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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택트 1
칼 세이건 지음, 이상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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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 한 장의 레코드판을 우주로 날려 보냈다. 목적은 우주에 지구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었다. 지구인의 존재를 전하기 위해 115장의 사진과 22곡의 음악, 그리고 지구의 소리가 담겼다.  그 안에는 우리와 우리가 사용하는 기호, 과학, 낮과 밤의 풍경, 그리고 우리의 인사말이 담겨 있었다.

 1977년 보이저 1호는 이 음반을 싣고 우주로 향했다.


 “우주여행을 하는 문명만이 이 음반을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칼 세이건-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우주를 떠돌던 보이저 1호는 명왕성을 지나 태양계를 벗어나기 전에 한 장의 사진을 전송했다.

 보이저 호가 찍은 한 장의 사진 안에는 온통 검은색의 바탕에 0.12픽셀의 무척이나 작고 하얀 점이 중앙에 놓여 있다. 그리고 사진의 별칭은 바로 <창백하고 푸른 점(Pale Blue Dot)>이다.








이 넓고 넓은 원형의 품이여. 콘택트.








  철이 들기 전에 읽거나 봤던 한편의 영화와 소설은, 그 인간의 나머지 세계를 보는 시선 자체를 얼마나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는 좋은 역할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 콘택트는 그러한 소설이고 영화였다. 동시에 나는 이 소설을 끝으로 SF소설을 오랫동안 읽지 않았다. 단순히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고, 더 이상 흥미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들 만큼 콘택트는 나에게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칼 세이건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인류의 지성중 하나이니 넘어가도록 하자.

 영화의 줄거리는 많이 알고 있을 테지만, 소설은 몇몇 부분이 영화와 다르거나 좀 더 자세히 나열되어 있다. 가장 틀린 부분은 우주선을 탑승하는 이들이 여주인공인 엘리만이 아니라는 점과 종교와 과학과의 대립적인 시각을 영화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준다는 점과 미국이 시각이 아닌 지구의 시각으로 본다는 점이다. 종교와 과학과의 대립은 글의 주제를 꿰뚫고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줄거리를 설명하지만 영화와 소설의 줄거리가 달라서 조금 뒤죽박죽이다.


 천체 물리학자가 된 엘리는 외딴 관측소에서 우주로부터 올지 모르는 신호에 매달려 살고 있다. 그녀가 그렇게 천체 물리학자가 된 원인은 어렸을 적 아마추어 통신을 함께하던 아버지와의 추억 덕뿐이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직녀성에 전체 모를 메시지를 받게 된다. 그 신호는 히틀러의 연설이 나오는 영상이기에 많은 사람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신호의 뒷면에는 또 다른 신호가 하나 더 섞여 있었다. 그 숨은 신호를 해독한 이들은 그 신호가 정체모를 거대한 기계의 설계도임을 알게 된다. 그로인해 각계의 반응과 문제들이 순식간에 불어나 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기계는 무엇일까? 우주선? 아니면 외계인들이 지구침략을 위한 워프장치? 아니 그러한 문제만이 아니다. 정말로 이것은 현재의 인간에게 유익한 것인가? 이 신호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완벽한 이유가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히틀러의 영상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이 기계를 만들자는 데에 합의를 보지만, 만들기 위한 자금은 단순히 한 나라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엄청났다. 이것은 전 세계가 나서서 해결해야할 문제였다. 5인이 탑승할 수 있는 이 기계는 잠정적으로 우주선이 아닐까 하는 도출된 결과를 내게 된다. 그렇게 기계를 만들지만 난관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5인의 탑승자는 어떻게 뽑아야 하는가?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수십억명이 넘는 인구가 종교를 믿고 있는데 무신론자를 탑승시켜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소설은 그러한 문제들을 쉴 틈 없이 부딪치며 서로간의 논쟁과 대화를 하고 있다. 가장 큰 것이 역시나 종교와의 대립이다.

