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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메레르 1 - 왕의 용 ㅣ 판타 빌리지
나오미 노빅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평점 :
<테메레르>를 처음 본 건 서점이었다. 책 뒤쪽의 내용 요약을 보니 공군으로 활약하는 용과 인간의 우정을 그렸다고 한다. 왠지 울트라짱캡숑 강한 용을 얻은 생판 초짜 비행사가 날뛰는 영웅소설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냥 내려놓았다.
그로부터 반년. 이럭저럭 하다가 아직도 테메레르의 평이 괜찮은 것을 보고 그냥 한 번 집어들었다. 처음에는 썩 내키지 않았던 게 거짓말같게 순식간에 읽어치웠다.
배경은 나폴레옹 전쟁 때(1805년). 용이 군대에 소속되어 공군으로 활약하고 있다. 용에는 여러 품종이 있는데, 테메레르는 중국산 용으로 셀레스티얼이라는 아주 희귀한 품종의 드래곤이다. 테메레르가 알일 때 중국 황제가 나폴레옹에게 선물했는데, 로렌스 대령이 선장으로 있는 배가 프랑스 군함을 나포하면서 용알을 빼앗았다. 그런데 불행히도 용알은 바다에서 부화하고, 테메레르는 로렌스를 콕 찝어 낸다. 나라충성바보 로렌스는 테메레르를 받아들이고 해군에서 공군으로 소속이 바뀐다. 훈련도 받고, 전쟁도 하고, 테메레르의 정체도 알고.
스토리 자체는 무난하다. 그러나 용이 '비행기'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세계, 그리고 용과 비행사 그리고 비행사와 인간과의 관계가 상당히 신선하고 재미있다. 용은 아주 뛰어난 지적인 생명체지만(알 속에서 들은 언어를 모두 습득할 수 있다니!) 인간들은 가축 혹은 물건 부리듯이 한다. 용은 비행사에게 엄청난 애정을 가지고 있고(각인 현상일까?), 비행사들은 용을 저마다 제각각 대한다(엄청난 애정을 가진 비행사도 있지만 물건처럼 대하는 비행사도 있고). 그리고 인간들은 비행사들을 천시한다.
초강력 용을 데려왔지만 칭찬은 커녕 불쌍하다고 동정받고, 멋대로 쓸만한 용을 낚아채 자기 걸로 만들었다고 구박받고, 따돌림당하고, 파혼당하고- 해군 출신이지만 공군으로 전직당한 로렌스 대령의 고난이 배경을 참 효과적으로 설명해준다.
각각의 특징을 지닌 용 '품종'들에 대한 설명도 꽤 재미있다. 가끔은 너무 설명만 늘어놓는다는 느낌도 있지만, 수많은 용 품종이 등장해 이게 뭐고 저게 뭔지 헛갈리기도 하지만, 일단 용들의 타고난 능력에 대한 설명은 기본적으로 흥미로웠다. 특히, 용의 '품종'마다 몸 크기와 색깔과 능력이 다르며 불을 뿜거나 독을 뿜거나 바람을 일으키는 용은 아주 적어서 용들의 공중전은 거의 육탄전이라는 설정이 전투 묘사에 꽤나 현실감과 긴박감을 주어서 좋았다.
이런 배경과 섞여서 내용을 재미있게 하는 건 용과 인간의 캐릭터들이다. 그 중에서도 고지식한 나라충성바보 로렌스 대령(영국 국적, 해군에서 공군으로 소속 바뀜)과 사실 나라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로렌스 따라 복무하는 능력있는 용 테메레르(중국출생, 프랑스로 귀화당할 뻔 했으나 로렌스에 의해 영국 국적이 됨)의 대화 주고받기가 꽤 재미있다.
자유롭고 똑똑한 테메레르가 '공군 되기 싫으면 우리 도망가서 살자!'라고 하면 고지식한 군인 로렌스 대령은 '안 돼, 테메레르. 조국에 충성해야지.'라고 타이른다. 로렌스는 마음이 우울하면 테메레르에게 찾아가 마음을 달래고, 테메레르가 우울하면 로렌스는 당장 시내로 나가서 용의 목에 걸 만한 커다란 백금 펜던트를 사 온다. 테메레르가 비싸지 않냐고 걱정하면, "네가 이렇게 멋져 보이는데 아무리 비싸도 사야지."(1권 240p에서 인용)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이건 우정이라기보단 거의 고지식한 아빠와 어른스런 아들의 훌륭한 가정생활이다. "내가 결혼하면 싫어?"라고 아빠가 물으면 은근 싫으면서 "아니~ 뭐~ 아빠가 필요하면 결혼해, 나는 괜찮아."라면서 슬슬 눈치보는 꼬마가 생각난달까. 그럼 아빠는 "핫핫핫 나에겐 귀여운 아들만 있으면 돼!"라고 대답하는.......
이런 테메레르와 로렌스 대령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다른 공군 비행사들과 용과의 파트너십 또한 재미있다.
전체적으로 신선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작가가 가끔 너무 설명조가 되는 것, 그리고 용을 마음대로 개량하고 길들이는 게 당연하다는 분위기의 배경만 빼고는 즐겁게 읽었다. 용이 인간에게 길들여지는 것을 거부하고 야생용이 되기도 한다고 하지만, 전체적으로 동물원 호랑이 취급이라 좀 껄끄러웠지만 못 읽을 정도는 아니다.
단지, 책 광고에서는 작가가 서양의 용과 동양의 용 개념을 적절히 섞어 새로운 용의 개념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고, 설정은 그냥 서양의 용이다. 외모도 그렇고, 속성이라던가 크기도 그렇고. 동양의 용에서 개념을 차용한 것은 '중국에서는 용이 신성한 동물'이라는 부분, 그리고 발가락이 다섯개이고 날개마디가 여섯개인 용이 '중국천제급'인 최고급 용이라는 것은, 진짜 용은 발가락이 다섯개이므로 황제만이 발가락 다섯개인 용이 그려진 용포를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따온 것 같다.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뒷편이 속속 나오고 있으니 봐야겠다.
2007.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