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
데이비드 뱃스톤 지음, 나현영 옮김 / 알마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는 < Not to sale ; the return of the global salve trade - and how we can fight it > 이다. < 사고 팔 수 없는 ; 국제 노예 무역의 회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그것과 싸우는가 >. 한국어판 제목인 '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는 나희덕 시인의 <봄길에서>의 한 구절을 따왔다고 하는데, 나는 원제 쪽이 단도직입적으로 책에 대한 이해를 도와서 더 좋다. 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 라는 시 같은 구절은 책 내용에서 제시하는 분명한 메시지와 달리 너무 모호하다. 


  노예 상황을 겪은 사람의 이야기와 현대노예제와 싸우는 사람들의 노력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이 책의 방식은 매우 효과적이다. 노예라는 것을 숫자나 잣대로 재기보다는, 노예가 한 사람의 인간이며, 그 인간을 도울 수 있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노예의 삶을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은 한 편의 영화 같다. 그러니까, 영화에나 있을 것처럼 몹시 충격적이고,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현대노예제는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 그걸 알면 뱃속이 불편해진다. 


  현대노예제를 다루는 책은 이번이 두 번째다. 현대노예제를 다루는 책을 읽다보면 씁쓸한데, 꼭 한국이 언급되기 때문이다. 가해국으로도, 피해국으로도. 미국에서 성착취를 당하는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가 나오는가하면 동남아에 섹스관광을 떠나는 한국인이 나온다. 현대노예제를 방치하는 국가로 지목되기도 한다. 밖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모습을 보고 나는 몹시 당황했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한국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가.

  하지만 나는 내 주변에서 노예를 본 적이 없다.

   곧 이어, 진짜? 라고 되물어봤다. 그리고 나는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뉴스에서 신문에서 인터넷에서 암암리에 나는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현대 노예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보았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흘려버렸다. 그건은 매춘이고, 국제결혼이고, 불공정한 노동이며 '일부에서만 벌어지는 일이지' 결코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광범위한 노예제는 아니었으니까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나는 현대노예제를 말하면서 누누히 언급되는 '보이지 않는'이라는 수식어를 이해했다. 누구도 노예를 노예라고 말하지 않는다. 노예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고, 설혹 보이는 곳에 있어도 노예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저 노동자나 일탈자로만 보일 뿐이다. 그리고 노예를 노예라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노예는 노예지만 노예만큼 심각하고 광범위한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일단 봐야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는 노력이 사회적으로 큰 흐름을 불러와 현대노예제와 싸우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노예제가 번성하는 이유는 하나다. 사람을 사고팖으로 해서 어마어마한 이득이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고 팔 수 없는 것을 사고 팔고 있다. 현대에 노예제가 있다는 것은 종국엔 우리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섬뜩하다. 그러나 <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에서 현대노예제와 싸우는 사람들을 보면 희망이 보인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가 깨지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2010.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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