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미스터리 2012.봄 - 35호
청어람M&B 편집부 엮음 / 청어람M&B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계간 미스터리 2012년 봄호가 나왔다. 이번 호에는 단편이 많이 수록되어 있는 게 눈에 띤다. 특집 2 / 에세이 2 / 추리꽁트 및 국내단편 10 / 해외단편 1 / 특별기고 1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편이 많이 수록되어 좋았으나, 그만큼 그 외의 부분(특집 기사라던가 에세이, 특별기고 등)이 좀 약해진 느낌이 들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이번 호 표지가 매우 마음에 든다.

 

  수록된 단편 중에서 재미있었던 것은 <아이의 뼈>와 였다.

 

  <아이의 뼈>는 독특한 플롯은 아니었지만 몰입도가 좋고 인상깊은 단편이었다. 십몇년 전 살해된 아이의 시신을 찾는 노파, 그리고 아이의 시신을 가지고 거래를 하는 범인, 그 사이에서 다리를 놓아주는 서술자 셋만 등장하는데도 이야기가 느슨한 느낌이 없어서 좋았다. 아이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피해자 부모의 심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마음이 아파지는 단편이었다.

 

  는 범인을 찾는 전통적인 미스터리다. B사감이라 불리는 사감언니가 자살인 척 살해당하고, 그날 사감언니에게 수면제를 먹였던 여대생이 자신의 무리 중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보는 구성이다. 범인을 찾기는 어렵지 않지만, 범행수법과 가능성을 따져보는 게 흥미진진하다(다만, 중간에 등장한 목격자의 증언은 소설의 흥미를 떨어뜨렸다고 생각한다). 일반인이 탐정 역할을 할때 늘 그렇듯 경찰이 좀 허술하게 느껴진다는 단점이 있긴 하다.

 

  <김성종과 김내성>은 발상이 독특해 마음에 들었다. 실존하는 추리소설가 김성종이 대통령 비밀자문위원으로 활약한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독자와 공정한 대결을 하는 게 아니라, 작가가 홀로 얘기를 이끌어가며 결론까지 내려놓아서 흥미가 반감된 부분이 있다. 게다가 김내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등장인물의 존재감이 너무 미미하다. <김성종과 잃어버린 번호> 쪽이 더 알맞은 제목이 아닐까 싶다.

 

  단편 중에서 제일 아쉬웠던 건 <구제역 소동>이었다. 사회문제(구제역)와 음모론을 섞어 미스터리하게 조리해냈는데, 결말에서 이야기 전체가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배경지식이 탄탄하기 때문에 오히려 상상력이 마음껏 뻗지 못한 것 같다. 친구가 구제역의 원흉이라는 탄탄한 의심에서, 갑자기 라마로 의심을 돌리더니 소시지로 결말이 나서 당황했다(이런 의심의 선회가 그다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사람과 로봇 실종사건>은 2011년 가을호에 실린 <노끈>의 등장인물, 월셔 홈즈와 라왓슨 콤비가 다시 등장한 단편이다. 그런데 오히려 <노끈>보다 이야기가 퇴보한 느낌을 받았다. 박샛별 박사의 목에 검은 손자국이 있고 손에는 사람의 머리카락이 엉겨있는데 강철인 사장은 그녀가 익사했다고 판단했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차라리 사장이 범인과 공범으로 박사를 살해했다는 쪽이 설득력 있는 것 같다.

 

  <사랑보다 깊은 상처>는 미저리가 떠오르는 이야기였다. J.B와의 사랑을 노래하는 서술자를 볼 때마다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심리만 있고 사건이 없다고 해야 하나, 결말까지 평탄하게 나아가서 소설을 읽는다기보다는 일기를 읽는 느낌이었다.

 

  <팔선연회투안>은 낯선 단어가 많이 등장해서 뒤적거리며 읽어야 했지만, 곳곳에 쓰인 표현이나 분위기가 재기발랄해 유쾌하게 읽었다. 서왕모에게 하사받아 다음날 마시기로 하고 숨겨놓은 술이 사라지고, 범인으로 취팔선 중 한 명인 철괴리가 지목된다. 그 때 선계탐정연합을 만들고자 서왕모에게 찾아온 사락극 곽모사, 옥삼, 과륭박, 비리보 마락, 합리 가랍한, 혁이극리 파라, 포랑 신부, 과남이가 모여 진범을 찾는다는 이야기다. (이들의 진명眞名이 무엇인지는 소설 본문을 보면 나온다^^)

 

  <유희교실-0교시의 살의>는 처음에는 집중이 잘 안 되었는데, 뒤로 갈수록 재미있어졌다. 다만 서술자가 자신의 입으로 모든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게 긴장을 좀 늦추는 역할을 한 듯 하다.

 

  해외단편인 <실낙원 살인사건>은 일단, 읽기가 매우 힘들었다. 쉼표가 너무 많아 정신이 산만해져서 이야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한 문장을 몇 번이고 읽느라 진이 빠졌다. 그래서 정작 내용에는 관심이 덜 갔다. 옛날에 쓰여진 단편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번역이 매끄럽지 않았던 것 같다.

 

  추리꽁트가 두 편 수록되어 있는데, 역시 글은 짧으면 짧을수록 쓰기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임팩트가 약했다.

 

  특집인 <추리문학관 20주년 기념 소설가 김성종 대담>과 <그림자재판 참가기>는 짧지만 흥미로웠다. 잘 모르는 내용이 나와서 더욱 흥미로웠던 것 같다. 특히 <그림자재판 참가기>는 강도인지/절도인지 스스로 판단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특별기고는 계간 미스터리보다는 영화잡지에 더 어울릴 것 같은 내용이라서 조금 실망했다.

 

  두 편의 에세이 중, <김내성과 흰 백白자의 미스터리>는 시작은 좋았으나 끝이 흐지부지하다. 총 두 장 반의 에세이에서, 김내성에 대한 이야기가 한 장 반이고, 白자를 사랑한 김내성에 대한 의문 제시가 반 장이고, 저자가 짐작해 본 해답이 반 장이다. 그런데 해답 중 절반 이상이 인용문이라서 거창한 서두와 달리 끝부분을 대충 수습한 것 같은 느낌을 풍긴다. 이제 본론에 들어가는구나, 싶었는데 끝이 나버렸다.

 

  한편 또 다른 에세이 <영화와 추리소설-패러디 미스터리 영화 컬렉션>은 매우 흥미로웠다. 이 에세이 역시 두 장 반 정도의 길이인데, 패러디 미스터리라는 분야에 흥미를 가지게 하면서(패러디 미스터리 영화 두 편을 소개하고 있다) 깔끔하게 끝난다. 이쪽을 더 파서 심화기획(?)을 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이번 호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새로 신설된 <십자말풀이> 코너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되새기기에 제격이다. 너무 쉽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살짝 아쉽다. 조금 더 어려워져도 괜찮을 것 같다.

 

 

2012. 4. 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