 인간이 수천 년 전부터 믿어왔던 그것이 부정당한다면 지금 현재의 인간의 삶은 얼마나 바뀌게 될 것인가? 혼돈? 아니, 그것이 종교와 상관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 벌어져야 할 일들은 종교에서 무시할 수 있는 것인가?

 여주인공인 엘리와 그와 모든 것은 종교와의 수많은 논쟁에 휩싸이게 된다. 결국 우주선을 탑승하는 대표자들 중에 엘리는 탑승을 하지 못하고 자신이 스승이었던 드럼린이 탑승자로 우선시 된다. 하지만 테러 사고로 인해 우주선과 드럼린은 엘리를 구하고 죽게 되고, 모든 일들이 물거품이 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몰래 만들고 있었던 또 다른 우주선이 일본에 존재하고 있었다. 결국 엘리와 다른 이들은 그것을 타고 윔홀을 거쳐 우주 저편의 직녀성으로 가게 된다.

 직녀성에서 엘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아름다운 해변과 그곳에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아버지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니라 엘리의 기억을 읽고 만들어낸 외계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존재의 증명을 할 뿐인 중계의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들도 모든 것을 알지 못했다.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우주를 여행하는 우주선 역시 외계의 존재가 있기 오래전부터 이미 그런 장치가 존재해 왔고, 자신역시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장치를 쓰고 있는 뿐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엘리는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되고, 파이(π) 안에 오래전 사라졌던 어떤 존재가 남겼던 메시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리고 18시간의 긴 꿈에서 깨어나듯이 여행은 끝나게 된다. 모든 것이 갑작스럽게 중단된 것처럼 지구로 돌아온 이들은 주위의 상황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지구에서 보기엔 발사된 우주선은 전혀 변화가 없었고, 엘리와 탑승자는 지구에서 떠나지 않은 것으로 촬영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디에도 가지 않았고, 우주선은 바다로 풍덩 떨어진 것이 끝이었다.

 온 세계가 이러한 사실에 모두 속은 것이라고, 비난이 쏟아졌다. 지금까지 모든 일들은 누군가의 소행이며 그것으로 인류 전체가 그의 사기극에 걸려든 것이라고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탑승자들은 18시간 동안 촬영된 비디오테이프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 안에는 온통 시커먼 암흑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청문회와 수많은 회의를 거듭해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모두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우주선에 탑승 한 것은 단한 순간일 뿐인데, 어째서 비디오테이프에는 18시간짜리 암흑이 녹음되어 있었을까? 어쩌면 외계인은 존재하면 그들은 우주로 간 것이 아닐까 하는 의견이 조심히 제기 되었지만, 아직 그러한 일들은 인간이 접근할 수가 없는 것이고, 믿지도 않을 것이며, 그러한 사실들과 진실들을 다음세대가 판단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불만이 없었다. 증명은 할 수 없지만 그들은 분명히 우주로 갔으며 외계의 존재가 있다는 것과, 자신들이 우주에 홀로 존재하는 외톨이 생명체가 아님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는 그러한 진리들을 파헤치기 위해 여태까지 소홀이 했었던 새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게 되고 지금까지의 갈등과 틀어졌던 마음까지 바로잡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가 숨겼던 것과 자신의 잘못 나아가 파이(π)안에 숨었던 비밀까지 알게 된다. 그것은 단지 수학에 평균적인 재능만 갖게 되는 단순한 공식이었다. 숫자들이 서로 바뀌는 유형 속, 초월수 그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완전한 형태의 원이었다. 해답은 모든 것이 풀렸다. 엘리는 자신이 찾던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소설은 단순히 우리 개인이나 나라가 아닌 이 지구에 펼쳐진 수많은 문제에 대해 묻고 있다. 핵이라든지, 기근, 종교 여타의 것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물음을 끊임없이 주고 있다. 인간은 진리를 찾는 나그네이다. 정말로 이 우주에 인간의 존재는 무엇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과학자도 종교에서도 비슷하다. 인간은 우주에서 귀한 존재인 생명체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단순한 이유는 모든 자성체들이 각기 다른 형태를 가지고, 각기 다른 문명과 지식과 거리에 살고 있지만 그들은 하나이며, 하나의 완벽한 원 안에 존재하는 이였다. 소설 안에 등장하는 외계인이며, 사라졌던 오랜 존재이며, 지구인 역시 모두 같은 존재였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엘리는 다름 아닌 칼 세이건의 본인을 그린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죽는 날 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개종을 하지 않던 칼 세이건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를 개종시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그에 관한 일화도 있다. 그 일화는 소설과 영화에도 직접적으로 등장하며 주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엘리와 엘리의 남자친구인 파머 조스와의 대화가 있다. 신학을 공부한 파머 조스는 엘리에게 신의 존재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만 엘리는 자신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에에 파머 조스는 묻는다.

