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시골로 이사한 노부부 에밀과 쥘리에트. 오후 네 시만 되면 이웃에 사는 베르나르댕 씨가 방문을 한다. 방문한 것은 그이지만 그는 불쾌한 얼굴로 '네' 혹은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하루, 이틀, 사흘이 가도록 그는 계속 오후 네 시 정각에 노부부의 집에 찾아온다. 주인공(화자)인 에밀은 미쳐버릴 지경이지만 '몸에 배인 예의' 때문에 문을 열어주고, 그가 안 찾아오게 만들려고 갖은 애를 쓰는데 일이 잘 되지가 않는다. 

  얼핏 웃음이 나는 상황이다. 오후 네 시면 칼같이 와서 불퉁한 표정으로 소파를 차지하고 두 시간 후 사라지는 괴짜인 이웃, 그리고 그 이웃 때문에 신경과민 상태가 된 노부부라니. 하지만 정말 싫은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의례적인 대화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에밀과 쥘리에트의 상황이 결코 웃어넘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나도 상대도 원하지 않는데 마주보고 시간을 보내야 하다니, 그것도 내 쪽에서 억지로 대화를 이어가면서, 다음에는 다시 안 보기를 바라지만 계속 보게 되고...... 에밀은 '예의를 주입받은' 60여년 때문에 베르나르댕 씨에게 문을 열어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괴로운데도, 어째서 예의가 필요한가? 그렇게 예의에 대해 한참 생각이 깊어질 무렵, 반전이 일어난다. 에밀은 예의를 '때려 치우고' 꺼지라고 베르나르댕 씨에게 소리친다. 그리고 베르나르댕 씨는 그 날부터 부부의 집에 오지 않는다. 에밀은 자신이 강하게 나감으로써 불쾌한 침입자를 물리쳤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글쎄다. 에밀이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에밀이 그 전에는 베르나르댕 씨에게 "안 왔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건넨 적이 결코 없다는 것이다(그는 완곡하게 돌려서 표현하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오지 말라고 한 적이 결코 없다). 에밀이 처음으로 "오지 말라"고 했을 때부터 베르나르댕 씨는 오지 않았다. 베르나르댕 씨는 그저 에밀과 쥘리에트 부부가 그의 방문을 '정말로 싫어하고 있다'고는 느끼지 못했던 건 아닐까? 

  시작부터 끝까지 <오후 네 시>는 에밀의 시선과 에밀의 생각과 에밀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그래서 나는 에밀이 본 베르나르댕 씨를 볼 수 있을 뿐이다. 에밀은 베르나르댕 씨를 판단하고, 그에 따라서 행동한다. 에밀이 보는 베르나르댕 씨는 끔찍한 인간일 뿐이다. 하지만 한 가지 실마리(베르나르댕 씨에게 오지 말라고 에밀이 말하니 베르나르댕 씨는 오지 않았다)를 잡고 나자, 나는 문득 베르나르댕 씨가 그렇게 '이상한' 인물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그는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 대하기 힘든 사람이다. 하지만 그에 반해서 에밀은 어떤가? 그는 너무나도 예의에 집착하는 사람이지만- 한 번 예의를 던져버리자 살인까지도 태연히 저지른다. 그의 판단 근거는 너무나도 빈약하며, 에밀이 이 자신의 범죄를 저지를 때 합리화하는 근거로 사용했던 '베르나르댕 씨의 허무'가 정말로 베르나르댕 씨의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왜냐면 에밀과 베르나르댕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짜 대화'는 한 마디도 안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예의라는 수단을 통해 사람들을 대하고 자신의 생각을 기반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해석하는데, 그것이 '진짜 그 사람'인지는 알 수가 없다(당연하다, 그 사람의 속에 들어가서 살펴볼 방법이 없으니까). 내가 그를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대화를 나누는 거지만, 에밀과 베르나르댕 씨가 나누는 것처럼 껍데기뿐인 대화가 얼마나 많은가. 예의를 뒤집어썼기 때문에 소통은 더욱 불명확해지지 않았나?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가 진짜 저기 서 있는 그와 얼마나 비슷할까? 이 책은 굉장히 얇고, 어찌 보면 단순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진짜 이야기는 책을 덮고 나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2009.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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