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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시에 꽂혀서는 ㅣ 텍스트T 2
정연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월
평점 :
여리한 몸매의 남자 아이가 책에 눈길을 떼지 않고 홀로 숲길을 걷는 다소 사색적인 분위기의 여름 색채 가득한 표지가 눈길을 잡는다. <어쩌다 시에 꽂혀서는>라는 제목처럼 이 소년은 시집을 읽고 있다. 입시 교육에 매몰되어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정연철 저자는 어떻게 시를 전달하고 싶은지 궁금해졌다.
최근 엄마를 잃은 슬픔을 밤 하늘의 별로 달래는 한 소년의 독백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엄마가 생전에 애정을 쏟았던 고양이, 화초, 흔들의자를 통해 겸이는 엄마와의 소중했던 추억을 되짚고 그 슬픔의 바다에 푸욱 빠져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엄마를 기억하며 슬퍼하지 않는다는 것은 엄마에 대한 예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의 슬픔을 위로하는 이들의 손길조차 외면한다. 아빠가 있긴 하지만 엄마가 떠난 후에 나타난 아빠는 원망의 대상일 뿐이다. 암 투병하던 엄마 앞에 나타나지 않았던 아빠는 장례식에 나타났고 겸이의 보호자를 자처하려고 하지만 아빠를 향한 그리움이 원망으로 오래 전에 바뀐 겸이는 아빠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 자신을 걱정하는 외할머니를 위해서 단지 참는 쪽을 선택할 뿐이다. 그렇게 아빠를 따라 아빠의 고향에서 지내게 된 겸이의 이야기가 이 책에 펼쳐져 있다.
저 멀리 김소월 시인의 '개여울'부터 최근 안도현 시인의 '슬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까지 총 14 편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가 겸이의 일상 속에 펼쳐져 있다. 엄마를 떠나 보내고 웃으며 살 수 없다며 결연한 다짐을 한 이 효자 소년의 자발적 자폐 심리는 우연히 읽은 시와 함께 조금씩 문고리가 비틀어지고, 넉살 좋은 친구의 오지랖 앞에서, 시를 교실에서 탈출시킨 국어 선생님의 특별한 수업을 통하여 무장해제 된다. 슬픔에 더 이상 고개 숙여 살지 않고 고개 들어 세상을 마주 보고 웃으며 살아도 엄마에게 미안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잘 지내는 겸이를 내려다 보고 더 기뻐할 일이라는 확신을 얻게 된다.
저자는 현재 대구에서 국어 교사를 하며 지금껏 다수의 어린이와 청소년 소설을 선 보인 작가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책 속 상황들이 저자의 생활 속에서 우러나온 자연스러운 개연성과 웃음 요소 등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그 즐거움 속에서 대비되는 시의 처연함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했다. 시가 담긴 소설, 소설이 품은 시들을 우리 아이들이 읽을 잠깐의 여유를 가지길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