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조지를 죽였는가 - 양들의, 양들에 의한, 양들을 위한 미스터리 심리 수사극
레오니 슈반 지음, 김정민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어느 날 양들이 잠에서 깨어 풀을 뜯으러 나가보니 들판에는 양치기 조지가 삽에 맞아 내장을 쏟은 채 평온한 얼굴로 죽어 있었다. 양들은 조지가 살해당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자신들을 잘 돌봐준 좋은 양치기인 조지를 죽인 인간을 찾아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들은 양이다. 도대체 어떻게 양치기 조지를 죽인 인간(혹은 인간들)을 찾아낸단 말인가? 혹 찾아낸다 하더라도 어떤 방법으로 인간들에게 알릴까? 

  <누가 조지를 죽였는가>는 사실 조지의 죽음보다는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특이한(?) 양들 때문에 시선이 간다. 동물이 탐정이 되어 범인을 찾는 것은 일본추리소설작가인 아카가와 지로의 <얼룩고양이 홈즈>시리즈에서 보긴 했지만, 고양이 홈즈의 파트너는 가타야마 형사이다. 말하자면 얼룩고양이 홈즈가 추리를 하면(이랄까 범인을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찾아내고 알려주면) 가타야마 형사가 그것을 받아서 행동에 옮기는 식이다. 하지만 <누가 조지를 죽였는가>의 양떼에게 있는 것은 양(그러니까 조지를 양치기로 두고 있는 한 무리의 양들) 뿐이다. 

  이게 또 만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양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조지의 양들은 보통의 양과는 틀리지만, 그렇다고 양이 아닐 정도로 틀리지 않다. 그들은 양의 프레임 안에서 사건을 수사하고, 양의 프레임 안에서 사건을 해석하며, 양의 프레임 안에서 행동한다. 그래서 그들의 사건수사는 조금쯤 혼잡하고 조각조각 나 있다. 그들은 양이니까. 말하자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화자인 여섯 살 옥희가 어머니와 아저씨의 행동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그러나 독자는 눈치를 채는) 그런 분위기랄까. 양들은 '정의'를 외치지만 실제로 '정의'가 무엇일까는 잘 모른다. 어렴풋이 아는 정도다. 

  도대체 어떻게 양이 수사를 한단 말야, 하고 투덜투덜하면서도 어쩐지 시선을 뗄 수 없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양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조지에 대한 의리이다. "누구도 우리 양치기를 그렇게 빼앗아갈 수는 없어!"라는 강한 신념으로 뭉친 조지의 양들은 조직을 짜서 각자의 맡은 부분을 수사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분업은 역시 딱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양이니까. 하지만 양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들은 가끔 너무 똑똑하다. 

  저자는 후기에서 "양들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처럼 멍청하기만 한 동물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고 이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 사실 양을 가까이서 본 적도 없는 나는 그런 것은 잘 모르겠고- 그래서 조지의 양들이 특별한 이유는 아마도 조지 때문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지의 양 중에서 제일 똑똑한 양의 이름은 미스 마플이고 도중에 양떼에 합류한, 한때 서커스에서 일했던 검은 양의 이름은 오델로다. 그리고 절벽 위에 서 있는- 하늘을 좋아하는 양의 이름인 조라는 조라 닐 허스톤(<그들의 눈은 신을 바라보고 있었다>를 쓴 미국 흑인작가. 조지의 양 조라의 얼굴이 검은 것과 은근히 매치가 된다.)과 비슷하고 지도자 리치필드 경의 쌍둥이 양이자 양떼에서 벗어나 세상을 방랑하는 양의 이름은 멜모트인데 이 이름은 어쩐지 찰스 로버트 매튜린의 <유랑자 멜모트>와 닮았다. 이 이름들은 저자 레오니 슈반이 마음먹고 정한 것일테지만, 한편으로는 소설 속의 조지가 양들의 특성을 따서 이런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조지는 양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또 양들에게 유럽을 보내주려 할 정도로 자신의 양들을 아꼈다. 이 상황에서 양들은 EQ와 IQ가 쑥쑥 자라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양들은 풀도 먹고 마을도 내려가고 다른 양과 대화도 나누고 인간들을 관찰하기도 하고 하면서 정보를 모은다. 그에 따라 책이 시작할 때는 그저 평범한 양치기로 보이던 조지는 평범하지 않은 양치기의 모습이 된다. 양들에게 좋은 양치기였던 조지는 비밀이 있는 남자였고, 조지와 양들이 살던 언덕 근처 마을 사람들에도 비밀이 있었고, 양들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의 위치가 바뀌기도 하고, 정신없이 용의자들이 바뀌어서 결국엔 누가 범인인지 모를 지경에 이른다. 

  머리 속이 뱅뱅 고여서 정신줄로 겹매듭을 지은 것 같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범인을 알 수 있을까? 읽으면 읽을 수록 드는 생각은 "그래서 범인이 누구라는 거야? 쟤야? 얘야? 누구야?"이다. 이 때쯤 되면 나는 <누가 조지를 죽였는가>에서 탐정 역을 맡고 있는 것이 양떼라는 것을 잊어버릴 즈음이다. 양의 탈을 쓴 사람(조금 사고방식이 특이한?)이라고 여기게 된달까. 그리고 그 시점에서 이미 나는 저자의 계략에 말려들었던 것이다. 양떼는 양떼이지 사람이 아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을 중요하게 여길 수 있고 중요한 것을 터무니없이 작게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다. 조지를 죽인 범인이 밝혀지면 허어, 하고 김이 빠진다. 허탈한 마음으로 생각해보면 처음에 주어졌던 중요한 단서 하나가 양들의 시선 속에서 아주 형편없이 취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가 조지를 죽였는가>의 결말은 아주 납득이 안 되는 결말은 아니다. 하지만 척 들어 납득이 되는 결말도 아니다. 어쩐지 허망하다. 범인이 밝혀지는 극적인 과정이 허술한 느낌이다. 미스 마플의 열정적인 추리(삽->채소밭->조지가 저항했다->범인은 XX다)는 양답지만, 그 전에 이어져 온 흐름과는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그 추리의 계기가 미스 마플의 꿈이어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양들은 사랑스러웠고, 양들의 그 평온한 감각과 살인사건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이상한 부조화는 강렬했고, 우왕좌왕하는 양들의 추리와 그들이 본 인간들은 재미있으면서도 우스꽝스러웠다 하나씩 끌려나오는 단서들은 신기했으며 평범해 보이는 것 뒤에는 그다지 평범하지 않은 것들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았고- 어떻게든 정의(?)는 승리한다는 것을 봤다. 조지의 양들은 이제 유럽으로 갈 테고, 그리고 거기에서 많은 것을 보고 맛있는 사과(언덕에 딱 한 그루 있는 너무너무 신 작은 사과가 아닌, 진짜 사과)를 실컷 먹게 될 것이다. 가끔은 조지를 기억도 하겠지. 양들이 하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조지가 우리랑 같이 가야 했는데. 맞는 말이다. 

2009. 5. 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