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악마 바벨의 도서관 26
자크 카조트 지음, 김계영 옮김, 이승수 해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바다출판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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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이 시리즈 꽤 재미있는 것 같다. 느낌이 독특하다.

 

  <사랑에 빠진 악마>는 나폴리 왕실 근위대 대위로 재직중인 25세 알바로가 포르티치 폐허에서 악마를 불러내면서 시작한다. 알바로가 악마를 불러낸 직후 나타난 여인 비온데타와 연애하는 과정이 줄거리인데, 줄거리 자체는 별다를 바 없고 등장인물로 꽤 단면적이나 몇 가지 이유로 인해 꽤 흥미롭게 읽었다.

 

  이 글은 알바로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그 때문에 알바로가 겪은 일이 현실인지 환상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알바로가 비온데타에게 끌리면서도 의심하고 경계하는 과정이 꽤 재미있다. 만약에 비온데타가 악마라면 알바로의 의심은 정당한 것이지만, 알바로가 겪은 일이 그의 환상이라고 하면 비온데타는 부당한 처사를 받는 것이 틀림없다(그리고 비온데타는 자신의 억울함을 종종 알바로에게 호소한다).

 

  비온데타의 행동 또한 꽤 수상쩍으면서도, 전혀 납득이 안 가는 것도 아니다. 비온데타는 알바로에게 마음이 있지만, 사귀기 전까지는 노골적으로 유혹적이지는 않다. 비온데타가 알바로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호소하고 애원하고 울고 새침하고 애처롭게 구는 몇 가지 술책을 쓰는 것은 둘이 연인이 된 이후이다. 비온데타의 이러한 태도는 알바로가 겪은 것이 과연 현실인가 하는 의심을 심어놓는다(만약 비온데타가 악마라서 알바로를 유혹해야 했다면, 사귀기 전에 더욱 더 유혹적이고 새침하게 굴지 않았을까?).

 

  또한 중요한 것은, 보통의 소설들과는 다르게, 알바로와 악마 사이에는 어떤 명시적인 계약이 없다는 점이다. 악마는 "케 부오이(무엇을 원하느냐)?"하고 묻기는 했지만, 알바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순순히 대답하지 않았으며(그는 악마를 종으로 취급하고, 악마는 이유를 모르지만 그에 순종했다), 악마 또한 알바로의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대가로 자신이 받을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따라서 둘 사이에는 '이건 하면 안 된다'는 게임의 룰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한층 모호하다. 그들의 거래는 불명확하고, 알바로의 강박적인 행동이나 비온데타의 과민한 반응을 보고 추론을 할 수 밖에 없다. 알바로는 비온데타와 사귄 뒤에도 그녀를 경계하고, 비온데타는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알바로를 자신의 뜻에 따르게 하려고 하지만, 그녀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소설의 흐름을 매우 빠른데, 다른 가지는 다 쳐내고 몸통만 남겨놓았다는 느낌이다. 그 성급한 느낌과 알바로의 성격, 그리고 '과연 그 일이 현실에 일어났는지'의 불명확함 때문에 자칫 식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다채로워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TV프로그램 <사랑과 전쟁>이 생각났다. 알바로와 비온데타는 과연 사랑한 걸까? 둘이 끌린 것은 사실이지만, 알바로도 비온데타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비온데타 또한 비슷하다. 둘이 날을 세우는 것을 보면, "정말 둘은 일종의 게임을 하는 게 아닐까, 알바로가 진다면 영혼을 뺏긴다거나, 알바로가 이긴다면 악마에게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난다거나" 하는 의심이 든다. 하지만 결말에서 비온데타는 자신의 정체가 베엘제부트라 밝히고, 아무 짓도 하지 않고 떠나간다. 보통의 소설과 달리.

 

  작가는 마지막에 비온데타의 정체를 밝혀내지만, 그 과정 자체도 꽤나 환상적이므로 '과연 그게 현실인가?'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결과적으로 비온데타와 알바로는 헤어지고, 알바로는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만나고, 아마도 어머니가 정해주는 여인과 결혼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를 보면 비온데타가 알바로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매우 경계한 이유도 왠지 납득이 간다(만약 비온데타가 진짜 인간이었어도, 과연 알바로의 어머니가 둘의 결혼을 축복해주었을까? 서술을 보면 알바로는 마마보이 기질이 다분하다.)

 

  빠르게 읽을 수 있지만 아리송하고, 아리송한 만큼 식상할 수 있었던 얘기가 재미있는 소설이다. 둘 사이에 과연 어떤 일이 있는 것인지, 명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 이면을 추론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2012.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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