 “아버지를 사랑해?”

 엘리는 물론 “그렇다.”고 대답한다.

 이에 파머 조스는 이렇게 또 묻는다.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라고.”

 엘리가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것은 과학적으로 말 할 수 있는 법칙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칼 세이건이 자신은 과학자이기에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 믿는다고 했다. 이에 그를 개종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친구이자 전미 개신교 협회장이 그와 똑같이 물었다. “당신은 가족을 사랑합니까?”

 역시나 칼 세이건은 가족들을 무척이나 사랑한다고 했다.

 이에 개신교 협회장 역시 이렇게 또 물었다. “그럼 가족을 사랑하는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존재와 관계된 수많은 물음조차 대답할 수 없다. 진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믿음이 아니라, 의문과 이해와 탐구와 도출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그러한 것들을 이해야 한다는 점과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는 점을 소설은 말해 주고 있다.



 태양계를 벗어나기 전에 보이저1 호에서 보내온 한 장의 사진인 창백하고 푸른 점(Pale Blue Dot)을 보며 칼세이건이 이렇 시(詩) 지었다.


 “여기 있다. 저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것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봤을 모든 사람들,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그곳에서 삶을 영위했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이 총합,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경제적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의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의 지도자들, 인간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저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 에서 살아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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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자의 아내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변용란 옮김 / 미토스북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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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디에도 있고. 또, 어디에도 기다리는. ‘시간 여행자의 아내.’

 

 

 

첫 마디를 조금 실망했다, 라고 시작하는 게 좋겠다. 왜냐면 실망한 이유를 열거한 뒤부터는 칭찬을 적을 것이기 때문에. 일단은 조금 실망했다. 나는 시간 여행자의 아내에 대한 너무도 칭찬의 감평에, 로맨스 이상의 것을 원하다가, 딱 로맨스 소설인 것을 안 것이다.(어느 정도 그 이상 되는 장치는 있다.) 하여간, 기대 이상을 해서 딱 기대치만 나온 것이다. 그렇기에 왠지 모르게 조금은 아쉬운 감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빼고서 본다면 이것은 재미있는 얘기이고, 또는 소설이기에 가능한 이상적인 사랑이 나온다.(현실감이 조금 떨어진다. 그런 점은 취향에 따라서 다르지만, 그것이 내 취향은 아니다.)

 

