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구역 서울
정명섭 지음 / 네오픽션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별 세 개 반 정도.

 

  <대학로 좀비 습격사건>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 한국 좀비 소설. <목련이 피었다>에 수록된 단편소설 'ZOMBIE, 2011 in Seoul'까지 합치면 세 번째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핵폭탄이 터져 좀비가 발생해 폐쇄된 서울에서 물건을 가져다주는 일을 하는 트레저헌터인 현준이 부정하던 과거를 마주하고 인간성을 회복한다는 이야기다. (중간에 음모론이라던가 화학탄이라던가 쿠데타라던가 이것저것이 많이 끼어드는 바람에 핵심이 좀 흐려지긴 했지만.)

 

  서울에 좀비가 득시글거리게 된 이유는 북한이 핵폭탄을 서울에 쏘았기 때문인데, 좀비가 등장한 이유를 한반도의 현실과 꽤 현실감있게 엮어서 좋았다. 그러나 서울에서 누구는 좀비가 되고 누구는 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 쉬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방사능에 노출이 되어서 그렇다면, 서울에서 밖으로 탈출한 사람들은 방사능에 전혀 노출이 되지 않았다는 걸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서울 밖에 이송된 사람들이 서서히 좀비로 변하는 일도 가능할 법 한데 말이다. 뭔가 납득이 가면서도 납득이 가지 않는 설정이다. 하지만 <폐쇄구역 서울>에서 중요한 것은 좀비가 아니니 설정은 너무 파고들어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대학로 좀비 습격사건>과 <ZOMBIE, 2011 in Seoul>, <폐쇄구역 서울>에 이르기까지 '좀비는 특정한 장소에만 있다'는 점이다. <대학로 좀비 습격사건>에서는 대학로 일대였고, <ZOMBIE, 2011 in Seoul>은 건물 안, 그리고 <폐쇄구역 서울>에는 서울에만 좀비가 있다. 다시 말하면 그 지역만 피한다면 좀비에게서 안전하다는 소리다. 따라서 긴장감이 좀 덜하다. 왜냐하면 '이 곳만 빠져나가면' 안전지대기 때문이다. 이 차이 때문에 한국 좀비물은 약간 게임을 하는 느낌도 드는데,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는데도 들어가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외국의 좀비물을 보면 보통 모든 세계가 좀비에게 점령당한 것으로 시작한다. 좀비를 완전히 피할 수 있는 지역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외국의 좀비물은 '좀비들 사이에서 좀비가 되지 않고 살아남자!'가 목표이다.

 

  그런데 내가 본 한국 좀비물들은 생존 외의 다른 목표가 부각된다. <대학로 좀비 습격사건>에서는 좋아하는 여자를 구해 나오려고 대학로로 잠입하는 남자가 나오고, 따라서 이 소설의 핵심은 '좋아하는 여자를 무사히 구해서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인가'이다. <ZOMBIE, 2011 in Seoul> 같은 경우에는 일단 좀비를 피해서 밖에 나왔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다시 말해서 좀비보다 밖이 더 싫다는 소리고, 자연스럽게 왜 밖이 더 싫은가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폐쇄구역 서울>로 말하자면 의뢰인이 서울에 두고 온 물건을 가져다줌으로써 돈을 벌기 위해 좀비들 사이로 뛰어든다. 따라서 부각되는 것은 '좀비'가 아니고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안에 들어가게 만드는 '돈과 추억'이다.

 

  p. 116.

  "핵폭발은 좀비를 만들어내면서 사람들에게서 다른 것들을 빼앗아갔습니다. 그때 없어진 게 뭔 줄 아십니까? 명함에 찍혀있는 회사나 직책, 월급봉투, 대학 졸업장 같은 겁니다. 그리고 그런 허물들이 벗겨지면서 사람들은 더 끔찍해졌습니다. 이제 남은 건 먹고 사는 것뿐이죠. 사람들은 천박하고 비겁해졌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버리고 부모가 아이들을 버린 게 지극히 정상적인 게 되어버렸습니다. 핵폭탄이 진짜 날려버린 건 인간성입니다. 우린 어쩌면 폐쇄구역을 떠도는 좀비들보다 더 하등동물이 된 건지도 모르죠."

 

  p. 164.

   "사람들은 옛날부터 사진이나 결혼반지 같은 추억이 될 만한 것들을 위해 기꺼이 큰돈을 썼어요. 갑자기 헤어진 가족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요."

  "난 그 추억들을 버렸어. 저 폐쇄구역 안에다가."

  "그럼 가서 찾아와요. 그게 직업이잖아요."

 

  이 책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서울에 핵폭탄이 떨어진 이후 살아남은 살마들이 겪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이다. 초반에는 사람들의 외상후스트레스와 인간성에 대한 고찰 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현준이 '소소한 일' 담당으로 좌천되면서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그 물건을 가져다주는 형식이므로), 중간에 화학탄이며 서울에서 목격된 일반인이며 쿠데타며 그런 게 엮여들어가서 마지막에는 엉뚱한 쪽으로 빵 하고 날아가버렸다. 뒷부분의 이야기는 액션물 보듯 보기는 좋지만, 뭔가를 생각하게 했던 앞부분과는 달리 아무 생각 없이 총을 쏘고 피하고 도망치고 하는 내용이라 앞부분에서 공들여 쌓아놓은 돈과 추억과 인간성과 상처라는 주제를 잡아먹어버렸다.

 

  읽을 때는 속도감 있게 읽혀서 좋았지만, 읽고 나니 아쉬움이 남는 글이다. 조금 더 방향을 잘 가늠했으면 더 좋은 글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서 그렇다. 캐릭터보다는 스토리 중심이고(캐릭터들은 꽤나 전형적이고 다들 지적이다), 영화를 보듯 시각화가 뛰어난 작품이다. 어찌되었건 간에 여름밤에 읽기에는 꽤 좋다.

 

 

p.s. 덧붙여 아쉬운 점 한가지 더. 작가가 자기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스토리를 통해서가 아닌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말하는 기미가 있다. 캐릭터가 아닌 작가가 말하는 게  티가 나서 아쉬웠다.

 

 

 

2012.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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