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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월드 - 떠도는 우주기지의 전사들
닐 게이먼 외 지음, 이원형 옮김 / 지양어린이 / 2009년 4월
평점 :
조금 더 재미있을 수 있엇는데, 하고 아쉬움이 남는 책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인터월드>다. <인터월드>는 기하학이니 공식이니 하는 지식이 툭툭 튀어나오는 SF이며, 마녀가 사람에게 최면술을 걸고 사람을 솥에서 삶아 동력을 만들어내는 판타지이며, 평범한 조이 하커가 성장하는 성장소설이다. 배경이나 설정을 빼 놓고 보면, <인터월드>는 지극히 익숙한 구도를 가지고 있다.
1. 주인공 소년은 좀 덜 떨어졌다.
2. 주인공 소년은 스스로는 모르고 있지만 사실은 가장 뛰어난 힘의 소유자다.
3. 주인공 소년은 악당들의 함정에 빠지지만 조력자가 구출해준다.
4. 세계(나라, 대륙, 우주, 차원, 어찌되었건 그런 것들)의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들이 있다.
5. 주인공 소년은 세계를 구하기 위해 동료들과 힘을 합친다.
6. 주인공 소년은 성장한다.
7. 주인공 소년은 결국 악을 물리친다(?).
따라서 <인터월드>의 줄거리 자체는 그다지 특이하지 않다. <인터월드>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것은 '워킹'이라고 부르는 조이들의 특수한 능력과, 수많은 조이가 조이의 동료라는 것- 다시 말해서 수많은 나 자신과 힘을 합쳐서 싸운다는 것, 그리고 아주 독특한 배경-수많은 지구와 마법/과학 사이의 대치, 인비트윈이나 노우웨어댓올 같은 신기한 공간-이다.
이 배경은 신기한 만큼 생소하다. 그리하여 초반 상당부분이 배경 묘사와 상황 설명으로 들어가는데, 덕분에 초반부가 좀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인터월드 : 떠도는 우주기지의 전사들>이 1권으로 완결이 나는 게 아닌, 시리즈물인가 생각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책은 거의 절반을 배경 묘사와 설명에 할애한다. 다루는 배경이 거대한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한 권 완결이라고 알고서 이 책을 집어든다면 김이 빠질 수도 있겠다. "진짜 모험은 다음 편에 계속!!!"이라는 글이 마지막에 붙어있을 것 같은 결말이라서. 하지만 이것이 애초에 TV모험물시리즈로 기획되었던 이야기라는 걸 알고 나니 납득이 간다. 영상이면 환상적인 배경을 설명할 필요가 없어질 테고(보여주면 되니까), TV시리즈 물이라면 이 소설은 한 1~3화 까지의 내용이라고 생각되니까.
또 아쉬운 것은 <인터월드>의 번역이다. 워킹 같은 용어나 인비트윈이나 노우웨어댓올 같은 지명(?)은 고유명사가 아닌, 특징을 설명하는 단어를 고스란히 따 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어판에서는 뜻이 아닌 음절을 따 와서 마치 고유명사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언어유희는 역자 주를 통하여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역자 주는 가끔씩 그다지 필요 없는, 그러니까 내가 직접 추론해도 될 부분까지 튀어나와서 설명을 해 준다. 갑자기 다른 사람이 툭툭 치고 들어와서 "그건 이런 뜻이야"라고 말을 거는 느낌이라서 읽는 도중 몇 번이나 맥락이 끊겼다.
만약 <인터월드>가 시리즈물이고 또 내가 시리즈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저런 박한 별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고, 충분히 재미있는 책이었다(번역의 문제가 걸리긴 하지만). 문제는 나는 이 책이 단권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읽으면서 배경은 거대한데 스토리가 너무 약하다고 생각했고, 책을 덮고 나서 "아악-- 맛뵈기만 하고 끝이야?!"라고 소리쳤다는 거다.
수많은 조이들이 마법을 숭배하는 헥스와 과학을 숭배하는 바이너리의 치열한 접전을 뚫고 '중립세계'를 늘려가며 세계의 평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그리고 조이는 삶아지거나 냉동되어서 헥스와 바이너리의 배를 움직이는 동력화가 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 인터월드가 헥스와 바이너리에게 걸리지는 않을지, 여러가지 궁금증이 남은 채로 <인터월드>가 끝났다. 끝 부분에서도 아직 어리숙하기만 한 조이는 자신의 거대한 가능성을 쑥쑥 키워서 한 명의 훌륭한 전사가 될 수 있을까. <인터월드>가 끝났음에도 어쩐지 위태위태하던데.
2009. 5.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