어쨌거나, 이 소설은 어느 한부분도 지루한 부분이 없고, 흥미진진하며 재미가 있다. 시간여행의 진부함과 독창의 혼재를 가진, 이런 재미덩어리의 소설을 읽은 기억은 근래엔 없다. 거기다 단순히 재미와 사랑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고, 이 소설은 감동과 그 여타의 소외된 것에 대해서도 충분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28살 먹은 도서관 사서 헨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술을 많이 마셔서도 아니고, 여자 문제가 복잡해서도 아니다. 그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의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시간으로 던져지는 시간 일탈 증후군을 앓고 있는 이였다. 이 시간 일탈 증후군 덕분에 그는 밥을 먹다가도 알몸으로 과거로 날아가기도 하며, 또 미래로(역시나 알몸으로) 내 팽개쳐 지기도 한다. 또, 8살 먹은 자신을 만나거나, 8살 더 먹은 자신과 만나기도 한다. 그런 평범하지 못한 일상을 보내는 그는 어느 날. 20살의 클레어라는 아리따운 아가씨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헨리를 보자마자 놀라며 자신과 결혼할 사이라고 밝히는데, 헨리로써는 본적도 만난 적도 없는 그녀의 말에 의아할 뿐이다. 그녀가 그러길 자신과 헨리는(정확히 미래의 헨리는) 6살부터 만나온 사이이고, 또 남편이라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 헨리는 이해했다. 그는 시간여행을 하는 이였고, 미래에 그러한 일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고, 헨리는 무섭도록 클레어에 빠져든다. 그리고 과거의 그녀를 만난 미래의 헨리와 과거의 헨리와 현제의 헨리와 클래어의 얘기다.

 

이 소설은 ‘그 남자 그 여자’처럼 두 사람의 시점을(헨리의 시점이 많다.) 번갈아 가며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마치 읽기와도 같고, 또 애절한 마음을 표현하기위한 장치로 더 할 나위가 없다. 거기다 오디세우스와 엘렉트라와 조금의 오디푸스가 혼재하는 얘기다. 클레어를 교육시키고 곁에서 지켜봐주는 헨리는 아버지처럼 되고, 또 클레어는 그를 기다리는 페넬로페가 되 결국 그의 버팀목이 되어준다. 

소설은 클레어의 자라나는 시간으로 구분되고, 헨리가 그 시간으로 내 던져지거나 끼어드는 이야기이다. 정말로 흥미로운 점은 바로 그 점이다. 어제는 나이가 먹은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는 헨리가 클레어를 찾아오지만, 그 다음날은 어리둥절한 헨리가 찾아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현재의 헨리를 질투하는 헨리와 나둥그러지는 헨리와 아이가 된 헨리. 젊은 헨리. 이 시간구분은 미래까지 이어진다.(더 이상 발설하지말자.) 어린 시절의 클레어는 헨리가 나타나기로 하는 날짜를 셈하며 기다리고, 현재의 시간에 직접 만난 이후에는 헨리가 갑자기 사라지지나 않을까 조바심을 내며 기다린다. 언제나 함께 있지만 그것은 또 다른 기다림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언제나 간절하기만 하다. 사랑에 대해서 결코 포기하지 않는 클레어와 자신의 장애를 고치려는 헨리, 그리고 곁에서 도와주는 이들 여타의 것들이 섬세하게 풀이되어 있으니 이만큼 괜찮은 로멘스 소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딱 적당한 무게와 비중을 가지고 있기에 오랜만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고, 마지막은 조금 아련하기 까지 했다.

   클레어. 정말, 그토록 기다리다니. 세상에 그런 사랑이 존재하기나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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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소년 4
시무라 타카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니토리 슈이치는 소녀를 꿈꾸는 섬세한 초등학교 6학년 소년. 소년이 울보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타카츠키 요시노는 소년이 되고 싶은 굳센 소녀. 자신은 남장을 하고, 여장을 한 슈이치와 함께 먼 곳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다 오는 것을 즐긴다. 현재 외부와 내부의 평온이 오기를 기다리며 꾹꾹 참고 있다.

 치바 사오리는 이상하지만 섬세한 소녀. 니토리 슈이치를 너무도 좋아하기에, 슈이치와 가깝게 지내는 요시노를 미워하는 마음이 점점 차오르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니토리 마호는 활달하고 심술꾸러기인 슈이치의 한 살 위 누나. 아이돌인 마이코를 동경해 모델이 되기로 결심한다. 슈이치에게 반한 같은 반 친구 리쿠를 좋아한다.

