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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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땅끝의 아이들>이란 이민아 목사의 간증집을 읽었다. 태어날 때부터 내 의지와 상관 없이 기독교인으로 컸지만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쪽인데 무슨 연유로 이 책을 읽었는지 구체적인 기억이 없다. 단지 책을 읽은 즈음 내 상황이 땅끝이라고 생각해서 감정 이입이 됐을 수도. 그런 내게 인생 선배가 건네는 살가운 조언 정도로 생각했을 수도. 이사 등의 이유로 여러 번 책을 정리하는 몇 해 동안에도 책장에 계속 있어 주길 원하는 책이다.


이민아 목사의 아버지는 우리 시대, 지성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어령 교수다. 이 분의 글이나 강연 등을 제대로 접한 적은 없는데 소천한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뤄진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는 궁금해졌다. 이어령 교수보다 몇 살 어린 우리 아버지 역시 표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딸을 사랑하는 마음의 그 바탕은 같으리란 마음에서, 지금은 영민하게 자기 표현을 잘 못하시는 아버지의 속내를 듣는 듯한 마음으로 책에 빠져 들었다.


이 책은 2012년 봄에 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인정하기 힘들었던 아버지의 3년간의 사랑 편지 묶음이다. 2015년에 출간했고 올해 이민아 목사의 10주기를 맞으며 파스텔톤의 삽화를 곁들인 화사한 개정판으로 선보였다.


연로한 아버지의 딸에 대한 사랑 고백이 이처럼 절절할 수 있을까? 이 지상 어디에서 이런 연로한 아버지의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사랑 고백이 있을 수 있을까? 이 책을 쓴 분이 우리가 아는 최고의 지성 이어령 교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편지글 하나하나에 애절함이 가득 배어있다. 그리고 이 교수의 여러 이름표 중 하나인 시인 이어령을 이 책에서 딸림 선물 같이 만날 수 있어서 반갑다. 편지글만으로도 이미 아버지에게 받는 사랑이 넘치기 시작했는데 관록있는 시인 아버지의 농축된 시어들이 오색 방울이 되어 하늘로 떠오른다.


0장부터 시작하는 딸의 어릴 적 아버지의 기억으로 시작하여 하늘로 떠나는 8장까지 딸이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만의 관점으로 본 딸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며, 한 사람이 세상에 와서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 아버지의 사랑 어린 눈길이 담긴 인생 드라마를 만나는 느낌이다. 특히 어린 딸과 바다로 여행 갔으나 초보 아버지가 벌인 실수가 이어령 교수 어릴 적의 기억과 중첩되어 펼쳐지는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초보 부모들을 응원하는 글처럼 보여서 더 정감 있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잘 모르겠다고 의심하는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더불어 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이냐고 반문할 세상의 모든 아들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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