니다. 단순한 배신자가 아니라 이상과 현실에서 갈등하다가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배신하는, 고뇌하는 악역으로 그려지거든요. (우리는 그런 악역에게 끌리지 않습니까?^^)
몇년 전, '유다복음'라는 것이 대대적으로 선전된 적이 있습니다. 발굴자체는 70년대에 되었지만 복원하고 다듬어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방송을 했거든요. 그래서 뭐 숨겨진 복음서가 나타났다, 기독교의 비밀이 밝혀졌다.. 등등 시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금방 잠잠해졌구요.) 유다복음은 '예수가 유월절을 준수하기 사흘 전, 일주일 동안 가룟유다와 대화하며 말한 계시에 대한 비밀기록'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A4 7장 정도 분량의 짧은 글입니다. 저도 읽어봤는데요, 어휴 도대체 뭔소린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줄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환상이나 계시에 대한 얘기로 가득차 있거든요. 생소한 용어들도 많구요.
이 책은 1차적으로는 유다복음을 들고 기독교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독교 학자의 답변입니다. 동시에 가룟유다로 인해 제기되는 어려운 신학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 고민하는 기록이기도 하며, 유다복음을 짓고 초대교회를 괴롭혔던 영지주의에 대한 분석이기도 합니다.
사실 가룟유다 딜레마는 많은 기독교인들을 고민하게 했습니다. 질문은 이렇습니다.
'가룟유다가 없었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안 달리셨을테고, 그러면 십자가 구원은 없었을 것 아니냐? 그렇다면 가룟유다도 구원의 도구로 사용된 거 아니냐? 그것도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 아니냐? 그럼 가룟유다에게 책임이 있느냐? 오히려 칭찬 받아야 하는것 아니냐?..' 이것이 가룟유다 딜레마입니다.
여러분도 한번쯤 고민해보셨던 이야기 아닌가요? 어떻게 결론을 내리셨습니까?
정말 유다에게는 책임이 없는 것일까요? 가룟유다는 하나님께서 배신하도록 딱 지정해서 예정하셔서 사용하신 것일까요? 자유의지는 없었을까요?
유다복음에는 가룟유다가 제자들 중에서 예수님을 가장 잘 이해했고, 예수님의 지령을 받고 배신을 한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가장 무난하지요. (그런데, 너무 무난해서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그 밖에도 유다복음을 읽어보면 기존의 복음서와는 너무 다른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환상과 계시 등으로 가득 차 있거든요.
이것은 그 당시 교회를 괴롭히던 영지주의 문서의 특징입니다.
영지주의는 무엇일까요? 굳이 한마디로 쉽게 말하면 초대교회 당시에 있었던 기독교이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그 영지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기독교와 얼마나 다른지 설명합니다.
영지주의는 너무 분파가 다양해서 그들의 주장을 정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점이 있지요. 바로 이원론입니다.
그들은 물질/영혼, 몸/혼, 선/악 처럼 모든 것을 분리합니다. 따라서 물질은 악하며 영혼은 선하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육체가 되어서 오셨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가장 근원적인 영적 존재가 있고,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은 그 영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신이라고까지 하지요. 물질은 악하니까요. 그래서 구원은 이 육체의 감옥에서 영혼이 탈출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물질자체는 선합니다. 다만 죄로 인해 타락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영과 대비해서 육체적이라고 말할 때는 문자 그대로의 육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부하는 본성을 말하는 것이지요. 성경은 몸을 긍정합니다. 로마서에서도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도 이원론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과 교회를 구분해서 교회 일은 영적인 일이고 직장 일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원론이지요. 그것도 멀리 보면 영지주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것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무엇을 하든 방향이 중요하지요. 우리도 이원론에서 벗어나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주되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 다시 가룟유다 딜레마로 돌아가봅시다.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결국, 그것은 하나님의 신비에 맡길 수 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저도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어떻게 설명하려고 해도 문제가 발생하거든요. 안타깝지만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모순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믿어지는 것이 참 이상합니다. 그래서 믿음조차 은혜인 것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신학적으로는 답할 수 없지만, 실천적으로는 답할 수 있습니다. 가룟유다가 되지 마시고 베드로나 바울이 되십시오.'라구요.
성경은 우리의 지성을 깔끔하게 만족시키기 위해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믿고 따르라고 주어진 책이지요. 우리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미 알고 있는것 만으로도 믿고 따르기에는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