 사사 카나코는 착하고 명랑한 소녀. 친구들의 사이가 금이 가는 것에 언제나 노심초사하고 있다.

 아리카 마코토는 여자가 되고 싶은 수다쟁이 주근깨 소년. 슈이치의 유일한 남자친구. 순종적인 여성이 되는 꿈을 꾼다.

 세야 리쿠는 여장을 한 슈이치를 보고 반해버린 중학생 소년. 하지만, 슈이치가 남자인 것을 알고 충격을 받는데. 엉덩이가 가벼운지 마호에게도 마음이 있다.

 스메하로 안나는 마이코의 친구이자 냉정한 프로모델 소녀. 사이가 나빴던 마호와 친해진후 신경 쓰이는 슈이치를 못살게 구는데.

 유키는 게이, 시이나는 유키의 애인 이며 두 사람은 슈이치와 요시노의 친구. 술집에서 근무하며 슈이치와 요시노를 바라보는 것을 삶의 낙으로 살고 있다.


 이런 캐릭터들이 나오는 얘기다.


 성 정체성이 있는 캐릭터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만화가 무엇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생각나는 것은 골때리는 연극부의 괴상한 연극부장과 스톱 히바리군의 히바리 정도. 어쨌든 이런 소재는 평범한 남자인 나로 써는 좋아할 수가 없는 소재이다. 하지만, ‘방랑소년’은 그런 거부감이 싹 달아나게 할 정도로 충분히 재미가 있다. 아니, 충분히 란 표현 보다는, 요 근래에 봤던 만화 압도적으로 재미가 있다. 그림 스타일도 딱 마음에 든다. 소년 소녀들의 얘기를 정말로 탁월하게 그리고 있는 만화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는 후쿠시마 사토시의 소년소녀라는 단편집 외에는 없다. 하지만 그 단편집은 너무도 복잡한 형태와 자극적인 소재가 나열되어 있기에, 이렇게 건전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은 흔하지가 않다. 거기다 사춘기가 오기전인 소년과 소녀가 성정체성과 정서가 굉장히 납득하기 좋은 형태로 그려내는 것은 이 만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특징 없는 정적인 단문과 짧은 평어들로 소년과 소녀들의 개성을 이토록 섬세하게 잘 표현하다니, 정말로 탁월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꼬마 애들이 진지하게 하는 짓이 참 가소롭고 귀엽다. )

 이 만화의 사건들은 소년소녀들에게 일어날법한 너무도 평범한 것들 밖에 없다. 가장 큰 사건이라고는 슈이치와 요시노가 자신의 비밀들을 교환일기를 나누던 것이 다른 학생들에게 들켜 놀림을 당하는 것이다.(정말로 이것이 4권이 나오도록 가장 심각한 사건이다.) 아니면 슈이치가 요시노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한 것과 사오리가 슈이치에게 고백을 하는 것 정도. 그런 작은 사건들이 소년과 소녀의 마음에 상처와 기쁨을 주어 풀어 나가는 것이 바로 이 만화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품고 있던 어떤 응어리들이 점점 부풀어 오르며 금이 가기 시작하는데, 그런 상태로 그들은 중학생이 되어 버렸다. 이제 슬슬 불안했던 정채성이 자리를 잡아 갈지도 모르는 징조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그런데 나만 그렇게 보이는지, 작가의 의도인지, 갈수록 요시노는 귀엽게 나오고 있다. 꿈에서 슈이치와 결혼을 해 여보하면서 활짝 웃으며 깨우는 장면까지 등장. 거기다 남장을 하던 것이 들켜 결국 치마를 입고 등교하는 장면은 압권. 뭐, 얼마 후 다시 남자처럼 입고 다니지만.)

