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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장수 문순득, 조선을 깨우다 - 조선 최초의 세계인 문순득 표류기
서미경 지음 / 북스토리 / 2010년 12월
평점 :
홍어장수가 어떻게 조선을 깨울 수 있었을까?
제목은 일견 어처구니 없어 보인다. 책의 마지막장까지 읽었을 때야 비로소 제목을 납득했다.
홍어장수인 문순득은 홍어를 사러 갔다가 바람에 배가 떠밀려서 거의 3년 동안 표류한다. 그 과정에서 유구(류쿠, 현재의 일본 오키나와), 여송(현재 필리핀 루손 섬), 중국 마카오를 거쳐 조선으로 들어오며 조선 밖의 세계를 보게 된다. 문순득이 그 시간동안 보고 겪은 것들을, 실학자인 정약전, 정약용, 그리고 정약용의 제자인 이강회가 적는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표해시말>, <경세유표>, <운곡선설>이다.
<홍어장수 문순득 조선을 깨우다>를 읽다 보면 당시의 조선이 얼마나 답답한 곳이었는지 알게 된다.
첫째, 다른 나라와 국교가 없다.
-> 조선은 유구와도, 여송과도 교류가 없었다. 따라서 유구에서든 여송에서든 문순득 일행은 중국을 거쳐 조선으로 가야 했다.
조선은 제주에 표류한 여송인을 말이 안 통한다는 이유로 9년 동안 방치했고, 문순득이 통역을 해 주어서야 중국을 거쳐 여송으로 표류민을 보냈다. 이 와중에 많은 표류민이 죽었다.
둘째, 실용적으로 쓸 수 있는 제도나 도구가 없다.
-> 18세기가 되었는데도 조선에는 수레가 없었다. 배는 한참이나 낙후된 것이었다. 제대로 된 화폐(돈)가 없었다(화폐의 단위는 한 단위였고 그나마도 제각각 주조해서 가짜를 만들기 쉬웠으며, 화폐가 견고하지 못해 10년을 못 갔다고 한다).
셋째, 인재들은 유배당해서 유배지에서 죽었다. 그들의 저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순득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당시의 시대상을 많이 엿볼 수 있는데, 유구, 여송, 마카오에 비해 조선은 너무나 답답하다. 흥선대원군이 나라의 문을 닫아걸기 전에도 이미 닫혀 있다는 느낌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순득이 경험한 것들이 더욱 신기하고 귀중해 보인다. 그리고 문순득의 기억력와 언어능력에 대해서 감탄하게 된다. 문순득 혼자 표류한 것이 아닌데도(여섯명 쯤 같이 있었다), 다른 나라의 문물을 유심히 보고 기억한 것은 문순득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문순득의 말은 실학자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되었을 것이다.
문순득의 표류를 따라가면서, 다른 어떤 역사책을 본 것 보다도 당시의 조선의 상황과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실학자들이 대두되었는지. 그리고 실학자들이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책을 읽는 내내, 글자를 읽는 게 아니라 영상을 보는 느낌이었다. 문순득의 여행 뿐만 아니라, 현재 그 나라의 모습도 언급되어 있어서 더 흥미진진했다. KBS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던 이야기를 엮어낸 것이라고 하는데, 그 다큐멘터리도 보고 싶다.
2011. 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