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진실 - 계급.인종.젠더를 관통하는 증오의 문화
데릭 젠슨 지음, 이현정 옮김 / 아고라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들의 디스토피아(distopia). 

 

  <멋진 신세계>, <1984>에서 말한 디스토피아는 현실에 아직 구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세상을 살다 보면, 세상이 이상해보이는 시점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그냥 다시 살아간다. 내가 사는 세계가 좀 이상한 것 같아도 내가 보는 세계는 그럭저럭 완벽하니까 말이다. 우리가 이미 디스토피아에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언젠가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밝고 선량하게 세상을 본다. 

 

  <거짓된 진실>은 우리가 이미 디스토피아에 있다고 말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그 관점에서 서구 문명을 정면으로 쳐다본 결과, 거대 과학 기술이 지배하는 경제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확장을 통해서만 이윤을 남기며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균형잡힌 경제 대신에 거대 과학 기술은 무제한의 엄청난 확장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전쟁이나 유사전쟁 -로케트 만들기, 우주탐사- 만이 제공할 수 있다. (루이스 멈포드 L.Mumford)

-<거짓된 진실> p.364에서 인용- 

 

 

 1839년, 프랜시스 그런드(Francis J. Grund)는 이렇게 썼다. 대서양 연안 도시에서 어떤 사람이 부자라는 것이 알려지면, 사람들은 '그가 매우 돈이 많다.'고 한다. 그보다 더 부라자면 '놀라울 정도로 돈이 많다.' '이 나라에서 제일 돈이 많다.' '백만 달러짜리 사람이다' 등으로 표현하다가 칭찬할 말이 다 떨어지면 그 사람은 가톨릭 성인으로 시성된다.

-<거짓된 진실> p.321에서 인용-

 
  이 책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본 전제부터 틀렸다고 말한다. 전제가 틀렸으니 그를 기반으로 파생되는 논리들도 엉터리이다. 하지만 논리만 보면 완벽하기 때문에 우리는 엉터리인 걸 모르고 넘어간다고. 

 

  선거 때마다 투표율이 낮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는 사람들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뽑고 싶지 않은 사람 투성이이니 투표를 안 해버리는 거라는 소리를 누군가 했다. 투표용지에 '나는 이들 중 아무도 뽑지 않겠다. 지지하는 사람이 없다. 적합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를 뜻하는 <선택 안 함> 표가 있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투표를 하러 갈 거라고. 듣고보니 나쁜 선택지 속에서 그나마 덜 나빠보이는 선택지를 골라야만 하는 것이 이상했다. 왜 그런 항목을 넣지 않았을까? 그런데 나쁜 선택지만 주고 그 중에서 덜 나빠보이는 걸 고르게 한 뒤에 "네가 골랐잖아" 드립을 치는 건 사회에 만연한 모양이다. <거짓된 진실> 285페이지를 읽고 있자면 이런 교묘한 속임수는 수도 없이 자행되는 것 같다. 

 

  저자는 미국 백인 남성을 향해 말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전체 문명을 향해서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확실히 이 세계는 이상하다.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직업군은 농부인데 어째서 변호사가 보수를 더 많이 받을까? 전 인류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음식물이 생산되고 있는데 어째서 굶어 죽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것도 없는 높은 산을 올라가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우주로 날아가기 위해 돈을 쏟고 사람이 사람을 소유한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어느 책에선가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은 지구를 보호하자고 말하지만 지구는 사실 인간의 행위에 타격을 받지 않을 거라고. 지구가 견뎌온 많은 일들을 생각하면 인간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도 아프지도 간지럽지도 않을 거라고. '환경보호'를 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환경이 파괴되면 위험한 것은 인간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말은 똑바로 해야 한다고.
 
  저자인 데릭 젠슨은 우리가 세상을 똑바로 보게 되면 절망하고 그리고 많이 울 거라고 말한다. 내 눈에 씌인 콩깍지는 아직 완벽하게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거짓된 진실>을 읽으면서 많이 아프고 슬펐다. <거짓된 진실>이 보여준 건 참 무거운 메시지였다. 하지만 거기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도 저자의 말에 동조한다. 아는 것 만으로도 힘이 되는 게 있다.


2010.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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