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좀비 습격사건 휴먼앤북스 뉴에이지 문학선 3
구현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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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작품은, 다른 작품의 전에 위치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대학로 좀비 습격사건>이 없었다면 <에이전트 오렌지>는 아마도 지금과 같은 형태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로 좀비 습격사건>은 좀비, <에이전트 오렌지>는 초능력자로 소재가 각기 다르지만, 작가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도 흐름도 캐릭터도 비슷하다. 그러나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는 <에이전트 오렌지>와는 달리 <대학로 좀비 습격사건>은 매우 거칠고 툭툭 튀어나와 있다. 여러 이야기가 저마다 노는 이야기라고 할까. 원하는 것을 모두 넣다보니 이야기의 과잉과 비약이 이루어졌다.
 
  줄거리.
  연인들의 데이트코스, 대성리에 좀비가 나타났다는 글이 인터넷에서 인기를 끈다. 삼류 방송국 리포터와 카메라맨은 대성리 좀비를 촬영하러 갔다가 자신도 좀비가 되고, 그들이 촬영한 좀비 영상은 누군가 모를 사람에 의해 인터넷에 뜬다. 인터넷은 조작영상인가 아닌가로 뜨겁게 달궈지고 사이버수사대 조경감과 최경위는 좀비수사에 나선다.
  택배배달원 호준은 커피숍에서 일하는 연지를 짝사랑한다. 호준이 연지를 바래다 준 날 밤, 대학로에 좀비가 출몰하고 정부는 치명적 바이러스가 대학로에 유포되었다면서 인근지역을 모두 폐쇄하고 군인을 투입한다. 연지가 대학로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호준은 연지를 구하러 폐쇄지역에 잠입하려 하려 한다. 도중에 조경감과 최경위, 그리고 장기자와 최기자와 만나서 다섯이서 택배차를 타고 대학로에 잠입하는데......
 
  가독성이 좋다. 영화를 보는 듯 머리 속에 영상이 쭉 펼쳐진다. 재미도 있다. 그러나 이야기 전개에는 무리가 많다. 애초에 대학로에 좀비가 출현한 것이 대성리 좀비가 전염/전파되어서가 아니라면, 극 초반부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좀비를 일부러 대학로에 풀었다는 게 이 소설의 독특한 점이다. 좀비를 제어할 수단이 있다는 것도 특이하다. 그러나 덕분에 좀비에 대한 공포-잘 죽지도 않고 제어할 수도 없고 전염력이 빠르고 등등- 가 많이 없어졌고, 그래서 '굳이 좀비여야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다른 특징이라면, 극 초반에 좀비들 각각이 좀비가 된 사연을 설명한 것이다. 좀비도 인간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려 한 듯 한데, 이건 글 전체 흐름상 해가 된 것 같다. 인간 혹은 인간이었던 것을 망설임 없이 마구 죽이는 비인간적 행태는 대학로에서 좀비가 되지 않고 숨어있던 사람들이 군인들을 보고 자신을 구출한 줄 알고 나타나자 군인이 그들을 '잠재적 좀비'로 간주, 사살하는 데에서 이미 드러난다. 굳이 좀비들의 인생사를 들려주지 않아도.
 
  이런 것들을 포함하여, 글에 제대로 초점이 잡히지 않은 느낌이다. 시점도 이 사람 저 사람을 마구 왔다갔다 해서 산만하다.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건 호준과 연지의 러브스토리일까, 대학로 좀비를 물리치는 사람들의 호쾌한 액션일까, 힘 있는 자들의 논리(박사 vs. 정부)에 휘말려 희생되는 인간(좀비)들의 모습일까, 전쟁(대학로는 일종의 전쟁 상태다)의 비참함일까, 언론과 정부와 기업과 군의 어처구니없는 행태들일까?
 
  어쩌면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비꼬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호준이 폐쇄지역으로 잠입하기 전에 '대학로 희생자 가족 모임'에게 폐쇄지역에서 사람들을 구출해달라고 요구해야 하지 않냐고 말했더니 보상금을 노리는 사람 취급을 하며 쫓아내는 부분이 있다. 글 전체에서 가장 불쾌한 부분이었다. 보상금 노리고 거기서 농성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모두, 그걸 노리고 있는 걸까? 생명보험금을 노리고 가족을 살해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생명보험에 드는 사람이 모두 가족을 살해하는 건 아니다. 보상금을 노리고 거기 버틴 가족들이 있을지 몰라도, 가족의 안위와 생사가 걱정되어 버티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고 믿는다. 대학로에 가족과 친구와 연인을 놓아둔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대학로에 잠입하고 싶어하고 실제로 잠입하려 하는 이가 호준밖에 없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차라리 호준조차 없었다면 이해하기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결론은 '작은 악에게는 승리를 거뒀지만 큰 악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 같다. 이 결말은 <에이전트 오렌지>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에이전트 오렌지>의 프로토 타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이 거칠고 제멋대로인 작품을 싫어할 수 없는데, 그렇다고 좋은 점수를 주기도 뭣하다.  
 
* 참고로 <대학로 좀비 습격사건>의 장점은 속도, 액션, 가독성, 유쾌함 정도가 있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이 죽는다. 
  

 
2011.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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