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커가의 살인 - 셜록 홈스의 또 다른 이야기
아서 코난 도일 외 지음, 정태원 옮김 / 자음과모음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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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셜록 홈즈의 생명력은 매우 길다. 어렸을 때 읽은 셜록 홈즈와 지금 읽는 셜록 홈즈는 똑같이 매력적이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매력은 셜록 홈즈와 존 왓슨이라는 두 캐릭터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인지 수많은 프로와 아마추어가 셜록 홈즈 시리즈를 패러디했고 패스티슈했다.
 
  <베이커가의 살인>은 셜록 홈즈의 패스티슈집이다. '아서 코난 도일 외 지음'이라는 부분은 솔직히 속임수다. 머리말(추천글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까)을 쓴 걸 보통 단편집의 저자 중 하나로 분류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에 대해 쓴 머릿말은 셜록에 대한 그의 양가적 감정을 어렴풋이 엿보게 한다. 여러 사람이 말했듯 도일은 이 불후의 명탐정을 그다지 안 좋아하고 있었던 듯한 느낌을 준다.
 
  <베이커가의 살인>에서 수록된 11편의 단편들은 지루하거나 빠지는 것 없이 고루 재미있었다. 각자 자신의 마음에 각자의 셜록 홈즈가 있는 건지, 비슷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조금씩 다른 홈즈의 개성이 보인다. 이 개성들을 뛰어넘는 가장 큰 공통점을 꼽자면, 셜록 홈즈라는 인물에 대한 애정이 어떤 작품이든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홈즈는 이 단편집 속에에서 원작자 코난 도일의 손을 거쳤을 때보다 점잖고 매우 신사적이다. 상습적으로 마약을 하고 지루한 걸 싫어하고 신경질적이며 다른 건 아무래도 좋고 두뇌를 자극하는 범죄, 불가능해보이는 수수께끼를 탐닉하는 괴팍한 탐정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아무리 재미있다 해도 역시 패러디는 원작과는 다르다.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를 싫어했어도 셜록 홈즈를 가장 셜록 홈즈답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코난 도일인 듯하다.
 
  다시 말하지만, 셜록 홈즈가 좀 점잖아졌다고 이야기도 지루해졌다는 소리는 아니다. 단편들은 하나같이 흥미진진하다. 브람 스토커가 나오는 단편, 투탕카멘 묘가 나오는 단편 등 꽤 재미있는 접목을 시킨 단편들도 있다. 이런 게 패스티슈의 묘미일 거다. 그러나 11편의 단편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홈즈를 태운 마차>였다. 특이하게도 소설의 화자가 존 왓슨 박사가 아니라, 마차를 모는 마부이다. 다른 단편들은 원작처럼 다들 왓슨 박사를 화자로 내세우고 있으니 이 단편은 확실히 독특하고 그만큼 눈에 띈다. 화자인 마부의 개성이 생생해서 읽는 내내 무척 신이 났다. 다른 단편의 주변등장인물은 이 마부 정도의 생생함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약간 전형적이랄까).
 
  소설의 문제가 아니라 편집 때문에 재미가 반감된 작품이 하나 있었다. 이 비운의 작품은 <체셔 치즈 사건>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사건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가 있는데, 책에서는 이 시를 영문으로 수록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 시가 일종의 암호를 담고 있다는 거다. 한글로 되어 있는 시를 신나게 읽고 수수께끼 풀이 부분에서 Y나 O가 나오니 김이 피시식 샌 건 어쩔 수 없다. 셜록 홈즈의 페스티쉬작품이기는 하나 어쨌든 추리소설이다. 단서를 주지 않고 사건을 해결하라니 이상하다.
 
  셜록 홈즈의 존재감이 가장 약했던 단편은 개인적으로 <암흑의 황금>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하게 부각된 것은 등장인물인 애슐리 경 내외로, 그 다음으로 존재감을 가진 건 존 왓슨 박사다.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는 존 왓슨 박사를 아프리카라는 무대로 끌어내기 위해 있었다고 할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하다. 그래서 좀 아쉬웠다.
 
  <주 경계의 민들레 사건>과 <놀라운 벌레>는 작은 단서로 사건을 해결하는 단편들인데, 퍼즐 맞추기가 재미있다. 나라를 구한다거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스케일 큰 사건보다는 아기자기한 규모의 사건(음 별 거 아닌 사건으로 보이는데 좀 이상한 구석이 있네? 홈즈가 보니 이런 비밀이 있었네? 이런 류)이 내 취향에 더 맞는 것 같다.
 
  이렇게 11편의 셜록 홈즈 패스티슈 단편을 보니 원작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베이커가의 살인> 뒷부분에 달려 있는 <셜록 홈즈 탄생 100년>에서 말했듯, 코난 도일의 플롯 작성 능력을 비꼬는 작품이 많지만 (최근에 읽은 '점성술 살인사건'에도 그런 부분이 있었다), 코난 도일의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플롯이 아니라 셜록 홈즈가 셜록 홈즈라는 것 자체다. 
  
   


2011.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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