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세트 - 전6권 아사노 아쓰코 장편소설 13
아사노 아쓰코 지음, 양억관 옮김 / 해냄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천재 투수 하라다 다쿠미가 주변의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여러 사건을 겪고 성장한다는 점에서 <배터리>는 성장소설이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성장하는 것은 하라다 다쿠미 뿐이 아니다. 다쿠미의 공을 받는 투수인 나가쿠라 고, 다쿠미의 동생 세하, 주장 가이온지, 이웃 지역 천재 타자인 가도와키, 가도와키의 친구 미즈가키, 그리고 주변의 어른들까지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이 보인다. 일방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인물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더구나 맑고 밝고 아름다운 변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끝까지 변하지 않은 선배들도 있고, 일반적으로 보기에는 "어라 저게 성장인가 퇴보지"라는 느낌이 드는 변화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맑고 밝고 아름다운 것만이 가득차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의 마음도 맑고 밝고 아름다운 것 뿐만이 아니라 추악하고 더러운 것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외려 그 점에서 <배터리>를 현실적이라고 느낄 것이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사람은 관계 속에서 변해간다는 것이다. 자신의 재능을 믿는 까칠한 소년 다쿠미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알고, 주변 사람들에게 화를 내지 않고 받아주던 소년 고가 다쿠미의 재능을 질투하고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완벽한 엘리트 코스를 달리던 가도와키가 어른들의 말을 어기고 시합을 준비했듯이. 

 

  <배터리>는 야구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야구를 잘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재능도 필요하지만 팀원들 사이에 관계도 중요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배터리>의 특이한 점은, 공식적인 시합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오는 시합은 연습시합 뿐이며, 그것도 1회부터 9회까지 좌르륵 스코어를 알려주지 않는다. 공식 시합에서는 승패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위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시합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보다는 시합을 이겼는지 졌는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배터리>에서 공식 시합이 나오지 않은 것은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그 과정이 중요한 '성장 소설'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책 속에서 공식 시합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로는, <배터리>의 줄거리를 따르자면, 야구부 팀원간의 마찰로 인한 활동정지 때문이지만. 나는 작가가 '과정'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부러 넣지 않은 게 아닐까 싶다. 6권의 마지막 장면을 봐도 그렇고.) 

 

  <배터리>의 탁월한 점은 수많은 등장인물 중에서 딱히 누구를 편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등장인물은 각자의 가치관이 있지만 그 가치관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양 쪽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저런 사람과 사건에 치이며 긍정적인 면도 부정적인 면도 내보인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하라다 다쿠미를 보면, 2권에서 불합리한 감독과 야구부 선배와 학교에 대항하는 모습은 마치 영웅처럼 보여서 응원해주고 싶어지지만, 뒷권에서 '난 야구와 나만 있으면 돼'라는 식의 행동은 간혹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친구가 같은 모습을 보며도 상황에 따라 때로는 너무 좋고 때로는 질색하게 되는데- 나는 <배터리>에서 사람 성격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그런 부분이 참 좋았다. 

 

  내가 아무리 잘났어도 혼자 살 수 없고, 집단을 중요시하다가는 개인이 질식해 죽어버리는 그런 세상의 미묘한 관계가 반영되어 있어서, <배터리>를 읽으면서 그만큼 여러 생각을 했다. 야구부의 활동은 종종(아니, 자주) 학교의 사정이라던가 선생의 체면이라던가 그런 것으로 인해서 중지된다. 이것은 옳은가? 그렇다면 사람들의 심기가 불편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개인이 그 말과 행동을 고수하는 것은 옳은가? 여러 생각을 하게 하면서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읽어나갈 수 있는 점이 <배터리>의 능력인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권장도서이지만 그 외의 어떤 사람이 읽어도 나름의 재미를 느낄 수 있고 나름의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배터리>를 읽으면서 옛날 학교생활을 떠올렸고 지금 내가 꾸리고 있는 인간관계를 생각했다. 그런 여러 생각을 하며 읽어가다보니 6권이라는 만만치않은 권수인데도 금방 마지막 장을 내보였다. 

 

  우연히 집어든 소설이지만, 읽으면서 가슴이 따듯해졌다.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멀지 않은 시간에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보고 싶다.



2009.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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