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호 독방의 문제 동서 미스터리 북스 55
잭 푸트렐 지음, 김우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나는 안락의자 탐정을 좋아한다. 발로 뛰어다니면서 범인을 잡아내는 탐정도 매력적이지만, 앉은 자리에서 기묘한 사건을 단번에 풀어내는 안락의자 탐정에게는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이 있다(천재란 언제 보아도 매력적인 단어다). <13호 독방의 문제>를 읽게 된 것은 이 책에 안락의자 탐정이 나오기 때문이다. 오거스터스 S.F.X. 반 도젠 교수의 별명은 무려 '사고 기계'다. 그는 논리대로 풀어나가면 못 할 일이 없다고 말하는, 이성의 화신 같은 사람이다.

  <13호 독방의 문제>에는 표제작인 '13호 독방의 문제' 외에 12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대부분의 단편이 '범행 수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언뜻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가 생각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13호 독방의 문제', '수수께끼의 흉기', '정보 누설', '절단된 손가락', '완전한 알리바이'가 재미있었다. 루벤스 도난사건과 수정점술사, 갈색 윗옷은 조금 시시했다.

 * 13호 독방의 문제 : 가루치약과 5달러짜리 지폐 1장, 10달러짜리 지폐 2장과 잘 닦인 구두만으로 밖으로 나가기까지 7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철통 보안의 교도소에서 일주일만에 탈옥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 반 도젠 교수가 등장하는 첫 단편. "정신은 물질에 우선한다"는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교도소 탈옥을 해 보이는 반 도젠 교수의 솜씨가 재미있었다. 

 

* 사고 기계 조사에 나서다 : 3년 전, 노인으로 변장하여 한 소녀 앞에서 서류에 사인하는 장면을 연기하는 것을 의뢰받았던 한 배우의 기묘한 경험을 듣고 반 도젠 교수는 범죄가 얽혀 있음을 직감한다. 그러나 배우는 의뢰한 사람도, 연기했던 장소도 모르는 상태이고 아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난 날짜 뿐이다. 반 도젠 교수는 어떻게 범인을 찾아낼까? 

-> "범인이 왜 그랬는지"는 한눈에 파악이 가능했는데, 어떻게 그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을지는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반 도젠 교수의 솜씨를 보면서 감탄했다. 이번에는 해친슨 해치를 시키는 게 아니라 반 도젠 교수가 직접 조사에 나서는 게 흥미롭다. 서술자인 '나'가 뒤에 나왔으면 좋을텐데, 이번 단편 앞에만 조금 모습을 드러내고 사라져서 아쉽다. 

 

* 수수께끼의 흉기 : 바이올렛 던베리 양이 자택 방에서 사망한다. 앞에는 깨어진 유리잔이 있고, 입술에는 가볍게 맞은 듯한 흔적과 왼쪽 뺨에 작은 상처가 나 있다. '폐에 공기가 없어진' 것이 사망 원인이다. 경찰은 자살이라고 결론내리려 하지만, 얼마 후 부둣가에서 일하는 헨리 샘너가 똑같은 증상으로 사망한다. 둘을 살해한 방법은? 

-> 범인을 짐작하기란 역시 쉽다. 그런데 범행 수법이 궁금했다. 학교 다닐 때 배워서 다 아는 건데 실제로 범행에 적용해서 번뜩! 하고 떠오르지를 않는다. 

 

* 불꽃에 휩싸인 유령 : 해친슨 해치 기자는 유령이 나온다는 웨스턴 저택에 취재를 갔다가 불꽃에 휩싸인 유령을 목격한다. 유령의 정체는 무엇인가? 

-> 불꽃에 휩싸인 유령에 대해 반 도젠 교수가 설명할 때, 어쩐지 '바스커빌 가의 개'가 생각났다. 

 

* 정보 누설 : 금융자본가와 그의 속기사 이외에는 모르는 정보가 매번 다른 투자자에게 빠져나간다. 그러나 속기사는 주식시장이 열리기 30분 전에야 이 정보를 알고, 방을 나가거나 전화를 걸거나 하지도 않고 꼼짝않고 책상에 앉아있다. 어떻게 정보가 누설되는 것일까? 

-> 소거법을 이용해보면 범인이 누구인지는 명백하지만, 대체 어떻게 정보 누설이 가능한지 감이 안 와서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좋은 말로 포장하지만 금융자본가가 하는 일이 명백한 주가 조작이라 찜찜했는데, 마지막에 반 도젠 교수가 한 방 먹여줘서 시원했음! 

 

* 절단된 손가락 : 한 여인이 멀쩡한 손가락을 절단해달라며 찾아온다. 그녀가 손가락을 자르고 싶어한 이유는? 

-> 범행 수법이 아닌 동기에 초점이 맞춰진 작품. 익숙한 듯한 흐름인데도 재미있다. 

