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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 이병철 회장의 24가지 질문에 답하다 ㅣ 이어령 대화록 1
이어령 지음, 김태완 엮음 / 열림원 / 2022년 1월
평점 :
작년 연말 친구에게 선물도 하고 현재도 느리게 읽고 있는 선생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이어 최근 열림원에서 출간된 <메멘토 모리>에 자연스레 손이 갔다. 선생의 깊고 다양한 식견을 비슷한 듯 다른 책-선생과 마치 산파법으로 대화하는 듯한 기자들이 각각 나눈 육성을 지면으로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역사 속에서 그 어떠한 정치제도, 사회구조, 발전된 경제 체계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성공(?) 시키지 못했다고 보는 선생은 죽음만은 빈부, 남녀노소의 차이 없이 평등하게 적용되는 것이라고 본다. 30여 년전 이병철 기업가가 한 천주교 성직자에게 24가지 질문을 한 것도 모두에게 엄격하게 적용되는 죽음의 두려움이 커서였을 듯싶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죽음만은 우리를 공평하고 엄격하게 다뤄왔지만, GNR (Genetics 유전공학, Nanotechnology 나노 기술, Robotics 로봇 공학) 시대의 현대 기술은 레이 커즈와일 같은 이에게 영생의 꿈을 부추긴다. 비용과 기술을 가진 특정인에게 죽음이 비켜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도 있는 가까운 미래를 감안한다면, 더욱 더 종교(신학)의 제구실이 중요하다고 선생은 피력한다. 최근 읽은 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이 중요한 지점을 다시 환기시키게 한다.
임사 체험, 선생도 언급한 엘리자베스 퀴블러의 저작에는 임사 체험을 하고 사람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선생은 죽음의 발견은 생명의 발견과 동의어라고 한다. 태어나서 빛만 본 사람은 어둠을 모르는 게 아니라, 빛도 모르는 것이라고 확언한다. 우리의 삶이 누추하고 지리멸렬하다 여긴다면, 죽음을 일상에서 호흡하지 않은 이유일 터.
우리는 무엇 자체에 주목하며 배우고 사는 것에 익숙하다. 그래서 선생의 관점은 신선하다. 죽음과 신 역시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볼 것이 아니라 어떻게, 언제, 어디에서 등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기를 이른다. 물론 이미 그런 사고를 가진 독자라면 선생의 제자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총 4부로 이뤄진 책은 시간 순서와 각 부가 엉켜 있다. 2부는 2019년 하반기 넉달 동안 월간조선에 연재한 선생의 대화를 다듬은 것으로 시간 순서상 첫 번째에 해당한다. 사실 2부에 선생의 깊은 지성과 영성으로 24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이 다 담겨 있고, 3부와 4부는 코로나를 겪으며 느낀 선생의 혜안이 덤으로 담겨 있다. 죽음이 실존이 된 코로나의 일상에서 선생의 메멘토 모리에 대한 시각을 독자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선생의 다양한 설명과 예시가 펼쳐진다. 이 책을 엮은 기자는 1부에서 과거 24가지 질문을 코로나 시대 등에 맞게 조금 손봐서 선생과 대담한 답변으로 책을 마무리했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 시기에 죽음을 더 가까이 겪고 있고 나 역시 그렇지만, 이보다 몇 해전에 내밀하게 죽음과 가까웠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직접 경험이 나의 영성을 일깨우는 데에 도움이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선생의 책을 기꺼이 읽으니 그 방증일 수도 있다. 4부에서 신앙인으로서의 선생의 일상과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들으며 인간적인 선생의 모습을 보며 더 평안을 느낀다. 자신의 인생을 욥의 체험에 빗대고 종국적으로 예수가 세상에 전하는 진의를 우리에게 전하는 선생을 보면서 역시나 멋진 분이라는! 지식의 보고인 선생을 거쳐 환기되는 무수히 많은 이들과 책들을 새롭고 낯설게 만나서 더 좋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