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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암소들의 여름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정현규 옮김 / 쿠오레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웃는 암소들의 여름>은 제목부터 기가 막히다. 암소가 웃어?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암소가 히-쭉 웃는 모습은 상상이 되지를 않는다. 소가 입을 U자로 만들고 웃을 리는 없고,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지도 않을 것이고. 아무래도 알 수 없는 제목이다. 소는 소인데 암소일 이유는 무엇이며, 소 주제에 웃기는 왜 웃는 것이며, 하필 봄도 가을도 겨울도 아닌 여름에 웃는지 알 수가 없다.
<웃는 암소들의 여름>은 "하나하나 재고, 따지고, 몸 사리고, 너 인생 안 피곤하냐?"며 내 머리를 툭툭 건드린다.
사흘 전의 나와, 한 달 전의 나와, 일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생활하는 모습이 별반 다르지가 않다. 그냥 날짜를 26에서 27로 또 28로 바꾸면 그 날이 그 날이 된다. 붕어빵처럼 틀로 찍어낸 듯한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스스로가 굉장히 지루한, 나사같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마치 도시를 빙빙 돌면서 사람들을 태워주고 내려주던 택시기사 세포 소르요넨처럼 말이다. [그의 삶은 매일 일어나는 우연들에 의해 결정된다(p.7.)]라고 책은 말하고 있지만, 그 위에 이어지는 말을 보자면 그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우연들은 같은 틀에서 익어 나온 붕어빵처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택시기사가 강남에 가서 손님을 태우고 종로에서 내려주든, 동대문에서 손님을 태워서 노량진에서 내려주든, 장소만 바뀔 뿐이지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소가 웃을 일이 일어난다. "기사 양반 가고 싶은 데로 가시오. 마음~대로!"라고 말하는 손님이 나타난 것이다. 바로, 타베티 뤼트퀘넨이.
세포 소르요넨은 '자유'에 신이 난다. 더구나 이 자유는 안전하기까지 하다. 자기가 마음껏 달리고 싶은 대로 내달리긴 하지만, 그것은 엄연히 손님이 요구한 자유인 것이다! 하지만 자유는 어딘지 광폭한 데가 있어서 고삐를 채울 수가 없다.
택시 기사 세포 소르요넨은 어느 도시에서 결국 사장으로부터 '넌 짤렸어.'라는 말을 듣는다. 이제 그는 도시를 뱅뱅 도는 삶에서 내쳐진,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몸이 되었다. 그는 불안해지지만, 불안해 할 틈도 없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그래서 붙잡아 놓을 것이 없는, 완전한 자유인(?) 타베티 뤼트퀘넨이 가는 곳마다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엉뚱한 일이 벌어진다. 기억이 온전한 젊은이 세포 소르요넨은 때때로 질색을 하고, 뤼트퀘넨을 말려야 하잖을까 생각하지만, 결국 그는 뤼트퀘넨의 말썽을 외려 도와주는 역할을 맡는다. 이런 엉뚱한 사건들은 나쁜 결과를 낼 것 같지만 모두 좋게, 아-주 좋게 마무리 된다. 비단 사건의 주인공인 뤼트퀘넨과 소르요넨 외의 다른 사람들, 조연이나 엑스트라들에게도 말이다. 마법같다. 걱정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사람들이 예상했던 결과와는 다른, 정말이지 '왜 걱정을 했지' 싶은 결과들이 주르륵 펼쳐진다.
그래서일까. 천지분간못하는 망아지처럼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보통은 일어나지 않는' 일들을 아무렇잖게 하는 이들을 보고 있자면 가슴이 탁 트인다. "야- 이거 뭐야! 말도 안 돼! 우와~ 얘 횡재했는데! 좋겠다~ 어이, 당신 그건 좀 아니잖아? 그래도 돼?" 그렇게 피식피식 웃으면서 뤼트쾨넨과 소르요넨, 그 외 등장인물들을 따라가다보면 왠지 세상이 아주 유쾌해진다. 남들의 눈을 신경쓰지 않고 가끔은 사고를 쳐도 괜찮잖을까~ 하는 느낌이 모락모락 드는 것이다. 더구나 <웃는 암소들의 여름>처럼 일탈의 결과도 모두 좋을 것 같다!
책을 여는 순간 들었던 생각- "암소가 웃어?"는 책을 덮을 때 즈음에는 "소가 웃으면 어떠냐. 소도 웃겠지. 안 웃는다면 지금부터 소를 웃겨볼까?"로 바뀐다. 암소도 봤으면 웃을, 타베티 뤼트퀘넨과 세포 소르요넨 그리고 그 외 다수의 유쾌한 여름은 무더운 여름날 한 잔의 얼음물처럼 속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웃는 암소들의 여름>은 234p로 끝이 났지만, 지금도 웃는 암소들의 여름-대한민국 편-이 내 집 근처 어디에선가 계속되고 있을 것 같다.
덧붙임.
개인적으로 목장을 파괴하는 부분이 참 시원했다. 이 소설은 사회를 비꼬는 풍자소설이지만, 전체적으로 그냥 황당한 돈키호테식 모험담으로 여기고 봐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 하다.
2008. 1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