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가족 - 과레스키 가족일기
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김운찬 옮김 / 부키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책 날개의 등장인물 소개 인용)
 
1. 조반니노 : 유명한 소설가이나 집안에서는 직업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당하는 불쌍한 아버지. 가족들의 무시에 좌절하면서도 cooooool하고자 애쓰는 이 시대 보통 아버지.
 
2.  마르게리타 : 가끔 슬픈 상상으로 아이들의 눈물을 빼고 꿈 때문에 절망하기도 하는, 몽상적이고 현실 감각이 없지만 대략 착한 심성의 어머니.
 
3. 알레르티노 : 자기만의 고유한 세계를 튼튼하게 구축하고 있는 '엣지'한 소년. 아버지가 쓴 책을 면전에서 '별로'라고 평가하는, 조반니노에겐 무서운 관찰자이자 경쟁자.
 
4. 파시오나리아 : 몸이 약하다는 걸 무기로 삼는, 영리하고 깜찍하고 '뾰족한'소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엄마, 아빠, 또는 오빠와 동맹을 맺기도 하는 정치가이자 전략가.

  얼마 전, <까칠한 가족>을 함께 읽은 지인들과 작은 토론이 있었다. 발단은 나의 한 마디였다.

  "<까칠한 가족>에서 제일 골때리는 것은 파시오나리아야."

  그러자 지인A가 말했다.

  "난 마르게리타라고 생각해."

  "왜?"

  "파시오나리아는 부모의 성격을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면 되지만, 대체 마르게리타는 어디서 그런 성격이 온 걸까?"

  지인 B가 덧붙였다.

  "마르게리타가 맞아. '꿈의 포로'를 보고 나는 정말 웃다가 죽을 뻔 했단 말이야."

  나는 파시오나리아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으므로 쉽게 동의를 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토론이 일어났다. 이런 류의 토론이 그렇듯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잠정적으로 '제일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마르게리타라고 결정이 났다.

  오늘, 비가 왔다. 비가 오면 우울해지기 쉽다. 나는 이런 날에는 유쾌한 책들을 꺼내서 보곤 하는데, 마침 며칠 전의 토론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까칠한 가족>을 펴들었다.

  <까칠한 가족>은 조반니노(아빠), 마르게리타(엄마), 알베르티노(아들), 파시오나리아(딸) 넷으로 이루어진 가족에게 일어난 짤막한 에피소드를 엮어낸 것이다. 배경은 이탈리아, 그리고 꽤 옛날(저자는 1968년에 사망했다)의 이야기라서 가끔 생소해 보이는 풍경도 있지만 그런 부분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저자의 수려한 글솜씨(이 경우에는 유쾌한 글솜씨라고 해야 하는 걸까)와 등장인물들의 강력한 개성(나로서는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사고방식)이 자칫 평범할 수 있는 소재를 배꼽이 튀어나가서 리듬체조를 하다가 다시 굴러들어올 정도의 웃음으로 조리해 낸다. 이 가족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고, 당연한 것을 비틀고, 낯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논리의 비약에 언어의 유희에 초점 흐리기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평범한 사건, 아니 평범할 수도 있었던 사건을 거대한 하나의 에피소드로 바꾸어놓는다. 그들은 편을 가르고 전쟁(?)을 하고 말다툼을 하지만 언제나 사이좋다.

  <까칠한 가족>을 읽고 나면 잠시 고민에 빠진다. 이들 중 가장 독특한 사람은 누굴까? 나는 늘 파시오나리아라고 생각했지만(대체로 서평도 파시오나리아의 개성을 높이 사고 있고), 얼마 전의 토론 때문인지 마르게리타가 새롭게 보인다. 음, 확실히 범상치 않다. ...어쩌면 최강자는 마르게리타일지도? 정말이지 읽어도 읽어도 새로운 유쾌함이 흘러나오는 책이다.


2009.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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