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택섬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권일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소설을 읽는 건 <저택섬>이 두 번째다.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를 꽤 재미있게 읽어서 유머 미스터리라는 걸 조금 더 읽어볼까, 하고 읽게 된 책이다. 

  줄거리는 어디서 본 듯, 클리셰적이다. 나름대로 천재 건축가이자 유명회사 사장 주몬지 가즈오미는 은빛 육각형 모양의 별장을 섬에 지었다. 그런데 그 주몬지 가즈오미가 '떨어질 곳이라고는 없는' 별장에서 추락사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오봉 명절을 받아 사건이 벌어질 당시 별장에 있었던 관계자들(부인, 아들 3형제, 부사장, 정치인(과 정치인의 딸), 의사, 저택관리인) + 잡지 기자 + 미모의 여자 사립탐정 + 신출내기 형사가 모인다. 그들은 크루징도 하고 저택도 탐구하고 술도 마시고 나름 즐겁게 연휴를 보내지만 다음 날 옥상에서 시체를 발견하고, 몰아치는 태풍 때문에 섬은 육지와 연결이 끊긴다...... 

  그런데 이런 클리셰가 나름의 독특한 방법으로 조리되었다는 게 <저택섬>의 특이한 점이다. 독특한 방법이란 유머다. 예를 들어 육지와 연결이 끊겼을 때 형사의 상사는 "제발 아무 것도 하지 말고 현장 보존이나 해라"라고 말한다("너를 믿고 맡긴다!"가 아니라). 불안에 떨어야 할 섬은 의외로 태연하고, 형사는 살인사건보다는 연애사건에 관심이 있고 사립탐정은 살인사건보다 술에 관심이 있는 듯 하다.

  이 저택에 비밀장치가 있음을 눈치채기란 어렵지 않다. 제목도 그렇고, 일단 저택의 기묘함을 그 정도로 설명해 놓으면 모를 수가 없긴 하다. 다만 그 비밀장치가 어떤 비밀장치인지를 알아야할 텐데, 사방에서 터지는 유머가 시선을 끌면서 저택의 비밀을 짐작하기 어렵게 한다(그런데 그 유머에도 간간이 단서가 들어 있다는 점).

  <저택섬>이 진짜로 흥미로워지는 것은 저택의 비밀이 드러나면서부터다. 그런 건물이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은 뒤로 제쳐두고,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사건들 뿐만 아니라 저택이 존재한 이유와 비밀장치의 존재도 상당히 설득력 있게 풀어내서 흥미로웠다. 

 <저택섬>은 유머 미스터리라는 겉모습을 가지고 있으나 확실히 속은 트릭과 범인찾기에 중점을 두는 본격 미스터리다. 히가시가와 도쿠야는 유머인 척 단서를 여기저기 흩어놓는데, 심지어 198X년이라는 시간 배경도 하나의 복선이다(세토 대교가 완성되기 전이어야 의미있는 트릭이기 때문이다). 복선들이 회수되면서, 이 이야기가 의외로 꽉 짜여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저택의 비밀이 드러나기 전에는 다소 지루했다. 유머 미스터리의 '유머' 부분은 아무래도 나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웃으라고 써 놓은 부분인 건 알겠는데 오히려 김이 빠진다. 그게 계속되니 그만 지루해진다. 재미없는 농담을 계속 듣고 있으면 진력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일본에서 통용되는 농담이 한국에서 통용되리라는 법은 없으니, 그 차이일까). 유머는 별로였지만 만화적인 캐릭터는 꽤 좋았는데, 특히 순진하지만 독설가인 나나에가 좋았다.

  개인적으로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보다 <저택 섬>의 미스터리가 더 잘 만들어진 것 같다(장편과 단편 사이의 차이도 있겠지만). 그러나 <저택 섬>을 읽으면서는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처럼 즐겁지는 않았다. 이건 아무래도 캐릭터가 얼마나 취향에 부합하느냐의 문제 같다. 

  일단 끝까지 읽어야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기가 나는 조금 힘들었다. 그래서 별은 세 개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유머 미스터리를 더 읽을지는 모르겠다. 일단 그 유머가 나에겐 별로 유머가 아니라서. 

 

2011. 9. 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