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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삐에로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0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연쇄방화사건의 범인을 찾으려고 이즈미와 하루가 나선다. 방화장소 맞은편에 있는 기묘한 그래피티- 거기에 담긴 수수깨끼를 밝히면 범인을 잡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중력삐에로>는 딱 '추리소설'이다. 하지만 연쇄방화사건을 추적하는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복잡한 가족사다. 어머니가 강간당해서 생긴 아이 하루, 그러나 하루는 이즈미의 사랑하는 동생이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하는 자식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볼 때 하루는 뻐꾸기 새끼이고 가족들은 뻐꾸기를 키우는 오목눈이새, 한 마디로 말해서 '멍청한 가족'이다. 작가는 하루 가족의 모습을 통해, 낳는다는 것과 기른다는 것, 그리고 자식됨과 부모됨,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는 것 같다.
<중력 삐에로>는 이즈미의 시선으로 진행되어 하루의 심리는 조금밖에 엿볼 수 없다. 그러나 하루의 '타임머신놀이'나 '조던배트사건' 등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다. 하루는 '자신을 지워버려도 괜찮을 정도로' 자신의 출생을 증오한다. 그것은 하루가 지금의 가족을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또한, 가족들은 하루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가 사라지거나 다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커다란 아이러니다.
<중력 삐에로>는 꼬인 실타래 같은 글이다. 강간과, 유전자와, 범죄와, 그리고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고통받는 사회와, 가족의 개념과, 그 외의 모든 것을 하루와 이즈미와 그들의 가족과 그들의 가족이 사는 사회와, 연쇄방화사건-을 통해서 496p에 담아 말하고 있다.
여러 가지 메세지가 얽혀서 도통 무엇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머리가 아프다. 하지만 읽을 때는 술술 잘 읽힌다는 게 이사카 코타로의 특징이다. 다 읽고 나면 그 때부터 작가의 생각과 내 생각을 대조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 또 다시 읽어야 한다. 읽을 때마다 조금씩 느낌이 바뀌는게 상당히 묘하다. 그래서일까, 몇 번이나 뒤적였는데도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세계가 좀 엉망진창이라는 것은 알겠다.
하루와 이즈미는 '룰'에서 벗어난 행동과 말과 생각을 하지만, 외려 사회가 강요하는 행동과 말과 생각보다 공감된다. 정의는 정의라는 말 속에 있지 않다. 때로는 정의가 아닌 것이 정의의 탈을 쓴다. 그 때마다 사람들을 께름직함을 느끼지만 세상에 흐름에 맞추어 가만히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중력 삐에로>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중력처럼 우리를 잡아당기지만 항상 중력이 옳은 것은 아니다. 그 때 우리는 삐에로처럼-중력의 영향에서 놓여나서- 가볍게 공중을 뛰어다녀야 한다. 그것은 일종의 반란이고, 그래서 현실감이 적다. 그렇지만 필요한 일이다. 이즈미와 하루는 그렇게 했다. 세상의 정의가 아니라 자신의 정의에 따라서 말이다.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아닌가의 가치판단은 저만치 내버려두자. 논란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 일이 이 가족에게 '필요한' 일이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루가 이층에서 떨어져 내렸다'로 시작하는 첫머리부터, '하루가 이층에서 떨어져 내렸다'로 끝나는 마지막까지, 공중을 퉁퉁 뛰어다니는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자칫 우울할 수 있는 메시지를 밝게 전할 수 있는 것은 이사카 코타로의 큰 장점이다.
2008.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