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토너의 흡연
조두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유능한 마라토너가 있다. 그의 이름은 '채'다. 그는 흡연을 한다. 마라톤에 최적의 음식이라는 땅콩버터도 먹지 않고 치즈도 먹지 않는다. 대신 커피를 하루에 세잔 네잔씩 마신다. 담배, 커피, 그것들을 끊고 땅콩버터와 치즈를 먹으면 두 시간 대에 진입할 수 있다. 두 시간 대 진입은 마라토너의 꿈이다.

  이쯤 되면, 우리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이 있다.

  "채, 저 사람, 미친 거 아냐?"

  하지만 채는 이상하다는 듯 대답한다.

  "담배 끊을 바에야 마라톤을 왜 합니까? 저는 평생 담배 피우려고 마라톤으로 몸 다지는 겁니다."(p.65.)


  [그러나 사장은 어째서 회사가 건강해져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누구나 회사가 건강해져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째서 회사가 건강해져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다. p.60.]

  ["적자를 타파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회사 문을 닫는 거야. 회사가 폐업하면 만성 적자는 하루아침에 사라져." "뭔 헛소리야? 회사 문 닫으면 적자 걱정 없다고? 그걸 누가 몰라? 사람이 죽으면 건강 걱정은 뭐 하러 해?" p.60.]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명제는 사실 주객전도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삶을 즐기기 위해 건강하게 살고 싶다. 그런데 건강하게 살기 위해 되려 삶을 즐기지 못하고 족쇄가 채워진다. 채가 담배를 오래 피우기 위해 마라톤을 시작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마라톤을 위해 담배를 당장 끊으라고 하는 것처럼.

  마라토너의 흡연을 비롯해 총 일곱개의 단편이 들어 있는 <마라토너의 흡연>은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세상이 과연 합리적인가 질문하는 책이다. 주객이 전도된 세상은 아닌가 하고.

  말하자면 다음의 질문과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 농부와 변호사가 있다. 이 중에서 세상에서 '없으면 안 되는' 직업은 무엇인가? 농부다.

  '중요한 직업은 더 나은 보수를 받는다.' 그런데 왜 농부보다 변호사의 보수가 나은가? 변호사는 희소하며 대체용이성이 낮기 때문이다.

  없으면 안 되는 직업은 농부지만 중요한 직업은 변호사이다. 이것은 우리가 좋아하는 '합리적'인 일인가?

  표제작인 마라토너의 흡연 뿐만 아니라, 다른 여섯 개의 단편들도 하나같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 사는 세상은 과연 합리적인가? 라디오에서 들리는 만큼 아름다운가? 학교에서 배워온 만큼 멋진가? TV에서 보이는 것처럼 찬탄할 만한가?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정의로운가? 유행가 가사 한 줄이 말하는 것처럼, '살 만 한가'?

  그렇다면 사람들이 "에에이, 이 제기랄 놈의 세상."하면서 술 한 잔 들이키고 집에 들어가는 일은 진즉 없어졌을 것이다. 아무도 안 보는 골목길에서 "거지같은 인생이야."라고 홀로 낮게 욕지꺼리를 하지도 않을 거다.

  하지만 그래도 믿고 있다. 세상은 합리적이고, 아름답고, 멋지고, 찬탄할 만하고, 정의롭고, 살 만 하다고. 그렇지 않으면 말 그대로 살 맛이 안 나니까.

  조두진 씨가 보여주는 것은 현실이다. 현실이지만 어딘지 내가 살고 있는 곳 같지 않은 묘한 낯섬이 감돈다. 거울 속의 순희가 되어 밖의 세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왼쪽과 오른쪽이 뒤바뀌어 있지만 거울 속 모릅과 밖의 모습은 주의하고 있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마라토너의 흡연>은 소설이다. 읽는 동안 현실을 상기시키며 줄곧 내가 서 있는 발 끝을 들여다보게 하는 글이 아니라, 소설처럼 읽히는 소설이다. 그러나 소설을 덮고 나면, 내가 발 디딘 현실을 방금 봤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 부조리함, 그 아이러니, 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찜찜함. 그걸 느끼면 피식 하는 비웃음이 나온다. 우리가 신처럼 떠받들고 있는 가치가 실은 그만한 무게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두 눈으로 목격 할 수 있어서. 진짜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생생하게 알게 되어서. 그래서인지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한결 어깨가 가볍다. '꼭 이렇게 해야만 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있다면 우리 머리 속에나 폼잡고 들어앉아 있다.

  조두진 씨는 믿음과 체험 사이의 간격을 바늘로 콕콕 집어준다. 그 바늘 끝은 자못 유쾌하고 가볍지만, 세상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듯이 깊은 자국이 남는다. 그리고 그 자국을 뒤늦게 가만히 쓸어보자면, 아프다.

  변호사는 농부보다 훌륭하다. 조두진 씨는 농부보다 훌륭하다는 변호사를 보여준다. 그리고 씩 웃으면서 묻는다. "정말 그럴까?"




2008.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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