 

* 루벤스 도난사건 : 그림수집가에게 부탁해 그의 화랑에서 일주일 간 그림을 모사한 화가. 그 방에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그림수집가와 화가, 둘 뿐이었다. 그런데 그가 작품의 모사를 끝내고 화랑의 정리를 도우려던 때, 루벤스의 그림이 사라진 것이 발견된다! 

-> 이 작품은 범인은 물론 수법까지 짐작이 가능해서 좀 재미가 없었다. 

 

* 수정 점술사 : 한 사업가가 수정 점술가의 수정에서 자신이 자신의 서재에서 어떤 남자에게 살해되는 장면이 비치는 것을 목격한다. 사업가는 자신의 죽음을 막을 방법이 없겠느냐며 반 도젠 교수를 찾아오는데....... 

-> 이 작품도 좀 별로였다. 반 도젠 교수가 열심히 설명했지만, 그런 장치가 가능할까? 장치 설치비도 만만찮을 거 같은데, 동기가 아무래도 좀 약한 느낌이 든다. 

 

* 갈색 윗옷 : 은행에서 11만 달러를 훔친 도둑이 잡힌다. 그러나 돈을 숨긴 곳은 찾을 수 없고, 범인은 돈을 숨긴 곳을 알려주는 것을 빌미로 협상을 요구한다. 

-> "어디에 돈을 숨겼을까"가 포인트인데, 도둑이 부인에게도 아무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즐거워했다. 반 도젠 교수는 그래도 결국 돈을 숨긴 곳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 

 

* 사라진 목걸이 : 영국에서 유서깊은 진주목걸이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레이턴이라는 유력한 용의자의 뒤를 쫓아 콘웨이 주임경감이 레이턴과 같은 유람선을 타고 미국으로 온다. 그러나 유람선에 있는 시간동안 어디에서도 진주목걸이는 찾을 수가 없었다! 

-> 콘웨이 주임경감이 목걸이를 찾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재미있었다; 

 

* 완전한 알리바이 : 청년실업가 포레스트가 아파트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의 시신 곁에는 범행 시간과 범행 동기와 범인의 이름을 적은 쪽지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범인으로 지목된 체이스는 범행 시각인 새벽 2시에 치과의사의 치료를 받았다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제시한다. 

-> 끝까지 다 읽고 처음으로 돌아가서 읽으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된 건지 한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처음에 읽을 때는 그냥 대충 지나가게 되어서... 어쨌든 단서는 다 앞에 있고, 다잉메시지는 거짓말이 아니다. 트릭은 사실 엄청 단순하다. 그런데 그 트릭이 수반하는 위험 때문에 떠올리지 못하는 것 같다. 

 

* 빨강 실 : 밤마다 가스등을 켜놓고 자는 습관이 있는 젊은 주식중개인. 그러나 밀실인 방에서 가스등이 꺼지는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 어떻게 된 일일까?

->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인데, 반 도젠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 또 쉬운 일 같다. 가스등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으면 트릭을 풀기는 힘들 것 같다. ㅎㅎ

  반 도젠 교수는 참 이성적인 성격이라 '사고 기계'라는 별칭과 잘 어울린다. 그래서 (자주) 인간과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13호 독방의 문제>에서는 반 도젠 교수의 외모를 자주 묘사하는데, 왜소한 몸집, 작은 키, 주름살투성이의 얼굴, 넓은 이마와 부스스한 노란 머리카락 등의 묘사는 그를 탁월한 능력을 지닌 학자이자 탐정으로 보이게 하기보다는 기인으로 보이게 한다. 가만히 보면 독자의 뇌리에 틀어박히게 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기묘하게 그를 설정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2 더하기 2는 4이다. 이따금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언제나 반드시 그렇다."라는 게 반 도젠 교수의 입버릇인데) 이 말을 할 때의 반 도젠 교수나,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표현을 썼을 때 신경질을 내는 교수는 좀 귀엽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소위 말하는 '탐정의 조수' 역할인 해친슨 해치 기자와 반 도젠 교수와의 관계가 흥미로웠다. 보통 탐정에게 끌려다니거나 탐정을 경외하는 조수와 달리 이 둘은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다. 해치는 특종 기사를 위해서 도젠 교수를 따른다(도젠 교수의 능력에 감탄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해치에게는 기사가 우선! 이랄까). 그리고 도젠 교수는 이런저런 일을 조사할 때 해치를 부려먹는다. 이런 건조하면서 밀착된 관계도 재미있다. 

  생각보다 더 즐거웠다. 책이 그렇게 두껍지 않은데 생각보다 단편이 많이 들어 있어서 좋다. 하지만 번역은 좀 그렇다. 중간중간 문장이 꼬여서 몇 번 읽어야 문장 뜻을 알 수 있는 문장들이 보였다.  

 

2011.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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