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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휴먼 - 장애 운동가 주디스 휴먼 자서전
주디스 휴먼.크리스틴 조이너 지음, 김채원.문영민 옮김 / 사계절 / 2022년 3월
평점 :
<나는, 휴먼>
영어로 말놀이 하듯 지어진 제목인가? 제목을 일별하고 궁금해졌다. 원제는 <Being Heumann>. 세상에 태어나며 자연스럽게 받게 되는 이 책의 저자의 고유한 성인 Heumann이 Human과 비슷하여 더 깊은 중의를 가질 것이란 궁금증으로 호기심 있게 책을 연다.
독일에서 미국으로 홀로코스트를 피하여 이주한 부모 아래 태어난 주디 휴먼, 그는 어릴 적 폴리오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소아마비를 진단 받는다. 이 책은 소아마비를 가졌으나 그를 아껴주고 뚝심 있게 지원하던 부모 아래 성장한 주디가 어떻게 브루클린 작은 동네를 너머서고 미국 전역에서, 그리고 지구촌 곳곳에서 장애 인권을 위하여 싸우며 성장했는지를 담고 있다.
나는 자기계발 관련서를 좋아하지 않지만, 에세이 읽기는 좋아한다. 누가 쓴 에세이든 저자 개개의 고유성과 개별성이 담긴 어떤 특정 분야의 일과 관계들을 관찰하는 독자의 특권을 오롯이 즐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의 여러 호기심의 부분을 채워주는 더 특별한- 몸이 반응하는 지적 여정이었다. 미국 장애인 관련 법명을 나는 교과서 속에서 배웠으나- 내가 다닌 학교의 교수들은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딴 분들이었다, 무미건조한 법 이름 뒤에 주디 휴먼과 동료의 투쟁이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이 책을 통해서 그들의 구체적인 활동을 알게 되었으니, 마치 휴먼을 만난 듯 느껴지며 흥분됐다.
1부 초반에서 어린 휴먼의 뒤를 쫓으며, 그의 가족들을 지켜 보며 우리나라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들의 노고가 어렴풋이 느껴진다. 두 아이를 키워 오며 어떤 상황에서 학교 담당자와 마주 했던 몇 안되는 그 불편한 대화들조차도 나 역시 다시 떠올리면 피로감이 몰려 오는데, 주디가 동네와 학교에서 느꼈을 불합리가 더 무겁게 느껴진다. 책 곳곳에서 그는 실제로 어릴 적 경험에 기반한 불안 감정을 자주 언급 한다. 이웃 동네의 또래에게서, 학교 입학을 거부 당하고 몇 년후에야 비로서 입학이 결정되어 첫 등교를 앞두던, 학교에서 자신을 비롯한 장애를 가진 이들이 어떤 공간에서 머무르며 여러 수업에 차등을 받았는지 등의 아린 경험은 우리 대개가 겪는 불안감보다 한 층 더 깊고 무거워 보인다. 하지만 주디는 그 경험과 감정을 활동의 힘으로 전환시킨다. 책 제목처럼 Being Heumann , 주디가 자신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대학 생활을 더 적극적으로 지내기 위하여 학교에서 생활한 주디가 느꼈을 그 모든 상황에 이입하다 보니 나는 내 대학 시절에 동기가 떠올랐다. 재수하여 온 주디와 같은 장애를 가진 친구. 특수교육과가 있는 학교였지만 당시 경사로가 없어서 친구는 엄마나 같은 학교 다니는 언니의 도움으로 학교에 다녔다. 그런 과가 있으니 장애를 가진 학생을 입학시키긴 했어도 어쩌면 주디가 겪은 것처럼 다른 불편한 것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불평도 호소하지 말라는 조건을 달지 않았을까, 하는 너무 때늦은 생각에 친구에게 미안해졌다. 정작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라며 학과 행사랍시고 학생관 앞에서 여러 활동을 한 기억이 나는데 우리는 어떤 울림을 학내 친구들에게 전했을까? 주디의 20년간의 인권 투쟁사를 따라가며 나의, 우리의 경험들이 겹쳐졌다. 무엇보다 최근의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여러 불미스러운 인식까지.
정작 나는 그런 전공을 하고서도- 실제로 졸업후 관련 일을 하진 않았으니 실제로 내 눈으로 실제 만난 장애를 가진 이들의 수는 작년 2월부터 현재까지 어울리는 클럽하우스라는 오디오 소셜에서보다도 적다. 음성만으로 교류하는 상황에서도 과거 교과서 속에서 단편적으로 내 경험에서 마주친 이들보다 더 깊은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휴먼의 개인적인 경험과 그가 여러 나라 곳곳에서 만나고 느낀 장애에 대한 인식 등 여러 단상과 비교하며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신간 소식을 볼 때쯤 우리집에도 코로나가 찾아왔다. 몸이 아프니 내 어두운 인생관의 가라 앉은 의식도 수면 위로 올랐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짙게 낀 우울감의 두께가 한 꺼풀씩 벗겨졌다. 그리고 삶의 의지가 조금씩 올랐다. 읽는 시간 동안,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지금 내가 투쟁하는 것들은 휴먼에 비하면 소소하다. 그러나 그 투쟁이 힘들다고, 하기 싫다며 고개 돌리고 싶을 때 난 휴먼의 글로 달려갈 것이다.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어느 조직에서든 권한을 가진 이라면, 특히 정치인에게!
(2, 3부에 미국 정치인(공무원)의 여러 입장과 상황이 참 흥미진진하게 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