 5권에서는 중학생이 되어버린 이들의 얘기가 펼쳐질 텐데, 5권은 언제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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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소년 1
시무라 타카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니토리 슈이치는 소녀를 꿈꾸는 섬세한 초등학교 6학년 소년. 소년이 울보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타카츠키 요시노는 소년이 되고 싶은 굳센 소녀. 자신은 남장을 하고, 여장을 한 슈이치와 함께 먼 곳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다 오는 것을 즐긴다. 현재 외부와 내부의 평온이 오기를 기다리며 꾹꾹 참고 있다.

 치바 사오리는 이상하지만 섬세한 소녀. 니토리 슈이치를 너무도 좋아하기에, 슈이치와 가깝게 지내는 요시노를 미워하는 마음이 점점 차오르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니토리 마호는 활달하고 심술꾸러기인 슈이치의 한 살 위 누나. 아이돌인 마이코를 동경해 모델이 되기로 결심한다. 슈이치에게 반한 같은 반 친구 리쿠를 좋아한다.

 사사 카나코는 착하고 명랑한 소녀. 친구들의 사이가 금이 가는 것에 언제나 노심초사하고 있다.

 아리카 마코토는 여자가 되고 싶은 수다쟁이 주근깨 소년. 슈이치의 유일한 남자친구. 순종적인 여성이 되는 꿈을 꾼다.

 세야 리쿠는 여장을 한 슈이치를 보고 반해버린 중학생 소년. 하지만, 슈이치가 남자인 것을 알고 충격을 받는데. 엉덩이가 가벼운지 마호에게도 마음이 있다.

 스메하로 안나는 마이코의 친구이자 냉정한 프로모델 소녀. 사이가 나빴던 마호와 친해진후 신경 쓰이는 슈이치를 못살게 구는데.

 유키는 게이, 시이나는 유키의 애인 이며 두 사람은 슈이치와 요시노의 친구. 술집에서 근무하며 슈이치와 요시노를 바라보는 것을 삶의 낙으로 살고 있다.


 이런 캐릭터들이 나오는 얘기다.


 성 정체성이 있는 캐릭터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만화가 무엇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생각나는 것은 골때리는 연극부의 괴상한 연극부장과 스톱 히바리군의 히바리 정도. 어쨌든 이런 소재는 평범한 남자인 나로 써는 좋아할 수가 없는 소재이다. 하지만, ‘방랑소년’은 그런 거부감이 싹 달아나게 할 정도로 충분히 재미가 있다. 아니, 충분히 란 표현 보다는, 요 근래에 봤던 만화 압도적으로 재미가 있다. 그림 스타일도 딱 마음에 든다. 소년 소녀들의 얘기를 정말로 탁월하게 그리고 있는 만화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는 후쿠시마 사토시의 소년소녀라는 단편집 외에는 없다. 하지만 그 단편집은 너무도 복잡한 형태와 자극적인 소재가 나열되어 있기에, 이렇게 건전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은 흔하지가 않다. 거기다 사춘기가 오기전인 소년과 소녀가 성정체성과 정서가 굉장히 납득하기 좋은 형태로 그려내는 것은 이 만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특징 없는 정적인 단문과 짧은 평어들로 소년과 소녀들의 개성을 이토록 섬세하게 잘 표현하다니, 정말로 탁월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꼬마 애들이 진지하게 하는 짓이 참 가소롭고 귀엽다. )

