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전 雙典 - 삼국지와 수호전은 어떻게 동양을 지배했는가
류짜이푸 지음, 임태홍.한순자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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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전, 다시 말해서 수호전과 삼국지를 새롭게 바라본 책이다. 저자는 이 두 책을 재앙이라고 말하며, 중국 사회에 크나큰 해악을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언뜻 이해하기 힘들다. 둘은 고전이 아닌가? 고전이라 함은 읽는 것을 권장받는 책이 아닌가? 하지만 저자는 문학적인 가치와 영적인 가치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수호전과 삼국지가 문학적으로 가치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가치와 사상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첫째로, 저자는 수호전에 나타나는 폭력에 대한 숭배와 폭력취미, 나아가서 '반란은 정당하다'고 고취시키며 '반란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정당하다'는 주장을 비판한다.

 

  저자가 수호전에서 들고 나온 이야기 토막들은 굉장히 잔인하며 인간같지 않다. (그러나 내가 정작 수호전을 읽었을 때는 이런 장면이 썩 거북하지 않았다. 아마 책의 논리와 동화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저자가 경고하는 것도 아마 이런 식으로 무장해제 당했을 적 스며드는 사상일 것이다.) 그런데 그 잔학성에는 "목표"를 위해서 "사람"을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스며 있다. 그들은 그 논리로 인해 자신의 행동에 의문을 가지지도 않고 망설이지도 않는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p.115.

 독자들이 이규 등의 행위를 지나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 정당성' 때문이었다. 살인은 완전히 양산박의 반란 사업을 위한 것이었다. '큰 도리는 작은 도리보다 앞선다'는 명분인 것이다. / 그런데 중국 문화는 맹자로부터 시작하여 그 '큰 도리'라는 것을 오히려 작은 도리라고 지적했다.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서 사람과 짐승이 구별되며, 그것이 바로 큰 도리인 것이다.

p.108.

  그러한 논리는 좀 더 간단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사회는 악하다. 그러므로 나는 사회보다 더욱 악하게 행동해도 된다. 사회는 어둡다. 그러므로 나는 사회보다 더욱 어둡게 행동해도 된다. 이러한 논리를 배경으로 반란이 정당하다는 주장이 생겨나고 이것이 변해서 강탈도 정당하며, 살인도 정당하고, 사람을 먹는 것도 정당하다는 주장이 된 것이다.

 

  위에서 나타난 것처럼, 독재에 대항해 일어난 세력의 사고방식이 완전히 독재적이라는 것은 괴상하다. 이런 논리에는 어떠한 반론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무서운 점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소를 희생시키며 나아간 대의 결말에 있다.

 

p.130.

 독재가 아닌 정치 형태나 문화 형태가 새롭게 세워진 적은 결코 없었다. 그 원인은 독재 정권의 주체와 독재 정권에 반항한 주체가 심리적으로 모두 동일한 구조였기 때문이다.

p. 21.

 격동의 시기를 만나서 사람들이 그런 종류의 정당성을 내걸고 모였을 때 인간성 속에 있는 폭력적인 경향은 바로 조직화된다. 아울러 조직적인 역량은 폭력적인 재난을 보다 높은 단계로 끌어올린다. 사라들의 타고난 양심과 천성은 그러한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층층이 차단된다. 우리가 역사상의 폭력 현상을 관찰할 때 정말 무서운 것은 폭력 그 자체가 아니라, 폭력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다.

 

 

 

  두 번째로 저자는 '삼국지가 지닌 총체적인 효과는 영혼은 없고 마음의 꾀만 가지고 있는 삼국지 인간을 부단하게 제조해내는 것이었다.(p.195)'라고 말하며 삼국지를 비판한다. 저자는 일차로 등장인물들이 주로 사용한 방법(유비의 유술, 조조의 법술, 사마의의 음양술, 그외 소설에 나오는 미인술 등 술수)을 말하며 삼국지에 얼마나 교활함이 가득차 있는지를 말하고, 그후 삼국지에서 얼마나 많은 변질이 일어났는지(의리, 지혜, 역사, 미)에 대해 말한다.

