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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책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2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7월
평점 :
환희의 책 - 김멜라
-그런데도 버들은 자기를 열고 세상으로 뛰어들었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믿음이 너무 커서 아무것도 증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건 분명 세상을 향한 버들의 사랑이었다. (p.90)
-그것이 버들이 미움을 표현하는 방식이었고, 호랑은 버들의 그런 방식을 사랑했다.
자연으로 돌아가!
세상엔 한시라도 빨리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자돌이’가 많았으나,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런 세상이라도, 세상은 버들을 만들어 호랑의 곁에 보내주었다. (p.107)
-비생식 암컷 엄지는 무엇을 위하여 함께하는가. 번식을 향한 유전자 메커니즘이 아닌 그 무엇이, 그들의 관계를 추동하고 지탱하는가. (p.115)
-그래, 이제 나도 괜찮아. 죽음이든 삶이든. 그러니 나에게 무너져 내려.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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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 마리의 곤충(톡토기, 모기, 거미)의 두 인간 여성 관찰기이다. 책 소재를 처음 접했을 때, 같은 작가님의 「저녁놀」이 떠올랐다. 저녁놀이 무생물의 관찰기라면 이건 생물인데 곤충이다. 한점털보톡토기(닉네임 티끌트윙클), 빨간집모기(모필자), 집유령거미(아무런 이름으로도 불리고 싶지 않음)는 버들과 호랑이라는 두 레즈비언 여성을 관찰하게 된다. 그들에게 생식을 하지 않는 두 여성은 비생식 암컷 두발이엄지(인간을 부르는 그들의 별칭)이자 상당히 신기한 관찰 대상이다.
버들과 호랑에게는 각자 유년기의 상처가 있다. 그 상처로 한 사람은 오래 우울증을, 또 한 사람은 충동적으로 죽고 싶은 감정을 느낀다. 버들과 호랑은 서로의 어두운 부분까지도 사랑으로 감싸 안는다. 곤충들의 관찰기를 통해, 두 사람은 번식하지 않아도 서로를 사랑하는 유한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버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요정 같은 마음을 지녔다.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나는 이 부분이 너무 인상 깊었는데. 미움을 표현하는 방식이 직설적이면서 간접적인 느낌 모두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이라도 그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꽤 살만한 곳이라는 메시지 역시 좋았다.
곤충의 시선에서 보는 인간 관찰기라 재밌고 톡톡 튀는 문장들이 많다. 반면 버들과 호랑의 사랑과 사연은 결코 가볍지 않은데, 분위기를 조절하는 것이 바로 세 곤충 저자의 서술이다. 우리 주변에 흔하게 있는 곤충들이 이제 평범하게 보이지 않게 됐다(!) 비생식 연구를 통해 이런 세상에서도 번식하고 흘러가는 생명을 만들어 갈 거라는 교훈은 아주 묘하다.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섭리는 인간과 곤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인간이 인간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건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또한 세상 안에서 공존하기로 마음먹은 두 사람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곤충들을 보며 느껴지는 환희는 매우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도서지원 @hdmhbook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