 이 만화의 사건들은 소년소녀들에게 일어날법한 너무도 평범한 것들 밖에 없다. 가장 큰 사건이라고는 슈이치와 요시노가 자신의 비밀들을 교환일기를 나누던 것이 다른 학생들에게 들켜 놀림을 당하는 것이다.(정말로 이것이 4권이 나오도록 가장 심각한 사건이다.) 아니면 슈이치가 요시노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한 것과 사오리가 슈이치에게 고백을 하는 것 정도. 그런 작은 사건들이 소년과 소녀의 마음에 상처와 기쁨을 주어 풀어 나가는 것이 바로 이 만화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품고 있던 어떤 응어리들이 점점 부풀어 오르며 금이 가기 시작하는데, 그런 상태로 그들은 중학생이 되어 버렸다. 이제 슬슬 불안했던 정채성이 자리를 잡아 갈지도 모르는 징조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그런데 나만 그렇게 보이는지, 작가의 의도인지, 갈수록 요시노는 귀엽게 나오고 있다. 꿈에서 슈이치와 결혼을 해 여보하면서 활짝 웃으며 깨우는 장면까지 등장. 거기다 남장을 하던 것이 들켜 결국 치마를 입고 등교하는 장면은 압권. 뭐, 얼마 후 다시 남자처럼 입고 다니지만.)

 5권에서는 중학생이 되어버린 이들의 얘기가 펼쳐질 텐데, 5권은 언제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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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에 관한 거의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 - 세계현대작가선 7
장 도르메송 / 문학세계사 / 1997년 3월
평점 :
품절


 


 

장 도르메송


 ps. 술 넘어가듯이 읽히긴 읽히더라. 헌데 이것을 진정 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가? 아니면 어떤 다른 범주인가?

 ps2. 읽었느니 그냥 감상이나 쓰자. 하지만, 정리 할 수가 없다. 그냥 잡탕이다.

 ps3. 그냥 하고 싶은 말. 칼비노는 언제나 위대하다.

 ps4. 그의 다른 서적인 카지미르는 월요일에도 학교에 가지 않았다, 역시 주문했다. 음, 이것은 대체 어떤 내용일까나.



 <주의 : 의식과 분리된 자동서기 뒤죽박죽 감상 글.>





 우리가 우리의 시대에 대해서 말하자면,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의식화된 생활일 것이다. 모든 것은 삶과 죽음. 그것으로 분류가 되지 않은 것은 무의 존재로 보아도 무방할까? 아니면 돌과 같이 산과 같이, 행성과 같이, 은하와 선단과 혹성을 만들었던 빅뱅을 삶이란 이름을 붙이고 먼 훗날 숫자로 기록할 수 없는 그 끝을 죽음으로 만들어야 할 것인가? 현재 진행형인 빅뱅의 삶은 지금쯤 어디쯤 왔을까? 은하와 은하와 은하가 분자처럼 서로를 자극해 살아가고 우주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살아 있는 신체라고 할 수 있는 빅뱅을 이루고 그가 행동해야 할 모든 것들이 대우주와 소우주와 은하와 행성 그리고 태양계아래의 지구 아래의 하늘 아래의 지상위에 떠있는 미토콘드리아 같은 인간들에게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 신이라는 존재가 있기에 인간은 가치를 매길 수 있는 것인가? 산소와 흙과 우주에 떠있는 검은 질량과 팽창되어 버린 것들이, 그딴 것 개뿔도 신경 쓰지 않은 인명들과 나도 모르는 인물과 추잡한 것들과 문제와 행복과 사랑과 존재와 위장된 세계와 운명과 빛과 전파로 되어져 있는 진동과 그것을 꿰뚫는 일각고래의 뿔의 신경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우스꽝스러운 가치에 대해 시간상 짧게 아는 만큼만 소설이란 이름으로 둘러대고 있는데, 언제나 그렇지만 침묵 속에는 답이 없다. 그래서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열어서 텍스트를 뿜어내기 위하여 도르메숑은 우주의 분열을 거쳐서 수소의 세기를 지나 불꽃과 열과 응의 단계를 거쳐 먼 변방의 지구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들에 대하여, 처음부터 절정까지 그리고 빅뱅의 삶에 대하여 처음부터 우리 집 앞까지 얘기하고 있다. 만물에 대하여, 그가 모르는 것은 곱표를 표시한 나머지의 그토록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이다.

 하여간 소설은 대충 이런 필(feel)을 가지고 있었다.  헌데, 대체 난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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