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패트롤 - 타임 패트롤 시리즈 1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14
폴 앤더슨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시간 여행 좋아한다. 왠지 두근두근한 설정이다. 역사도 좋아한다. 옛날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는 게 재밌다. 그런 점에서 <타임 패트롤>은 내가 여러 모로 관심을 가질 만한 책이다. 그런데도 지금껏 이 책을 안 읽은 이유는 초반 30페이지에서 번번히 미끄러졌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초반 30페이지 즈음까지는 심드렁하니 읽었다. 그 이후로는 책장에서 눈을 못 떼고 읽(었다면 조금 거짓말이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좀이 쑤신 정도)었지만. 

  <타임 패트롤>은 단편집이다.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있고, 모두 맨스 에버라드라는 타임 패트롤 요원이 주인공이다. 그는 1954년에 타임 패트롤에 들어간 이후, 첫 사건에서 무임소요원이 되어 이 시간 저 시간으로 돌아다니면서 역사가 원래의 시간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감시하거나 실종된 요원들을 찾거나 하며 활약한다.  

 

  타임 패트롤 : 맨스 에버라드는 기술연구소에 지원하여 합격하고, 그 곳이 사실은 기술자가 아닌 타임 패트롤 요원을 모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 그는 교육을 받은 후 자신의 시간대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는데, 심심해서 옛 기록을 뒤지다가 1894년의 기묘한 소장품 얘기를 발견한다. 맨스는 친구 찰스 위트콤과 함께 소장품이 매장되었을 464년으로 점프하는데....... 

  -> 타임 패트롤 시리즈를 여는 단편. 맨스 에버라드가 아직 풋풋하다. 전체적인 역사 개변과 개인적인 시간 수정에 관한 이야기다. 첫 편이다 보니 설명하는 부분이 꽤 있지만 진행속도가 꽤 빨라서 지루하지는 않다. 맨스와 찰스가 1894년으로 잠시 점프했을 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립탐정이 이름만 빼놓고 언급되는데, 작가도 이 탐정 팬이구나 싶어서 보면서 좀 웃었다. 

 왕과 나 : 맨스는 한때 사랑했던 여인이자 친구 키이스 데니슨의 부인인 신시아로부터 키이스가 기원전 558년의 이란으로 갔다가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원전 542년으로 가서 키이스의 행방을 찾는다. 얀산의 페르시아 왕 키루스를 만난 맨스는 그가 키이스임을 알고 경악한다. 키이스는 신시아를 그리워하고, 맨스에게 자신을 20세기로 데려가 줄 것을 부탁하는데... 

  -> 앞편에 비해 맨스가 잔뜩 스트레스를 받아 퍽퍽한 성격이 된 느낌이다. 맨스가 삼각관계의 한 축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역사 개변 없이 어떻게 키이스를 20세기로 데려갈 것인가가 관건. 키이스가 B.C. 542년에 남으면 홀로 될 신시아가 욕심나면서도 키이스를 20세기로 데려올 아이디어를 내는 맨스가 멋있다. 그러나 돌아온 키이스가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 없다. 14년의 부인에서 8개월의 부인 곁으로 돌아온 키이스는 행복했을까?  

 지브롤터 폭포에서 : 톰 노무라는 펠리즈 아 라흐를 짝사랑한다. 톰과 펠리즈 둘이서 지브롤터 폭포를 기록하러 나간 어느 날, 펠리즈가 폭포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그녀가 소속된 패트롤 지부에 연락을 해 보지만 그녀는 복귀하지 않았다는 기록만 있다. 절망한 톰은 타임 호퍼와 함께 지브롤터 폭포를 향하는데...... 

  -> 역사 개변이 개입되지 않아서인지 그저 그랬던 이야기. 맨스 에버라드는 이 단편에서는 조연이다. 톰과 펠리즈의 사랑 이야기, 라고 하면 듣기 좋지만 펠리즈가 톰을 사랑하는 걸까에 대해서는 살짝 아리송하다. 타임 호퍼의 다양한 활용법 중 하나가 소개된 느낌이다. 

  사악한 게임 : 맨스 에버라드는 연구원 존 샌도벌과 함께 1280년의 아메리카 대륙에 간다. 원 왕조의 쿠빌라이 칸이 원정대를 아메리카로 보냈는데 그 원정대를 저지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둘은 원정대 대장인 톡타이를 겁주어 돌려보내려 하지만, 오히려 사로잡히고 만다. 

  -> 패트롤이 정의의 조직이 아니고 그저 이기적인(데이넬리아 인들이 존재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목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이 에피소드로 인해 세계관이 더 풍부해진 것 같다. 맨스와 샌도벌은 시간여행자가 개입된 역사개변을 바로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시간선을 유지하기 위해 역사에 개입한다는 데에 혼란을 느낀다.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더불어 미래의 어떤 것도 과거에서는 때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델렌다 에스트 : 휴가를 즐기던 맨스 에버라드는 친구인 피엣 반 사라와크에게 20세기의 뉴욕에서 같이 놀자고 제안한다. 1960년의 맨해튼으로 타임 호퍼를 맞추었지만, 타임 호퍼가 그들을 데려다 준 것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세계였다. 

  -> 역사 개변이 일어난 세계를 원래의 시간선으로 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맨스가 나온다. 현재와 아주 다른 느낌을 주는 켈트족의 세계가 신기하면서도 설득력이 있다. 맨스는 시간선을 돌리기 위해 고민하는데, 그건 정의감이 아니라 이기적인(자신이 아는 세계로 돌리고 싶다는) 욕망에 가깝다. 결국 맨스는 사악한 게임에 손을 담근 것 같다. 제목이 무슨 뜻인가 궁금했는데 'Carthago Delenda est'를 줄인 말이라고 한다. '카르타고는 멸망해야 한다'. 

 

  타임 패트롤 시리즈는 1950년대에 처음 스여져서 1990년대까지 이어진 시리즈라고 한다. 꽤 옛날 글인데도 옛날 티를 별로 느낄 수 없다. 그리고 시간 여행보다는 조금 더 큰 흐름, '역사'에 주목하고 있는 듯 하다. <타임 패트롤>에서의 시간은 매우 탄력적이고 유동적이다. 마치 거대한 강 같다고 할까. 물방울 몇 개를 흐트린다고 해서 강이 바뀌지는 않지만, 강의 흐름이나 모습이 달라지는 포인트는 존재한다. 

  다섯 편의 단편 모두 재미있었지만, 굳이 순서를 따지라면  왕과 나, 델렌다 에스트 > 사악한 게임 > 타임 패트롤 > 지브롤터 폭포에서  순이었다. '왕과 나'와 '델렌다 에스트'는 정말 좋았다(델렌다 에스트에 나오는 반 사라와크는 좀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작가의 역사감각과 지식이 대단하다. 역사 개변이라는 개념이 타임 패트롤 시리즈의 흥미를 더 돋우는 것 같다. 시리즈 뒷 이야기인 <바다의 별>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새>도 얼른 읽어야겠다. 

 

2011. 9. 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