 

p. 210.

 무릇 백성들은 모으기가 어렵지 않다. 그들을 사랑해주면 친해지고, 이롭게 해주면 모여든다. 그들을 칭찬해주면 일에 힘쓰고, 싫어하는 일을 하게 되면 흩어진다. 백성을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것은 '인의'에서 나온다. '인의'를 순수하게 실천하는 사람은 적고, '인의'를 이용하려는 사람은 많다.

p.217.

그래서 루쉰은 법술을 가리켜 '명술', 즉 '밝은 술수'라고 했다. 그것은 비록 기만술이며 권모술수이지만, 법의 이름을 사용하며 인의 가면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만약 사람을 죽이고자 하면 합법적인 근거를 만든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죽인다. 그것은 분명히 '기만'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이 아무런 말도 못 하게 만들어버린다.

p.259.

 이것을 보면 '결의'의 '의'란 단지 패거리 집단의 협소한 윤리에 불과한 것이지 결코 사회의 일반적인 윤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의'는 그들 사이에서는 진실일지 모르지만, 외부의 보편 사회에 대해서는 거짓이었다. 이것이 바로 '의'의 변질이다.

 

  삼국지에 나타난 위형을 조목조목 지적한 말을 읽고 있자면 조금 섬뜩해지는 것이, 그것이 결코 삼국지 속에서만 나타나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읽고 있자면, 정치는 물론이고 현대 개인의 인간관계에서도 삼국지 못잖게 얼마나 많은 기만이 행해지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정치투쟁의 3원칙 (p.305)

1. 성실성은 필요없다

2. 사당을 결성한다

3. 상대방에게 먹칠을 한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익이고, 자신의 형제('우리 집단')의 이익이다, 이익이 되는 것은 옳은 것이다, 속이는 것은 영리한 것이며 속는 사람은 바보이다, 기타 등등. 세상 살기 위한 술수 혹은 요령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모두 삼국지에서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잠깐 들 정도다.

 

 

 

  저자는 이야기를 시작하며 중국에서 오래도록 내려온 충고의 말을 인용한다. "어려서는 수호전을 보지 말고, 늙어서는 삼국지를 보지 마라." 그러나 저자는 수호전과 삼국지는 널리 읽히고 있으며, 오래 사랑받은 만큼 그 해악이 깊이 뿌리내려 민족의 집단적인 무의식이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저자는 중국에 한정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에서도 그리 색다르게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삼국지와 수호전은 어떻게 동양을 지배했는가>라는 부제가 과장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강한 목소리로 쌍전을 비판하지만, 탄탄한 논리로 그를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의 주장은 능히 받아들일 만 하며, 새로운 시각으로 쌍전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거기에 더해, <쌍전>은 "문학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또다른 가치를 가진다. 재미있는 책을 읽을 때는 저도 모르게 그 책의 논리에 동화되기 마련이고, 그 논리는 내재되어 그 후 사람의 행보에 영향을 미친다. 비판적인 책읽기가 필요한 이유다. 세상에 해약을 주는 책이 비단 수호전과 삼국지 뿐이겠는가?

 

 

+ 덧붙여

 

p.148.

  결혼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혼외정사'한 여성들에 대해서, 홍루몽은 그들을 천당으로 보내고, 금병매는 그들을 인간세계에 집어넣고, 수호전은 그들을 지옥으로 쳐넣었다.

 

  저자는 책의 상당한 면을 할애해서, 수호전과 삼국지에서 여성에게 보이는 태도를 지적한다. 이 두 소설에서 여성은 인간이 아니며 일종의 사물이다. 요물, 독물, 제물, 기물, 희생물, 먹거나 잘리는 물건. 이렇듯 여성의 사물화가 일어난 것에 대해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정리하며, 그에 관해 유가의 책임을 묻는다.

 

  <쌍전>은 수호전과 삼국지를 비판하고 있지만, 결국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인간성인 것 같다. 인간성의 회복.

 

2012.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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