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곡선
고사카이 후보쿠 지음, 홍성필 옮김 / 파라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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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곡선 :

  딱 봐서 뭘 가리키는 단어인지 알 수가 없다. 연애에 곡선이 있다고? 가만 생각하니 연애란 시작할 때부터 점점 높아지다가 어느 순간 사그라드니 그걸 그려놓으면 곡선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니까 이 책은 연애소설, 혹은 풍자극, 그런 류의 글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뒤쪽의 설명을 보니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선구자, 고사카이 후보쿠의 단편소설집 : 의학과 생리학, 괴기, 깜짝 놀랄 반전의 기막힌 조합!'

  그러니까 이책이 미스터리 단편 소설집이란다. <연애곡선> 외 12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247p라는 두껍지 않은 책 속에 13편의 단편이 있으니, 단순계산을 해 보면 한 편 당 약 19페이지인 셈이다. 이렇게 짧은데 대체 어떤 이야기들이 이어질까. 두근두근거리면서 책을 폈다.

  깔끔하다. 괴상하고 무섭고 이상하다. 그리고 재미있다.

  짧은 단편들인데도 군더더기없이 쫙 빠져 있는 게, 다른 데 한 눈 팔 필요 없이 결말로 달려가게 만든다.

  각 단편마다 반전이 마련되어 있다. 헉 하고 숨을 들이킨 반전이 있는가 하면 읽으면서 짐작하고 있었기에 덤덤하게 넘어간 것도 있었다. 반전을 짐작하든 짐작하지 못하든, 모두 끝까지 흥미진진해 하면서 읽었다(아, 혈우병 한 편 빼고.).

  '시체양초' 한 편을 빼고는 모두 의학이 어떻게든 엮여 있는데, 의학이란 그저 소재일 뿐이다. 읽으면서 와 닿는 것은 의학의 오묘함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불순물들이다. 광기, 신념, 복수, 욕망, 질투, 장난, 집착, 그런 것들 말이다. 작가인 고사카이 후보쿠는 1890년에 태어났으니 100년 하고도 조금 더 전의 사람이다. 그런데도 13편의 단편은 읽으면서 등줄기가 움찔 떨리게 한다. 세월의 흐름을 비켜가지 못하고 옛날 얘기구나 곱씹게 되는 부분도 물론 있다. 하지만 단편 개개에서 보이는 인간들의 모습은, <연애곡선>의 사건이 오늘 일어났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인간이 품는 감정이야 100년 전이든 지금이든 100년 후든 그것이 그것 아니겠는가.

  개인적으로 가장 소름돋았던 것은 '얼간이의 복수'와 '연애곡선'이다. '연애곡선'은 반전을 짐작하지 못해서 알고서 섬찟했고 '얼간이의 복수'는 반전을 짐작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떨렸다. 별 일 아니라는 듯 이야기를 끌어가는 화자의 말투 때문에 더 소름돋았다. 가만 보면 그렇게 덤덤히 말할 일이 아닌데 화자는 그냥 '옆집 개가 짖었다.'고 말하는 듯이 슬렁슬렁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사실 그것은 <연애곡선>이라는 책에 담긴 열 세 편의 단편을 꿰뚫은 공통점이다. 흘러나오는 끈적한 감정과 딱딱 끊어주는 서술이 얽혀서 읽을 때는 꿀쩍꿀쩍하게 빠져들게 하고 나올 때는 확 돌아나오게 한다. 짧은 단편들로 이런 느낌을 주다니, 고사카이 후보쿠는 굉장한 사람이다.

 

2009.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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