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시간의 딸 동서 미스터리 북스 48
조세핀 테이 지음, 문용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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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앨런 글랜트 경감은 범인을 쫓다가 맨홀에 빠져서 침대 신세를 지게 된다. 글랜트 경감은 심심하던 차에 플랜태저넷 왕가의 마지막 왕 리처드 3세의 초상화를 보고 그의 악명에 의문을 느껴 침대 신세를 지는 동안 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그러나 증거와 증인들은 모두 "리처드 3세는 왕위를 위해 조카를 살해한 악한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에서 온 역사학도 브렌트 캘러다인의 도움을 받아서 글랜트 경감은 진실에 한 발자국씩 다가간다(브렌트 캘러다인은 조수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글랜트 경감의 동료, 동등한 위치에 있는 협조자,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믿을만한 역사책은 모두 리처드 3세를 악한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 역사책 사이에서도 묘한 간극이 발견된다. 하나씩 하나씩 진짜 조각을 찾는데, 그 중에는 가설을 위협하는 반대증거들도 섞여 있다. 논리적 추론으로 위기를 넘겨가며 도달한 것은 리처드 3세의 악명이 '토니판디'라는 확실한 증거들이다. 그리고 무려 그것들은 몇 세기 전부터 밝혀진 '사실'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사실이다. 

 ( 이 책에는 몇 가지 '토니판디'가 나오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고 증거도 증인도 없는 일이 마치 사실인 양 세상에 퍼지는 것은 의외로 쉬운 것 같다. 하지만 진상이 들이밀어지면 사람들은 화를 낼 거라는 로라의 조언은 참으로 적절하다. 적절해서 씁쓸하다. ) 

  방금 일어난 사건이나 몇 년 전의 사건을 대상으로 하는 추리소설을 읽어봤지만, 몇 백 년 전의 사건, 이미 역사가 되어버린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추리소설은 <시간은 진리의 딸>이 처음이다. 영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추리소설의 처음에 나온 '앙드레 모로와 [영국사]에서 발췌'한 역사 한 토막이 나왔을 때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니까, 나는 <진리는 시간의 딸>이라는 책의 배경(?)과도 같은 영국사 속의 리처드 3세를 모른다. 그저 어렴풋이 조선시대의 광해군 같은 존재였나 하는 생각을 할 뿐. 

  그런데 영국 표준 교과서에도 떡하니 적혀 있는 오류라니, <진리는 시간의 딸>은 역사는 사실에 기반하여 쓰여진 것이라는 통념을 화끈하게 뒤집는다. 전해지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믿는 것은 위험하고, 사람의 명성에 기반하여 이야기의 사실을 가늠하는 것도 위험하다는 것을 이 소설은 은근히 보여준다. 결국은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하라는 것 같다. 자신의 눈을 믿으라는. 현대라고 헨리 7세와 리처드 3세의 이야기가 없으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진리는 시간의 딸>은 독특하고 매력적인 추리소설이다. 영국사를 잘 알았다면 더욱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었을 거 같다. 역사 사이에 미묘하게 뒤틀어진 부분을 집어 파헤치다니. 색다른 재미와 함께 신선한 시각도 가지고 가는 느낌이다.

 

  "어떻소?"

  45초가 지난 다음 그가 말했다.

  "이상한데요." 그녀가 말했다. "한참 바라보고 있으니까 굉장히 좋은 얼굴이 되어 오는군요. 그렇지 않아요?"

  - <진리는 시간의 딸(조세핀 테이, 동서문화사)> p.250 발췌 

 

2009.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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